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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더 알아야 하는가
토마스 허카 지음, 이순영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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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캐나다 토론토 대학교 철학과 석좌교수인 토마스 허카(Thomas Hurka)의 저서 <무엇을 더 알아야 하는가>는 현대 선택 윤리학의 대가가 대중을 위해 집필한 교양 철학서이다. 


이 책은 '좋은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오래된 질문에 대해 쾌락주의나 욕구 충족 이론을 넘어, '인간 개성의 실현과 균형(완전주의)'이라는 독창적인 관점에서 답을 탐구한다. 


토마스 허카는 인생에서 추구할 만한 가치 있는 본질적인 선(Intrinsic Goods)으로 쾌락(행복), 지식, 성취, 미덕, 우정과 사랑의 다섯 가지 요소를 제시한다. 


저자는 하나의 가치만 극대화하는 삶보다, 다섯 가지 가치가 균형을 이루는 '다재다능하고 조화로운 삶'이 더 가치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하나의 학문(지식)에만 평생을 바친 이보다, 적절한 성취와 따뜻한 우정, 쾌락을 골고루 누린 삶이 도덕적·인간적으로 더 완전하다는 논리인 것이다. 이른바 다원주의적 완전주의(Pluralistic Perfectionism)이다. 


또한 '가족이 먼저인가, 일이 먼저인가?', '돈 때문에 꿈을 접는 것은 불행인가?' 같은 일상적이고 속속들이 현실적인 딜레마를 철학적 가치의 충돌과 조율이라는 관점에서 나름의 답을 풀어낸다.  


저자는 가치들이 결핍될수록 그 가치의 중요성이 커지므로 골고루 채워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무엇이 적절한 균형인가'에 대한 정량적 혹은 구체적 기준은 말하지 않았다. 사람마다 처한 환경과 성향이 다른데, 보편적인 가치 배분의 황금 비율을 철학적으로 규정하려는 시도는 다소 무리가 있으며 현실적인 실천 지침으로 기능하기에 모호하다는 느낌도 든다. 


그가 제시하는 '지식', '성취', '미덕'의 균형은 상당 부분 개인의 자유로운 선택과 일정 수준 이상의 사회경제적 여유를 전제로 할 것이다. 당장의 생계나 생존 투쟁에 직면한 취약 계층에게 "학문적 지식과 성취의 균형을 맞추라"는 조언은 지나치게 이상적이거나 엘리트주의적인 접근으로 비쳐질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적 구조나 불평등이 개인의 가치 추구를 제한하는 현실적 문제 또한 깊이 있게 다루지 않았다. 

요약하면 토마스 허카의 <무엇을 더 알아야 하는가>는 추상적인 윤리학을 일상의 식탁 위로 끌고 내려와 '어떻게 살아야 가치 있는가'를 다원적으로 사색하게 만드는 좋은 철학서이다. 그러나 개개인의 특수성과 사회적 제약 조건을 세밀하게 고려하지 못한 채 조화와 균형이라는 추상적 가치에 머물렀다는 점, 그리고 대중성을 위해 철학적 엄밀함을 다소 희생했다는 점은 이 책이 가진 양날의 검이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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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죽음 의식 - 정년퇴임을 앞둔 한 교수의 인생성찰
이영희 지음 / 백산서당 / 200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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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희 교수(인하대 법학과 명예교수, 전 노동부 장관)의 저술 <삶 죽음 의식>은 저자가 정년퇴임을 앞두고 집필한 인생 성찰록이자 철학적 에세이다.


이 책에선 인간의 삶을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세 가지 본질적인 측면에서 접근한다.


1. 죽음의 탐구: 비문증을 겪으며 죽음의 문제를 대면하고, 인간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원인을 분석한다.


2. 생명과 삶: 죽음이라는 대립항을 통해 역설적으로 생명의 가치와 참된 삶의 의미를 정의한다.


3. 의식의 역할: 삶과 죽음을 규정하는 핵심을 '의식'으로 보고, 뇌와 존재의 관계 및 인간 의식의 특징을 고찰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지식인의 관념적 유희에 그치지 않고, 노학자가 생의 끝자락에서 마주한 실존적 고뇌를 담백하게 풀어내고 있다.


또한 법학자이자 행정가였던 저자가 철학, 생물학, 의학적 관점을 넘나들며 삶과 죽음을 입체적으로 재해석했다.


