퍼레이드 오늘의 일본문학 1
요시다 슈이치 지음, 권남희 옮김 / 은행나무 / 2005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1.
‘남자방’과 ‘여자방’으로 나누어 쓰고 있는 2LDK의 이곳에는, 원래 주인인 나오키를 비롯해 요스케, 사토루, 미라이, 고토. 다섯 명의 젊은이가 산다. ‘대외용의 나’로서 자신을 설정하고 모여 사는 이들은, 진실 된 삶을 산다기보다 제목처럼 각자 가면 쓴 얼굴로 퍼레이드에 참가하고 있을 뿐이다. 결국 언젠가 끝나버릴 퍼레이드임에도 그들은 가면을 쓰고 걷는 이 길이 언제고 지속될 것이라고 믿으며 안주한다. 사고가 나면 우회할 뿐이다. 적당히 대하고 적당히 받아들이며, 서로가 서로의 모습을 모른 채 안다고 착각하며 그저 살아간다. 불명확하기 짝이 없다.

2.
대중에게 사랑받는 이야기에는 명확함이 있다. 흐릿한 것은 뚜렷해지고, 상실은 보상받고, 악한 자는 벌을 받는다. ‘권선징악’ 사람들은 선한 자가 흥하는 모습을 보며 그 속에 자신을 대입해 나 또한 선하게 살면 흥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게 된다. 또한 사람들은 망하는 악한 자의 모습에도 자신에 대입한다.

그리고 자신도 잘못된 행동을 하면 누군가로부터 단죄 받을 것이라는 사실에, 우리는 공포 아닌 안도감을 느낀다. 왜냐면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이 그토록 명확한 것이라면 우리가 그런 행동을 했을 때에 누군가에게 지적을 받거나 스스로 깨달음으로써, 망하는 악당의 길이 아니라 흥하는 선한 자의 길로 계속 나아갈 수 있으니까 말이다. 청소년의 질풍노도를 다룬 일본만화에서 ’어른으로서 아이들을 꾸중하는 것‘의 중요성을 재차 강조하는 것은, 이렇게 인간은 자신이 단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서 안정감을 찾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흐릿하고 불명확한 세계의 우리들은 그렇게 뚜렷하고 명확한 이야기 속 세상을 보며 우리 또한 그렇게 명확해질 수 있다고 믿는다.

3.
[퍼레이드]가 주는 끔찍함의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이야기에는 단죄가 없다.

요스케, 고토, 미라이, 사토루, 나오키. ‘대외용의 나’ 속에 감추어두고 있던 그들 각자가 지닌 진짜 고민(그림자)은,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어떤 메타포들을 통해 구원받는 듯 보이지만, 비디오가 지워졌다고 해서 아픔도 지워지는 그런 소설 같은 일은 결국 일어나지 않는다.

대신 작가는 잔인하게도 이야기를 처음으로 되돌려 퍼레이드를 지속시킨다. 단죄는 없다. 그저 쿨한 척 어른인척.. 각자가 지닌 그림자는 애써 무시될 뿐이다. 드라큘라는 여전히 흉측한 모습으로 미나나 루시의 피를 빨며 조나단에게 슬픔을 안겨주고 있고, 늑대인간 또한 보름달이 뜨는 밤마다 온몸을 찢으며 뛰쳐나가 박물관의 경비원을 난도질한다. 말뚝도 없고 은탄환도 없다. 단죄가 없으면 성불도 구원도 없다....

4.
책을 덮고 나자 숨이 막혀온다. 요시다 슈이치는 처음 읽었는데, 아침에 출근하면서 읽을 만한 그런 상쾌한 내용은 못 되었던 것 같다. 마치 나또한 구원받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갑자기 이사카 코타로가 읽고 싶어진다. 요시다 슈이치와 달리 이사카 코타로의 손은 마음 편히 잡고 따라갈 수가 있을 것 같다. 그저 내가 손을 잡고 따라가는 사람의 얼굴이 개를 닮았는지 확인만 하면 된다. 그러면 나는 깨달음을 얻을 것이고 악당은 성불할 것이다. 반드시 그럴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친 나는 책장으로 가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을 하나 빼어든다. 안도감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500페이지가량 되는 녹색의 두꺼운 책 표지를 넘기는데 문득 나오키가 떠오른다. 다섯 명 중 가장 나이가 많고 어른스러운 그였지만, 그런 점에서 오히려 더 지쳐버린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단죄받길 원하던 그의 바람은 결국 퍼레이드의 환호 속에 묻혀버린다. .. 사쿠라(오듀본의 기도, 이사카 코타로)라도 있었다면 나오키도 구원받을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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