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막한 세상을 응시하는 깊은 눈, 김훈 장편소설 『 공터에서 』
"세상은
무섭고, 달아날 수 없는 곳이었다."
막막한
세상에서 몸 비빌 수 있는 작은 거점은 어디인가?
김훈의 신작 장편소설 '공토에서'는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우리 현대사를 빼놓을 수 없는 굵직한 사건들을 배경으로
20세기 한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겪어낸
아버지와 그 아들들의 비애로운 삶을 통해 드러난다.
일제시대, 삶의 터전을 떠나 만주 일대를
떠돌 수 밖에 없었던 아버지가 겪어낸 파란의 세월,
해방 이후 혼란스러운 시간과 연이어 겪게
되는 한국전쟁,
군부독재 시절의 폭압적인 분위기, 베트남
전쟁에 파병된 한국인들의 비극적인 운명,
대통령의 갑작스런 죽음, 언론통폐합, 급속한
근대화와 함께 찾아온 자본의 물결까지.
말그대로 망막하고 비통한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던 시대, 두렵고 무섭지만 달아나려 해도 달아날 수 없는 현실에서
우리 자신이 어떤 삶을 꾸려나갈 수
있을까를, 우리의 영혼을 쉬게 할 거점이 어디인가를 돌아보게 만드는 작품이다.
열차는 새벽 5시 용산역에 도착했다. 역전
광장은 어두웠다.
김밥, 찹살떡, 박카스를 파는 행상들이
휴가병들에게 달려들었다.
역전 광장 건너편 공제회관 건물에서 대통령의
죽음을 애도하는 대형 현수막이 바람에 펄럭였다.
창녀들이 목도리로 얼굴을 싸매고 눈발 속에서
서성거렸다.
마차세는 광장을 가로질렀다. 서울 서쪽
외관으로 나가는 첫 버스를 타려면 30분 이상을 기다려야했다.
대통령이 살해된 후에는 대낮부터 술꾼들이
몰려들어서 수군거렸다.
벽에 쓰인 낙서들이 죽은 대통령의 죄악을
성토하고 권력에 빌붙은 교수들에게 침 뱉고,
배신한 여자를 저주했다. 마차세는 야전잠바
주머니에서 박상희의 편지를 꺼냈다.
휴가 나오기 전에 동부전선 GOP에서 받은
편지였다.
빨랫거리가 없는 날 마동수는 경부선 철로
가에 흩어진 코크스 찌꺼기를 주워서 풀빵 굽는 노점상에 팔았다.
날이 저물면 마동수는 우암동 피남닌
수용소에서 잠을 잤다. 그 자리는 소시장이었는데, 전쟁이 나서 소 거래가 끊어지자
가축우리에 문짝을 달고 바닥을 깔아서
피난민을 수용했다.
마장세와 마차세가 거기서 태어났다.
가축우리에서 어떻게 두 아이가 태어날 수 있는 것인지, 이도순은 잘 기억할 수 없었다.
마차세는 주간 경제 잡지 기자로 3개월
근무하고 실직했다. 대통령이 부하의 총에 맞아 죽고,
그 사건을 수사하는 군인이 최고 권력의
자리에 올랐다. 세상에 어지러운 말이 너무 많고,
말이 말을 불러들여서 난세의 혼란이
계속되무로 난세를 치세로 바꾸어 가지런히 하려면 말을 줄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 신문 잡지를 없애든지, 여러
개를 하나로 합쳐야 한다는 것이 권력의 방침이었다.
해고되는 사람과 고용이 유지되는 사람들의
명단도 권력 쪽에서 내려왔다.
마차세는 회사 고위층에 와 닿는 권력의
작용이 어떠한 것인지를 알지 못했다.
....
김훈의 아홉번째 장편소설 '공토에서'는
이승만, 박정희 등을 거쳐 국가권력이 옮가가는 것을 목격하여
그에 따라 영광은 작고 치욕과 모멸이 많은
우리 삶의 꼴이 달라지고 있는 것을 자전적 경험을 바탕으로 집필된 작품이예요.
192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우리
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굵직한 사건들을 마씨집안의 가장인 아버지 마동수와
그의 삶을 바라보며 성장한 아들들의 삶을
통해 이야기를 전해들을 수 있습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있었던 일들이며, 영화
'국제시장'의 배경과 비슷하다는 느낌이 들며,
지금보다 더 난국이었던 시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은 하루하루를 어떻게 살아갔는지 볼 수 있었다.
과거 우리 부모님의 부모님시대의 삶을 다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시대에 열심히 살아줬기에
지금 우리가 모든 것을 자유롭게 누리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 시대의 어려운 현실이 있듯, 지금
우리에게도 어려운 현실은 있고, 이런 현실을 어떻게 잘 헤쳐 나갈것인가
그것이 문제이며, 이런 삶 자체가 벗어나려
해도 벗어 날 수 없는 인생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