다가올 죽음을 예감하며 쓴 글이기에 기성 종교의 사후세계 교리에 의존하기보다, 인간 스스로의 '의식'을 통해 주체적으로 죽음을 수용하고 삶을 완성해 나갈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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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특기 중 하나는 청춘, 자유, 정의, 배려 같은 보편적 가치를 선점하여 마치 진보좌파의 전유물처럼 홍보하는 전략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의 책 <공감필법>도 그러한 차원에서 '타인을 위한 배려' 내지 '타인과의 공감'이라는 그럴듯한 테제를 이용한 글쓰기 교본이라 하겠지만, 지금까지 써 왔던 <글쓰기 특강>이나 <표현의 기술> 같은 저자 자신만의 "도구주의 필법"의 연장선에 있는 글이라 다소 진부하고 반복적인 면이 있다. 

유시민의 소위 "도구주의 필법"의 문제는 논리적 정합성을 최우선 가치로 여겨 문학적 감수성조차 논리적 수단으로 전락시켰다는 점에 있다 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공감필법>에 내재하는 문제와 한계점은 다음과 같다. 

1. 문학의 수단화와 도구적 이성
이 책은 문학을 그 자체의 예술성으로 향유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내 글을 더 설득력 있게 만들 것인가'라는 효용성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유시민은 감정(공감)을 논리를 보강하는 강력한 연장(tool)으로 취급하고 있다. 이는 문학의 다층적 의미를 '글쓰기 근육'을 키우기 위한 자양분으로 단순화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2. 반복되는 '유시민 스타일'의 한계
이미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등에서 정립된 "쉽고 명확한 글쓰기"라는 교조적 원칙이 이 책에서도 반복된다. 독자들은 새로운 미학적 통찰을 기대하지만, 결국 '정확한 문장 + 타인의 감정에 대한 전략적 이해 = 좋은 글'이라는 기존의 공식이 문학이라는 옷만 갈아입은 채 재등장한 것으로 비춰진다.

3. 단조로운 해석의 틀
문학 비평의 관점에서 볼 때, 그의 필법은 텍스트를 정치·사회적 맥락이나 도덕적 당위성으로만 치환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문학이 가진 모호함의 미학을 제거하고, 모든 문장을 '전달 가능한 메시지'로 규격화하려는 도구주의적 집착의 결과물로 해석된다.

4. <항소이유서>의 미화와 실체적 진실의 괴리
유시민은 자칭 '명문'으로 꼽는 <항소이유서>를 언급하며 지식인의 양심과 공감을 강조한다. 하지만 <항소이유서>는 <서울대 민간인 감금 고문 폭행 사건>이라는 실제 범죄 행위에 대한 반성보다는 당시의 시대적 정당성과 논리적 방어에 치중해 있다는 평을 받는 글이다. 비판론자들은 무고한 시민을 고문한 사건의 가해자가 쓴 글이 '민주화 운동의 상징'처럼 소비되는 현상을 두고, "피해자의 울분은 삭제된 채 가해자의 문장력만 칭송받는 기묘한 공감"이라며 <공감필법>이 말하는 공감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결국 유시민의 글쓰기는 '독자를 설득하는 기술'로서는 완성형일지 모르나, '영혼의 울림을 기록하는 예술'로서는 여전히 무미건조하고 기능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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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 칼 세이건이 인류에게 남긴 마지막 메시지
칼 세이건 지음, 김한영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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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반적으로 칼 세이건의 사상은 전형적인 유물론자이다. 

우주의 모든 법칙은 물리학적 인과론으로 설명될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수학과 물리학, 그리고 인간 이성의 가치를 최고로 내세운다. 


그는 신을 비롯한 모든 관념적 철학을 부정하며, 물질의 기계론적 역할만을 궁극의 원리로 규정한다. 


언필칭 '창백한 푸른 점'인 지구의 소중함을 일컫기도 했지만, 물질에서 진화한 인간의 기계론적 우연성의 소중함을 지키기 위함이었지, 우주의 창조에 내재한 신성이나 '코스믹 마인드'의 의식적 역할은 애초에 부정했다.


그래서일까, 아들을 두 명이나 낳은 본처 린 마걸리스를 하루 아침에 버리고, 재혼과 삼혼을 서슴지 않는 애정행각도 벌인다. 


기계론적 유물론자답게 동물적 본능에 지극히 충실했던 칼 세이건. 

그에게 인간적인 도리나 책임 같은 건 그다지 큰 가치가 없었나? 


