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년생 김지영 오늘의 젊은 작가 13
조남주 지음 / 민음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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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후년이면 수간호사로 진급인데 매일 밤마다 '엄마 언제 와?'라며 12시가 넘도록 엄마를 기다리고 자지 않는 딸을 위해 그냥 내려 놓으려구요. 18년이 넘도록 정말 아이 낳고 몇 달이 쉰 게 다였는데 차마 아이한테 '엄마 늦을거야. 먼저 자.'라며 모진 말 벹는 것도, 매일 아침 출근할 때마다 '엄마 병원 그만두면 안 돼?'라는 말을 듣는 것도 이젠 지쳤어요."


 지난 금요일 둘째 아이 친구 엄마들과의 모임에서 수 많은 김지영을 만났다. 번듯한 대학을 나와 직장생활을 하다 남편을 따라 낯선 공간에 떨어져 육아후 우울증에 시달리다 술을 마셨다는 엄마, 매일 아침 신랑 출근시키고, 아이들 보내고 나면 매달릴 것이 없어 청소, 빨래로 하루를 보내야만 뭔가 했다는 안도감을 느낀다는 엄마, 아이 셋을 키우면서 이제 셋 다 어린이집, 유치원, 학교를 보내놓고, 나름 동네 산책도 하고, 책도 보며 나를 위한 힐링을 하는 듯 함에도 아이들이 돌아오면 제어가 안되도록 화가 나는 엄마, 늘 청소,설거지를 당연스레 돕던 남편이 잠깐의 육아휴직동안 '이제는 네가 좀 해.'라며 집안일을 등한시 해서 당황스러웠다는 엄마까지. 결혼과 양육으로 삶의 이정표가 전혀 다른 곳으로 흘러가고, 그렇다는 사실 조차 인지 하지 못한채 하루하루 살아가는 수 많은 여성들이 이 책 속에서는 고스란히 그려져 있다. 또한 결혼과 양육을 지켜봤기에 그 노선에 쉽사리 뛰어들지 않겠노라고 선언하는 여성 역시 주변인물로 등장을 한다. 


 나의 이야기였고, 지금도 나의 이야기이기에 <82년생 김지영>은 주목되어야만 한다. 무의식적으로 하루를 살아가던 중 이 책으로인해 의식적으로 내가 살아가는 하루를 바라보니 이러다 그냥 살아지는대로 살아가는 하루살이 밖에 안되겠구나는 생각이 절로들었다. 더욱이 딸 둘을 가진 나로써는 더 그러했다. 


 대학에서 여성학 강의를 듣던 때엔 강한 페미니즘을 가지기도 했던 나였다. 불평등한 것에 대해, 부당한 것에 대해 이건 이래서 옳지않다고 하나하나 따지기 좋아했던 나였다. 그런데 어느 순간 뒤를 돌아보니 그랬던 나는 그저 아주 먼 옛날 철 없던 시절의 나 일뿐 사회가 원하는대로, 부모님이 원하는대로 그저 큰 소리 나지 않게 참고, 그러련히 지내다보니 나 역시 김지영이 되어 있었다. 그랬기에 책을 읽는 구절구절마다 가슴이 저리고, 아팠다. 동아리 활동 후 늦은 밤 막차를 타고 집에 오다가 멀쩡하게 생긴 남자에게 가방 속 지갑을 빼앗기고도 큰 소리 한 번 못내고, 집에 와 주저 앉아 울던 내게 우리 아버지 역시 "늦게 다니니까 그렇다"라며 혼을 내셨더랬다. 이처럼 책을 읽으며 소설 속 김지영의 이야기가 나의 과거와 현재와 지속적으로 오버랩이 됐다. 


 하지만... 끝내는 이랬던 김지영을 치료하던 의사마저 어쩔 수 없는 대한민국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 시대를 보여주는 모순적인 남성이라는 결론으로 끝마무리가 되어 참으로 답답하게 책을 덮었다. 과연 우리 딸들에게 대한민국의 여성으로서의 미래는 있는 것일까? 


 작가는 함께 고민하고, 행동하자고 한다. 며칠 전 여성민우회에서 진행한 양성평등과 관련된 강의를 듣게 됐다. TV속에서 광고 속에서 미디어들이 선택적으로 보여주는 젠더에 대한 문제들. 어이 없게도 우린 그 선택적인 장면과 프로그램들, 이야기들을 무의식적으로 즐기고 생각하지 않고 살아왔다는 것에 당황스러웠다. 사회는 여전히 남성위주에 남성을 우위에 두고, 굴러가고 있다. 고위직에 여성이 오르기도 하고, 과거 여성들이 할 수 없던 일들을 과감하게 도전하는 여성들도 많아지고 있지만 그에 따르는 제약 역시 여전히 너무 많다.과연 대한민국의 미래를 살아갈 우리 딸들을 위해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옳은 것인가? 오늘 아침 신문에서'공무원과 엄마 사이,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란 기사를 보면서 그나마 육아부문에서는 나은 직업이라는 공무원 마저도 여전히 육아는 장애물인게 현실이라는 사실에 참으로 씁쓸했다. 이렇게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실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이 어쩌면 소설<82년생 김지영>의 어머니처럼 그저 세계지도를 붙여놓고, '세계는 넓고 거기서 너희들이 살아가야할 방향은 어느쪽인가?' 하는 피상적인 이야기만 늘어놓는 것은 아닌지? 사회는 여성만이 변화시킬수 없기에 이 땅의 수많은 김지영뿐만 아니라 딸아이를 가진 아버지들 또한 내 딸의 미래 문제로, 함께 고민하고, 해결책을 생각해야만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본다. 82년생 김지영은 내 어머니이자, 내 아내, 그리고 내 딸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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