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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프 미 시스터
이서수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3월
평점 :
어쩌면 소설은 커다란 이야기를 작은 이야기로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독자는 작은 이야기를 커다란 이야기로 만드는 기적을 보여준다. (중략) 나에게 책이란 작가의 실패와 독자의 기적이 맞물려 있는 장소인 것이다. (작가의 말, p.341)
수경과 남편 우재, 수경의 엄마와 아빠, 조카 준후와 지후 여섯 명은 30년 된 15평짜리 낡은 빌라에 살고 있다. 우재의 형은 이혼 후 소식이 끊겼고 형수는 재혼하면서 아이들을 맡겼다. 어른 넷 모두 정규직이 아니라서 지속적인 수입이 없는상태. 4개월 전까지 수경은 가장으로서 회사를 다녔다. 회식 자리에서 한 동료가 졸피뎀을 섞은 음료수를 건넸고 잠든 수경을 업고 모텔로 들어갔다. 수상하게 여긴 모텔 여사장의 신고로 미수에 그쳤고 수경은 회사를 그만두었다.
수경은 여전히 마음이 힘들지만 4개월이 지나자 돈을 벌어야겠다고 가족들에게 선언하고 자차배달을 시작한다. 4년째전업투자자이지만 수익이 나지 않아서 대리운전을 겸하고 있던 남편 우재도 수경의 택배일을 돕는다.
“돈이 제일 무섭다는 거 놀면서 깨달았어.”
진심이었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 트라우마 운운하기에 수경은 너무 현실적이었다. 어떤 분노는 가난 때문에 그것을 충분히 드러낼 시간조차 주어지지 않는다. 억지로 수습되어버린다. (p.15)
앱 기반으로 사람과 일거리를 연결해주는 플랫폼의 단점을 지적하는 우재의 친구와 지인들,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플랫폼을 이용하는 수경과 우재, 플랫폼 노동에 관심을 보이는 수경의 엄마와 아빠. 살기 위해 돈이 필요하지만 돈은 비참한 감정을 느끼게 만든다.
너도 알겠지만 누군가 어떤 일을 하고 있을 땐 말이야, 그 일이 맞아서 하는 것도 아니고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하는것도 아니야. 그냥 견딜 만하니까, 단지 그 이유로 계속하고 있는 거야. 그럴 수도 있는 거야. 수경은 속으로만 답했다. (p.143)
택배일은 누군가와 친밀하게 지낼 필요가 없어서 좋았지만 시급을 생각하며 달리다 보니 비가 오는 날엔 다치기 쉬웠고마음이 편치 않은 장면들을 목격한다. 수경은 더 안전한 일을 찾는다. ‘헬프 미 시스터’는 일을 의뢰하는 사람과 일을 처리해주는 사람이 모두 여성인 심부름 플랫폼이다. 수경은 엄마와 함께 또 다른 플랫폼 노동을 시작한다.
수경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이어지지만 엄마 여숙, 아빠 양천식, 남편 우재, 조카 준후, 준후의 여자친구 은지, 그 외에도수경과 친분이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각자의 인생을 통해 그들의 현재 모습을 이해하고 마음을 헤아려볼 수 있었다.
후반부로 갈수록 수경과 가족들을 응원하게 되었다. 좌절할 수 있는 상황에서 희망을 발견하고 불평불만으로만 삶을 채우지 않았다는 점이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킨다. 세상을 탓하고 타인을 탓하며 머물러 있기보다 방법을 찾고 스스로 다시일어나는 모습은 감동을 남겼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