칼 세이건은 과학적 도구로서의 수학적 방법의 유용성을 피력하는 대목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질적으로만 안다면, 그것을 아주 막연하게 아는 것에 불과하다. 대상을 양적으로 안다는 것은 그것의 크기를 숫자로 이해하여 무수히 존재하는 다른 가능성으로부터 그것을 구별할 줄 안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대상을 깊이 있게 아는 첫걸음이다. 그럴 때 우리는 대상이 가진 아름다움을 이해할 수 있고, 그것이 제공하는 힘과 이해에 접근할 수 있다. 수량화를 두려워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권리를 스스로 박탈하는 것이다. 세계를 이해하고 변화시키는 데 가장 필요한 관점 하나를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인간이 하늘을 난다는 것은 인간이 소유한 힘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그러나 막대한 힘에는 막대한 책임이 따른다." 


"우주가 몇 개의 자연 법칙에 의해 이해될 수 있다면, 신을 믿고자 하는 사람들은 모든 자연을 지탱해 주는 특별한 이성을 바로 그 법칙 속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우주와 인간은 물질의 기계론적 메카니즘의 산물이라는 한마디로 대변되는 칼 세이건의 사상은 ... 글쎄 무신론자, 유물론자 또는 사회주의 사상가들에게나 유용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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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특기 중 하나는 청춘, 자유, 정의, 배려 같은 보편적 가치를 선점하여 마치 진보좌파의 전유물처럼 홍보하는 전략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 책 <공감필법>도 그러한 차원에서 '타인을 위한 배려' 내지 '타인과의 공감'이라는 그럴듯한 테제를 이용한 글쓰기 교본이라 하겠지만, 지금까지 써 왔던 <글쓰기 특강>이나 <표현의 기술> 같은 저자 자신만의 "도구주의 필법"의 연장선에 있는 글이라 다소 진부하고 반복적인 면이 있다. 

유시민의 소위 "도구주의 필법"의 문제는 논리적 정합성을 최우선 가치로 여겨 문학적 감수성조차 논리적 수단으로 전락시켰다는 점에 있다 할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공감필법>에 내재하는 문제와 한계점은 다음과 같다. 

1. 문학의 수단화와 도구적 이성
이 책은 문학을 그 자체의 예술성으로 향유하기보다, '어떻게 하면 내 글을 더 설득력 있게 만들 것인가'라는 효용성의 관점에서 접근한다. 유시민은 감정(공감)을 논리를 보강하는 강력한 연장(tool)으로 취급하고 있다. 이는 문학의 다층적 의미를 '글쓰기 근육'을 키우기 위한 자양분으로 단순화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2. 반복되는 '유시민 스타일'의 한계
이미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등에서 정립된 "쉽고 명확한 글쓰기"라는 교조적 원칙이 이 책에서도 반복된다. 독자들은 새로운 미학적 통찰을 기대하지만, 결국 '정확한 문장 + 타인의 감정에 대한 전략적 이해 = 좋은 글'이라는 기존의 공식이 문학이라는 옷만 갈아입은 채 재등장한 것으로 비춰진다.

3. 단조로운 해석의 틀
문학 비평의 관점에서 볼 때, 그의 필법은 텍스트를 정치·사회적 맥락이나 도덕적 당위성으로만 치환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문학이 가진 모호함의 미학을 제거하고, 모든 문장을 '전달 가능한 메시지'로 규격화하려는 도구주의적 집착의 결과물로 해석된다.

4. <항소이유서>의 미화와 실체적 진실의 괴리
유시민은 자신의 명문으로 꼽히는 <항소이유서>를 언급하며 지식인의 양심과 공감을 강조한다. 하지만 <항소이유서>는 <서울대 민간인 감금 고문 폭행 사건>이라는 실제 범죄 행위에 대한 반성보다는 당시의 시대적 정당성과 논리적 방어에 치중해 있다는 평을 받는 글이다. 비판론자들은 무고한 시민을 고문한 사건의 가해자가 쓴 글이 '민주화 운동의 상징'처럼 소비되는 현상을 두고, "피해자의 울분은 삭제된 채 가해자의 문장력만 칭송받는 기묘한 공감"이라며 <공감필법>이 말하는 공감의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결국 유시민의 글쓰기는 '독자를 설득하는 기술'로서는 완성형일지 모르나, '영혼의 울림을 기록하는 예술'로서는 여전히 무미건조하고 기능적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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