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가의 반어법 지식여행자 4
요네하라 마리 지음, 김윤수 옮김, 이현우 감수 / 마음산책 / 2008년 4월
평점 :
품절


요네하라 마리는 각종 리뷰와 서평에서 좋은 평가를 받은 작가라서 늘 관심은 있었다.
그래서 그녀의 '마녀의 한다스'라는 에세이가 세일을 할 때 얼른 사서 읽었었다. 그 때의 느낌은 뭐랄까. '기대만큼은 아니다' 라는 거였다. 기대가 컸던 모양인지 그저 상당히 먹는 걸 좋아하는 유쾌한 작가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 그래도 역시 미련이 남아 이 사람의 책을 한 권쯤은 더 읽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 때 '올가의 반어법'이 반값 세일 항목으로 소개되었다. 당연히 기회라고 생각해서 구입해 읽었다, 이 소설은 이전 에세이에서 작가에 대한 나의 기대가 반감되어서 그런지 예상보다 재미있게 읽었다. 오랜만에 소설 읽는 재미를 느꼈다고 하면 좀 과장한 건가? 과장이 아니라 정말 재미있었다.

원래 내가 이런 류의 악인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착한 성장 소설을 좋아한대다가 - 사실 이 책에 악인이 없는 건 아니다. 개인화 되지 않았을 뿐 거대한 악의 세력은 존재했다. 그걸 불쾌하지 않게 묘사한 그녀에게 박수를 보낸다- 사건의 전말을 파헤치는 긴박감 까지 더해져서 좋았다. 

 작가의 분신이기도 한 주인공 히로세 시마가 프라하의 소비에트 학교를 다니면서 여러 친구들과 선생님을 만나는 것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그 학교의 무용선생님인 올가 선생님과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엘레오노라 선생님은 특별한 언행때문에 늘 이슈가 된다. 소설은 시마가 성장해서 올가선생님과 엘레오노라 선생님의 숨겨진 이야기를 파헤치는 과정을 담는다. 
 

이 때 1937년에서 1937년 사이의 스탈린의 정치적 숙청 과정-소련대숙청, 소련대학살- 과 관련된 이야기가 등장한다. 스탈린은 이 시기에 당내 정적들과 반스탈린주의자들을 대거 제거했는데 그 규모가 어마어마했다고 한다. 위키피디아에는 이 때의 사상자 수가 공식적으로는 681,692명이지만 실제로는 2백만이 넘는다고 나와있다. 작가는 억울하게 끌려간 사람들의 고난과 삶에 대한 강인한 의지, 그리고 인간의 존엄을 외면하는 불합리한 권력에 대해 놀랄만큼 담담하게 묘사했다. 감정의 과잉없이 사건을 그대로 전달하는 그 담담함이 마음에 들었다. 담담함 속의 슬픔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사람이 사람에게 어떻게 이렇게 잔인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다. 정치적 계산, 경제적 이해관계등등 모든 요소들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나와 같은 종(種)인 인간에게 그럴 수가 있을까? 

 '거리(distance)'의 문제가 아닐까? 우리는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의 고통에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러나 내 시야를 벗어난 일에 대해서 우리는 곧잘 현실감을 잃곤 한다. 전쟁이 언제부터 대량 살상이 되었나? '털없는 원숭이'의 데즈먼드 모리스에 의하면 그것은 적(敵)이 명령을 내리는 지휘관의 눈 앞에 안 보이게 되면서부터라고 한다. 버튼 하나만 누르면 미사일이 날라가고 표적을 표시하는 화면속에서 작은 불빛만  몇개 번쩍일 뿐이다. 우리는 그 불꽃 속에서 죽어가는 개인들을 떠올리지 못한다. 그 시대 소련의 그들도 그랬을까? 비단 그 때 일만은 아닌 것 같다. 최근에도 우린 그런 경험을 이라크에서 했으니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