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고 있던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의 죽음으로 불행한 어린시절을 보내고
할아버지 영조의 도움으로 왕이 된 인물이었다.
그런데 9년전 수원으로 이사를 오면서 정조가 지은 수원화성과 융건릉을 만나면서
정조라는 위대한 왕의 삶도 내 곁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어딜 가나 정조의 업적과 치적이 있는 수원화성에 관한 이야기 [파체]는 그래서 더욱
내 관심을 끌었다.
얼마전 역린이 개봉했을때도 개봉당일에 가서 봤을 만큼 정조의 삶을 외면할 수 없게
만든 매력적이고 인간적이며 영민한 군주, 정조.
역린을 봐서인지 이 책에 나오는 정조의 모습은 자꾸 현빈과 겹치며 떠올랐고 말투도
그의 모습을 닮아 마치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한 느낌으로 읽었다.


이 책에서 가장 공감이 가고 마음 아팠던 부분이다. 왕이
되기전 죽음의 공포로 움츠리고 숨죽이며
살았던 정조가 숙적들에게 피의 칼날을 휘두르지 않고 어떻게 그렇게 용서할 수 있었을까 내내
궁금했는데 작가는 단번에 나의 궁금증을 이렇게 멋지게 해소해 주었다.
야소의 모습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본 정조.
그가 왜 서학에 너그러웠는지 금새 수긍이 갔다.

눈물을 거두고 평화로워라.
자신의 여성을 거두고 남자로 살게한 아버지를 원망하면서도 그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정빈과
신분의 벽에 갇혀 비상의 꿈을 갖지 못한 태윤
왕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정원을 가꾸며 살게 된 유겸의 삶은
온통 눈물 투성이지만 그들이 눈물을 거두고 평화롭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작가는 파체라는
제목을 붙인것이다.
지상의 왕은 되지 못했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왕이 된 유겸.
정조는 죽어 자신의 아들이 왕이 되었음을 알지 못했지만 사람들은 유겸을 통해
아픔을 위로 받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음의 고요함을 얻게 된다.
수원화성은 성곽에 대한 아무런 지식이 없는 사람의 눈으로 봐도 정말 아름답다.
어느 계절에 가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고 걷기에 좋은 곳이다.
성역 공사를 시작할 때 정조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름다워서 두렵게 하라
적들의 공격의지를 잃을 만큼 화성을 아름답게 지으라고 한 것이다.
그 말대도 수원화성은 너무나도 아름답고, 아름다와서 두려울 정도이며 결국은
세계문화유산에까지 등재가 되었다.
서학을 따르는 주인공의 손으로 지어진 터라 화성에 숨어있는 많은 비밀들은
천주교와 관련이 있는 것이 많았는데 다음에 가면 그것들도 상세하게 바라보며
걸어봐야 겠다는 생각을 한다.
새로운 성읍은사람들이 바글거리고 비옥한 땅에서는 곡식이 넘쳐나며 사통팔달 성문으로
사람들이 쉴 새 없이 오가는 흥겨운 고을을 꿈꾼 정조ㅡ
그래서 성문의 이름도 팔달문과 장안문으로 지어 모든 것이 드나들고 오래 평안한 곳이
되기를 기원한 그의 애달픔이 느껴진다.
수원화성은 너무 아름다운데 그곳에서 천주교박해의 어두운 역사가 숨어있는 줄은
정녕 모르고 있었다.
이 책을 통해 수원화성을 볼 때마다 애달픈 정빈과 유겸의 인생이 떠오르고 자신의
인생을 이끌어준 왕을 위해 혼신을 다해 성을 지어간 태윤의 모습이 어릴 것 같다.
달빛 좋은 밤에 수원화성을 거닐며 그들의 삶을 조용히 위무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