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먹다가, 울컥 - 기어이 차오른 오래된 이야기
박찬일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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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삼시세끼 준비가 당연함을 넘어

좋아서 하는 날이 많아졌다.

식사를 준비하는 것이 단순히

한끼 음식 마련이 아닌

가족들에게 마음을 지어 먹이는 일이라

생각하면서 부터였던 것 같다.

그 때부터 음식과 관련된 에세이가

눈에 들어 오고, 요리 소재의 영화, 드라마

등에 더 끌리게 됐다.

'밥 먹다가, 울컥' (박찬일 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도 같은 이유로 읽고 싶은 책이었다.

밥 먹다가, 울컥하게 된 사연이 궁금했고,

그렇게 먹던 밥에는 어떤 마음들이

담겼을지도 궁금했다.


이 책에서 셰프이자, 작가이기도 한 저자는

음식과 관련해 겪었던 이야기들과

70년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점차 사라지는 대폿집, 실비집의 모습들,

그리고 지금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던

서울 변두리 생활에 대해 이야기 한다.


책을 읽으면서 ** 반점, 대포, 파출 등

의식 없이 써왔던 단어들의 의미가

작가의 글에서 살아 움직였다.

더구나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대폿집,

실비집의 모습이 눈 앞에 그려졌다.

평소 같으면 가기 꺼려하던 허름한 노포가

그의 글을 읽고 나니 꼭 한 번 가보고 싶어졌다.

비싼 오마카세보다 그 날 그 날 있는 재료로

술에 따른 안주를 준비해준다는 그런 집들의

음식이, 차지 않은 거냉주의 맛이 궁금해졌다.

아마도 나처럼 경험해보지 않은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뭔지 모를 감성이 대폿집으로,

실비집으로 많은 MZ세대를 이끌었겠지.


보통 음식점에서 주문하면 나오는

음식들을 마주하며 그저 맛을 평가하고

먹으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니

이젠 음식이 제공되면 어떤 노고를 거쳐

내 앞에 도달하게 됐는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채소를 길러내고, 성게알을 손질하고,

뜨거운 기름이 튀더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탕수육을 솥 안에 던져 넣는 손길들.

묵직하게 무거운 그릇을 나르고, 닦느라

여기저기 몸이 성치 않는 사람들.



상상하기 조차 힘든 60~70년대의

서울 살이의 이야기는 오래전 TV 속의

드라마의 한 장면 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고가의 아파트들이 즐비한 동네가

전에는 화장터였고, 주인도 없는 무덤이

있던 곳이었다는 것도.

지금은 꿈도 꿀 수 없는 과밀 학교라는 것과

새학년 새학기 천 명이 넘는 학생들의 전학

이야기도.

서울의 빵 무료 급식과 영세민 밀가루 딱지 이야기도.

아마 작가와 동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이라면

그의 글에서 학창시절의 친구들과

살던 동네와 그 시절 음식들을 떠올리며

'지나고 나니 다 추억이더라.'

하고 느끼지 않을까?


인생의 많은 게 그렇듯이,희미해지고 헐리고 사라진다.

<밥 먹다가, 울컥> 박찬일, 웅진지식하우스(2024)

그 힘겨운 시간을 함께 보냈던 친구들과

만나 기울이던 술잔의 이야기에서

다시는 볼 수 없는

이들에 대한 그리움이 묻어난다.

그 그리움 때문에 작가가 가게 이름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대폿집을,

차갑지 않은 거냉주만 있는 실비집을

열심히 찾는 것이겠지.


책을 덮으며 마음이 따스해졌다.

그가 그리워 하는 모든 이들 사이엔

음식이 있었다.

속이 없는 진짜 만두,

면을 숟가락으로 뚝뚝 끊어

안주로 했던 자장면,

지구 반바퀴를 돌아 도착한 고추장,

스파게티 알라 '기레빠시'

...

생각해보면 우리 삶에도 누군가와 이어진

음식이 있다. 이 책은

잊고 있었던 추억들과 그 때의

그 음식들, 그리고 함께 했던 이들까지

눈보라처럼 몰고 온다.

우리 사회는 이제 외면의 시대가 되었다.

<밥 먹다가, 울컥> 박찬일, 웅진지식하우스(2024)

그의 말처럼 우리 사회는

이제 외면의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세상을 향한 따뜻한 시선이 담긴 글들이

읽혀지는 한 있지만 없는 것 같은

주방 노동자도, 한 인간의 미래를 만드는

선생님도, 사라지는 가치를 이어가는 사람들도

잊혀지지 않고 좀 더 오래 기억될 수 있지 않을까?


이 순간이 견디기 힘들어

눈물 젖은 밥을 마주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힘겨운 상황을 잊고자 혼자

술잔을 기울이는 이가 있다면,

사무치게 그리워지는 사람에 애테우고 있다면,

먹지 않아도 배 부르고,

마음 속까지 따뜻해지는 위로를 건네는 책,

'밥 먹다가, 울컥' 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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