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를 읽고
나는 이 책을 읽고 놀라운 감정의 격동을 느끼게 되었다. 지난 10여 년 동안 날 이렇게 분노하게 만든 책이 있었는가?
정확히 말하자면 이 책이 나를 분노케 한 것이라기 보단, 이 책의 허구성에 화가 났다. 아니 이 책이 실현 될 수 없는 한국의 사회 안전망과 제도적, 구조적 현실에 화가 났다. 작가는 우리에게 눈앞의 성취가 아닌 이상적 목표의 실현을 위해 일을 하라고 한다. 이건 ‘아프니깐 청춘이다’ 이후 최악의 개소리이다.
인간은 결국 현실성에 기반을 두고 살아간다. 이상적 목표라는 것은 하나의 허구성 즉 우상에 지나지 않는다. 더욱 화가 나는 현실은 그 이상이라는 허구는 나의 내적 허구성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건 있을 수 없다. 모든 욕망은 타자의 욕망이라는 라캉의 직관을 떠올려 보라.
현실의 성취보다 이상적인 목표에 더욱 비중을 두게 되면 사기꾼이 된다. 우리는 테라노스의 엘리자베스 홈즈를 기억해야 한다. 모두가 그녀의 연구와 테라노스의 목표가 실패 했으며, 허구였다고 말한다. 아니 허구이다. 그러나 그녀는 높은 이상적인 목표와 강한 ‘카리스마’로 아직도 자신의 믿음이 옳다고 주장한다. 그녀의 이상이 그녀를 사기꾼으로 만든 것이다.
이 책의 주장들이 정말 실현 가능한 어젠더가 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추가되는 조건이 필요하다. 최소한 그것이 추가 된다면 나는 화는 나지 않을 것 같다. 그것은 바로 사회 안전망이다. 이런 이유에서 본다면 이 책은 최소한 한국 보다 미국에 어울리긴 하다.
이 책을 읽고 오늘날 한국 땅에서 실현 시켜 보라고 하는 것은 중부 내륙 고속도로에서 맨 몸으로 시속 110km/h로 달려오는 차들을 향해 역주행으로 뚫고 올라가라는 것과 같다. 이 책을 긍정한다면 당신은 분명 한국의 현실을 모르거나 외면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아니라면 당신은 철저히 왜곡되어 살고 있는 사람이다. 타자와 구조의 호명 테제에 갇힌 체 말이다.
이상주의자가 되지 말자. 우리는 철저한 리얼리스트(realist)가 되자. 리얼리스트만이 참다운 이상주의자가 될 가능태를 가지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