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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쓰는 밤 - 나를 지키는 글쓰기 수업
고수리 지음 / 미디어창비 / 2022년 10월
평점 :
도서관에 가서 책을 빌리다 보면
늘 용량 초과의 책을 빌려 온다.
이 책을 집고 나면 저 책이 눈에 밟히고,
그 책을 또 손에 들고 나오다 보면
신간 코너에 눈이 한 번 더 가게 된다.
그렇게 습관처럼 책 욕심을 부리며
기한 내에 다 읽지도 못할 양을 빌린다.
책을 빌리면서도 그러할 것임을 알지만
그래도 상관하지 않는다. 그 책들 중에서
나만의 마음을 붙들어 줄 문장을,
오늘이 아름다움을 깨우쳐주는 글을
한 줄 발견한다면 그걸로 만족한다.

'마음 쓰는 밤' 이 책 역시
2주 전 빌린 용량 초과 도서들 중
한 권이었다. 창비 인스타를 통해
고수리 작가의 문장을 만나고
이 책의 문장들을 만나보고 싶어졌다.
도서관 검색 목록에서 예약을 해야만
빌릴 수 있었고, 몇 주의 기다림 끝에
받은 책이었다. 그러나 일에 밀리고,
시간에 치이다 책상 위에 놓인 책표지만
바라본 채 반납일이 다가왔다.
그러나 이 책 만큼은 용량 초과의 책으로
돌려보낼 수 없었다. 그래서 연장 신청을 하고
그 날부터 매일 아침마다 읽어 내려갔다.
책을 읽는 내내
작가가 어떤 마음이었는지
너무 잘 알 수 있었다.
가끔은 나를 들여다 보는 듯한 착각에
가슴이 뭉클해지기도 했다.
저는 집에 있어도
종종 행방불명이 됩니다
초인종이 울려도 나가지 않습니다
전화벨이 울려도 받지 않습니다
지금은 여기 없기 때문입니다
이바라기 노리코,「행방불명의 시간」(정수윤 옮김,『처음 가는 마을』, 봄날의 책2019) 중에서
나 역시 작가처럼
행방불명의 시간엔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엄마가 되고 난 후,
온전한 나, 오롯한 나로 있을 시간이
간절했다. 두 아이를 케어하고 내 시간을
가지려고 잠을 줄이려다간 이내 몸이 탈이 나곤
했다. 체력이 받쳐주지 않았다. 그래서 마음은 더
괴로웠다. 정말 내가 아무것도 아니고 싶은 때도
있었으니까. 그러다 책을 펼쳤다.
책 속에서는 내가 더 이상 나로 존재하지 않았다.
작가처럼 내가 원하던 책을 몇 쪽 읽은 날은
신기하리만큼 힘이 났다. 우울할 때도, 힘이 들 때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잘 모르겠을 때도 책을 찾았다.
아이들의 동화책을 함께 읽을 때도
읽어주는게 아니라 나도 읽고 있음에 집중했다.
스토리보다는 등장인물의 마음을 생각하며
이야기에 몰입했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아이와 나눌 이야기도 많아졌다.
그렇게 나는 읽는 사람으로서 자주 사라졌다.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꿈틀꿈틀
쓰고 싶은 내가 튀어 나왔다.
대단한 필력이 있지도 않고,
삶의 한 구석 결핍도 없지만
글이라는 것이 쓰고 싶어졌다.
그래서 여기저기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부지런함을 요하는 글쓰기 수업에서
나의 게으름과 부족함은 계속해서 내 글의
발목을 붙들었다. 글쓰기는 발가벗는 일이라고
하는데 여전히 나는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한 발 한 발 나아지는 학우들과 다르게
지지부진한 나의 글들이 부끄러워졌다.
'과연 내가 쓸 수 있는 사람인가?'
자꾸만 의심을 하게 됐고, 호기롭던 마음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내 목소리, 내 고집을 부낭처럼 부둥켜 안고,
당장 최고가 되려 말고 지금 최선을 다하는
마음가짐으로. 그러면 버틸 수 있다.
이런저런 말들에 휘둘리지 말고
깊이 대신 목소리를 찾을 것.
당장 최고가 되려 말고 지금 최선을 다할 것.
내가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좀 이상하고
아름다운 그런 어떤 것. 당신만이 만들 수 있다.
고수리 '마음 쓰는 밤' 중에서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조급했고,
불안했고, 두려웠다. a값과 b값을
입력시키면 당연스럽게 c값을 내주는
계산기처럼 나의 부족함에 쏟아 붓는
시간과 마음의 결과가 보잘 것 없을 것 같아서.
