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나는 모래 위를 걷는 개
게키단 히토리 지음, 서혜영 옮김 / 이레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그의 소설은 마치
          혼자 부채를 들고나와 한 광주리 풀어놓는
          라쿠고 같은 인상을 준다



'예능인의 처녀작'이라는 부분이 선입견으로 다가온 탓인지 얇은 분량과 주인공 개인의 마음 속을 누비는 관념적인 진행 방식이 처음에는 불만으로 다가왔다. '거봐, 뭔가 플롯을 제대로 짜내지 못 하니까 이런 식으로 혼자 일기라도 쓰듯이 중얼거리면서 시작하잖아, 물론 소설이라는게 이런 형식도 수용할 수 있는 매체이긴 하지만 아무래도 이런 건 말이지' 하면서 어쩌고스러운 불만을 속으로 늘어놓았지만, 다섯 개의 단편 중 (뒷표지에도 써있다시피 엄밀히 말하자면 여섯 이야기이다) 첫 단편의 마지막 줄을 읽고나자 그 불만은 쑥-수그러들었다. 그리고 사람의 간사함 탓인지 '예능인의 작품'이라는 부분이 이제는 작품에 대한 칭찬의 증거를 찾는 모처가 된다.

예능인이기 때문일까? 그의 소설은 마치 혼자 부채를 들고나와 한 광주리 풀어놓는 라쿠고(혼자 하는 만담) 같은 인상을 준다. 그리고 스스로를 소외시킨채 홀로 투덜대고 힘겨워하며 살아가는 주인공의 모습은, 관념적 묘사를 늘어놓는 소설의 전개방식과 잘 융합된다. 주인공들의 모습은 열심히 1인극을 하고 있는 게키단 히토리의 모습에 겹쳐보인다.


          
바보 같은 노래로나마
          전심전력 자신의 사랑을 전하던
          [전차남] 속 기타남의 그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나는 비록 그의 개그를 본 일은 없지만, 연기도 겸업하고 있는 그의 덕에 [마왕]에서는 진지한 모습의 회사원(비록 평사원은 아니지만)을 보았고 [전차남]에서는 바보 같은 구석이 (아주 많이) 있는 오타쿠 청년의 모습을 본 경험이 있다. 그래서 '길 위의 생'의 회사원을 읽을 때에는 진중하게 고뇌하는 [마왕]에서의 모습을 참고 할 수 있었고, '안녕하세요. 나의 아이돌 님'의 오타쿠 남자를 읽을 때에는, 바보 같은 노래로나마 전심전력 자신의 사랑을 전하던 [전차남] 속 기타남의 그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사실 무엇보다 책을 재밌게 읽을 수 있었던 이유는, 각자의 주인공들에게 게키단 히토리의 모습을 참고함과 동시에 각자의 주인공들에게서 나의 모습을 발견 할 수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마지막에 실린 표제작인데, [소리나는 모래 위를 걷는 개]라는 책을 완성시키기 위해 조금 억지스러운 전개를 택한 것 같다는 점이다. 스스로를 소외시켜 각자 홀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결국 우리는 모두 어떤 방식으로든 연결되어 있다는 작품의 테마는 훌륭하지만, 예능인으로서의 일에 쫓기며 이제 겨우 처녀작을 완성해낸 그가 테마를 제대로 마무리 지어보이기에는 힘든 일이었걸까 하는 아쉬움이 든다.

하지만 앞으로도 만약 그의 이름을 달고 책이 나온다면 주저없이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다른 기성작가들에 비하면 어딘가 부족한 작품이지만, 처녀작을 낸 한 명의 소설가이기 이전에 꾸준히 활동해온 한 명의 예술인으로서, 이 세상의 모습을 진중한 방식으로 독자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그의 모습은 기대감을 가지기 충분하기 때문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