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기 교양강의 - 사마천의 탁월한 통찰을 오늘의 시각으로 읽는다 돌베개 동양고전강의 1
한자오치 지음, 이인호 옮김 / 돌베개 / 2009년 8월
평점 :
절판


사람 사는 이야기만큼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을까?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내 장래 희망은 역사학자였다. '사랑이 뭐길래'라는 주말 드라마가 대히트를 칠 때도 나는 고원정이 진행하는 역사다큐 - 역사스페셜의 전신이 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그 때도 프로그램이름이 역사스페셜이었는지 확실치 않다-를 보며 뭔지 모를 설레임에 즐거워했다. 물론 6학년 이후로 장래 희망은 바뀌었다.^^

 오랜만에 가볍게 읽을 역사책을 찾던 중에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사기는 원래 꽤 방대한 역사책인데 이 책은 한(漢)나라 수립 전후의 인물들 중심으로 일부만 소개하고 있었다. 읽고 나니 왠지 모자란 기분에 다음에 날잡아 제대로 된 걸 읽어야겠다는 결심만 했다.

 인물에 집중해서 읽을 때 나는 장수나 군주 보다는 왠지 모사쪽에 더 흥미를 느낀다. 삼국지를 읽을 때 내 맘속의 주인공은 제갈공명이었고 열국지의 주인공도 나에게는 전반부에 나오는 관중이었다. 여기선 장량편을 즐겁게 읽었다.  

유가는 '아는 것은 모두 말하고 일단 말하면 남김없이 말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러므로 원칙을 견지하고 죽는 한이 있더라도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합니다. 도가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생명입니다. 생명조차도 보존하지 못하면서 무슨 다른 가치를 따질 수 있겠냐는 것이 도가의 생각입니다. 도가는 나서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삼는데 장량은 모든 언행에서 그런 가르침에 충실히 따랐습니다.

조언을 하거나 건의하는 경우, 장량은 대개 유방이 먼저 물어야만 입을 열었습니다. 혹은 다른 사람이 먼저 말을 꺼내도록 하고 장량은 상황을 봐가면서 보충할 것이 있는지 결정했습니다. 요컨대 장량은 신중했으므로 행동은 느렸지만, 일단 행동하면 반드시 성공했습니다. 또한 조언하거나 건의할 때도 적정선에서 그치고 말았지, 유방의 심기를 건드릴 정도로 끝까지 밀어붙인 적이 없습니다. 
 

역사 속에는 유난히 실패한 이상주의자들이 많다. 그들은 대개 급진적인 이상을 추구했고, 그들의 이상이 절대적이라고 믿었으며 그 과정에서 굽히거나 타협하는 것은 자신의 신념에 대한 배신으로 생각했다. 목숨을 바쳐 지킬만한 신념이 있으면 족하다는 그들의 모습에서 나는 왠지 마초의 그것을 본다. 사기 속의 장량은 좀 달라보였다. 장량의 처세를 보면 약간 페미나인하다는 느낌이 든다. 단단하고 굽힐 줄 모르는 영웅이라기 보다는 '쿼바디스'의 페트로니우스같은, '참기름 병모가지'처럼 매끈한 느낌이다. 효율성의 측면에서는 드센 '조광조류'의 이상주의자보다는 더 좋았을지도 모르겠다. 
 

속도를 조절하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선에서 자신의 목표를 수정하고 살아있는 것에 더 큰 가치를 부여하는 듯 보이는 장량의 모습이 어쩌면 이 시대에 환영받는 인간상이 아닐까 싶다.변화가 빠른 시대에는 '유연성'이 중요한 덕목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삶의 가치와 관계는 물론이고 삶의 방식도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따라서 낡은 가치에 매달려가는 사람은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편협한 사람으로 인식된다. 그런 면에선 역시 장량같은 유형이 경쟁력을 가질 것 같다. 하지만 그렇겠다 싶다가도 불현듯 고지식하고 뻣뻣한 사람이 그립기도하다. 세상에 변하지 않은 가치가 있다고 믿으며 그것을 마지막까지 지키고자 안간힘을 쓰는 '뻔히 실패할 줄 알면서도 달려드는' 그런 우직스러움. 어느 것이 옳은 것인지 구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한쪽을 비난하는것도 부질없는 일이다. 결국 역사는 두 가지 유형의 사람들을 모두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둘 다 옳다. 나는 어떤 쪽일까? 성향상? 나는 역시.. 살고 싶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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