뭔가 꼭 결과를 내야만 할 것 같은
쫓기는 마음이 앞섰던 것 같다.
글쓰기란, 글을 쓰는 마음은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어디에선가 들어 본 것 같은 이야기,
누구에게나 있는 일상이라
쓸 수 없을 것 같았던 일도
실은 나만의 색깔로,
나만의 눈으로 다시 탄생될 수 있음을
이제 조금은 알 것 같다.
다행히 시간은
지나가버린게 아니라
바뀌고 있었다.
우리도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바뀌는 거라고.
바뀌고 있다고 알아챌 수 있도록
예민해져도 좋을 것이다.
고수리 '마음 쓰는 밤' 중에서
'마음 쓰는 밤'을 읽다 보니
일상에서 반짝였던 오늘을
놓치는 순간들이 참 많음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됐다.
글을 읽다가 일기를 쓰고,
메모를 하고,
또 글을 읽다가 책 속의 좋은 시는
전문을 뒤져서 필사해보고,
가만히 낭송도 해보며
시인의 마음을 상상해봤다.
결국, 글을 쓴다는 건
마음을 쓰는 일이라고.
나는 계속 쓰면서 실감한다.
수려한 문체가 아니어도,
독특한 단어가 아니어도,
진심을 담은 글은
수 많은 원을 그리며 퍼져나가다가
글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에
가만히 가 닿는 것이라고
작가처럼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 마음이
메아리처럼 다시 작가에게
전해지는 것이라고.
'쓰는 엄마들에게 하고픈이야기'의
글을 읽으면서 글쓰기의 방향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가족의 이야기가 말고
나의 이야기를 먼저 쓰자.
나의 인생을 쓰고,
나라는 씨앗을 열심히,
간절히 가꿔 나가자'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나라는 나무도
커다란 숲의 일부분이 되어 있지 않을까?
'쓰는 엄마들에게 하고픈이야기'의
글을 읽으면서 글쓰기의 방향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가족의 이야기가 말고
나의 이야기를 먼저 쓰자.
나의 인생을 쓰고,
나라는 씨앗을 열심히,
간절히 가꿔 나가자'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나라는 나무도
커다란 숲의 일부분이 되어 있지 않을까?
작가님이 여러 강의에서 만난
남녀노소의 학생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마치 나도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나 역시 몇 년 전까지
글쓰기 수업에서
글을 쓰고, 울고, 웃으며
낭독하던 그 때가 떠올라서.
그리고 그 때의 나의 스승님이
매주 하나씩 과제를 내주셨던 것처럼
책 속의 작가님이 학생들에게
던졌던 글쓰기 주제에 대해
하나씩 글을 써보고 있다.
'나는 기억한다'
'당신은 무엇입니까?'
'살아야 할 이유'
'나의 21g의 기억'
그런면에서 이 책 '마음 쓰는 밤'은
나에게 좋은 글쓰기 강좌 수업이기도 했다.
그래서 다시 글을 써보고 싶어졌다.
사라졌던 글쓰기에 대한 용기를 북돋아준
고마운 책이다. 기회가 닿는다면 나 역시
고수리 작가님의 리추얼에도 참여해보려고 한다.
글을 읽는 일도, 글을 쓰는 일도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한다면
더욱 힘이 나는 법이니까.
글을 쓰는 사람들도, 책을 펴내는 사람들도
정말 많아졌다. 그 와중에 내가 뭐라고
그 대열에 설 수 있을까 움츠러들었는데
'마음 쓰는 밤' 덕에 구겨졌던 마음을
가만히 펼쳐볼 수 있었다.
프랑스 시인 크리스티앙
보뱅의 말을 전해주고 싶다.
"글쓰기란 넘을 수 없는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여는 것이다."
나아가는 방법을 모르겠다면
벽에 문을 그린 후, 그 문을 열어보라고.
아홉번 용기 내다가 열 번 주저해도 괜찮다.
다만 한 발짝만 힘을 내면 좋겠다.
힘 내어 문을 열고 들어간 다음엔.
그 다음엔.
겨우 글 한 편으로는 설명 못할
이런 이상하고 아름다운 시간들이 펼쳐진다.
고수리 '마음 쓰는 밤' 중에서
글쓰기를 주저하는 이에게
한 발짝 힘을 낼 용기를 주는 에세이
'마음 쓰는 밤'
이 책을 통해 수많은 사람들의
고유한 이야기들이 꽃처럼 피어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