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필의 미학
이태동 지음 / 문예출판사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한국수필의 미학] 한국수필과 사랑에 빠지다

 김진섭의 <백설부>를 읽으면서, 나는 백설에게, 김진섭에게, 그리고 한국수필에게 온 마음을 빼앗겼다.  김진섭은 한국수필의 아버지라 불릴만큼 유명한 수필가인데, 이제서야 나는 그를 만났다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다. 한편으론 지금이라도 그를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김진섭의 아호는 청천(聽川). 강을 듣다. 평범한 일상과 자연이 내는 특별한 소리에 귀기울이는, 수필가 '김진섭'다운 아호이다.

 

 수필은 짧은 문학이다. 그러나 그의 문장은 호흡이 길다. 한 문장이 열 줄을 넘기기 일쑤이다. 마침표 없이, 쉼표로 이어지는 긴 문장들은 막힘이 없고 아름답다. 그가 얼마나 공들여 문장을 짓고, 수 번을 소리내 읽으며 퇴고했을지 상상이 간다. 김진섭의 수필에는 한자어와 수식어가 많은데, 거부감이 전혀 들지 않으니 신기할 노릇이다. 마치 시 감상을 하듯, 한 문장, 한 문장을 되내이게 되니, 수필의 아름다움이란 이런 것인가, 하고 절로 흐뭇해진다.

 

 수 없이 백설을 볼 때마다 느꼈지만, 입 밖으로 내거나 글로 옮길 능력이 안되어, 머릿속에 백설, 그 자체로 담아 두었던 심상을, <백설부>에서 만났다. 1939년 발표된 <백설부>에서 읽혀지는 백설의 기쁨이, 2014년 겨울의 백설의 기쁨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 신기하다. 1903년 생인 그의 감수성에서 동질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이 또 한번 신기하다.

 

 수필을 쓴다는 것은, 창작보다 발견에 가까운 행동일지도 모르겠다. 내 눈길이 닿기를, 내가 그 소리에 귀기울일 수 있기를, 만물이 춤추고 노래하면서 손짓하고 있을까. 2015년 초봄, 내 일상에는 김진섭의 바람이 불고, 한국 수필의 꽃봉오리가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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