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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월의 살인
김별아 지음 / 해냄 / 2018년 6월
평점 :
2005년 베스트셀러「미실」로 제1회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김별아
신작 장편소설 「구월의 살인」은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조선 뒷골목의
살인 사건에 작가 특유의 세밀한 상상을 더해 소설화한 이야기로,
역사 속에 가려진 사람의 이야기를 복원하며 당대 미제로 남아있던
살인 사건을 해결해 가며 사건의 주범과 그를 돕는 조력자들의 이야기
그리고 사건 이면의 진실을 좇는 이의 시선이 끊임없이 교차하며
손에 땀을 쥐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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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별아 장편소설 「구월의 살인」
석양이 내릴 무렵 도성 한복판에서 일어난 살인
효종 즉위년(1649년), 조선 사회를 뒤흔든 괴이한 사건의 실체.
이 모두가 우연일 수도 치밀한 계획일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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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너희가 잘할지 몰라도 수사는 내 발꿈치에도 미치지 못하리라!'
피를 봐야 한다. 피로 고인 못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시체를 만져봐야 한다.
앞으로 엎어진 시체를 뒤집고 반듯이 누운 시체를 엎어야 한다.
흩어진 살점이 있으면 모아야 한다. 조각조각 토막난 몸뚱이는 주워 맞춰야 한다.
눈을 까뒤집고 혀를 빼내고 몸의 은밀한 구멍까지 살펴야 한다.
뿜어낸 거품이며 토해낸 토사물이며 내지른 똥오줌까지 보고 만지고
냄새를 맡아 확인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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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영청은 임금을 호위하기 위해 만든 군대로 병자년의 난리를 겪으며 조직이 팽창했다.
어영청 무관이 변사를 당하다니 자칫 역모나 정치적 사건으로 비화될 만한 일이었다.
지당하게도 초검과 복검과 더불어 수사와 심문이 특별히 철저했다.
변사한 무장은 남소영 소속이었다. 남소영은 어영청의 분영으로 명철방의 남소문 옆에 있었다.
사체는 인상사, 즉 칼에 찔려 죽었다. 후골 아래를 찌른 칼의 길이는 한 자에서
조금 못 미쳐 팔 촌쯤되는데, 남소영의 동료와 가족들이 확인하길 죽은 무장의 것이라 하였다.
어쨌거나 자기의 칼에 자기가 죽었으니 일단으 자할사부터 으심했다.
하지만 가족과 주변인들이 입을 모아 망자가 자해하거나 자살할 까닭이 없다고
증언할뿐더러 사체의 상흔이 자할로 치기에 미심쩍은 면이 있었다.
상처의 깊이로 봐서는 자할일 수 없다. 그런데 치명적이고 깊은 상처가
단 하나뿐이라는 사실과 칼자국의 방향으로 보아서는 자할이 분명하다.
사인 자체게 미궁에 빠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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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광주부윤이 작성한 검험 기록을 뒤적이던 정방유의 눈에 문득
이물스러운 이름이 들어왔다.
"네, 시신을 처음 발견해서 뒤집어보니 배 밑에 향집이 달린 노리개가 깔려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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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집은 단도 앞에서 침착을 잃지 않았다. 칼을 든 손을 자기 왼존으로 붙들고
오른손으로 다시 잡아 찌르지 못하게 방어한 뒤, 온몸의 무게를 칼 든 팔에
실어 작다리와 쓰러졌다. 동시에 손목을 비틀며 칼을 떨어뜨리고 머리꼭지로
면상을 들이받아 박치기를 하니 작다리는 코와 입에서 피를 뿜으며 한순간 무너졌다.
돌이켜보건대 계집은 특별한 기술을 썼다기보다 상대의 약점을 정확히 파악해
공격했을 뿐이었다. 그야말로 저울로 가늠질할 수 없는 바람의 요사였다.
계집은 생각보다 앳되고 호릿하였다.
계집은 성큼 발을 내딛어 윤 선달을 향해 다가왔다.
계집의 몸에선 분내도 땀내도 아닌, 정체를 알 수 없는 쇳내 같은 것이
진하게 풍겨났다. 계집이 쉰 목소리로 나지막이, 그러나 또렷이 말했다.
"원수를 갚으려 하오. 도와주시오!"
그녀가 구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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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떠나자! 벗어나자!"
구월의 주인영감은 구월에게 혼인을 하면 나가 살면서
세공을 바치도록 허락해주겠다고 약속을 했다.
"솔거 노비에서 외거 노비로 사는 곳을 바꾸는 게 전부가 아니다."
"면천을 기다리는 게다."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세조 임금 시절에 반란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우면, 명종 임금 때는 왜구와 싸워 군공을 세우면 노비 문서를
불사르고 면천해 주었다.
사랑에 빠진 구월은 한없이 어리석어져 석산만 있다면 어디서 무얼 해도 좋았다.
구월에게는 다른 무엇도 아닌 석산이 희망의 전부였다.
"넌 걱정마라. 나한테 계획이 있다."
그토록 자신 있게 구월을 어르고 달래던 석산이, 그 빛나던 얼굴이 지워졌다.
한순간에 낯설고도 무서운 얼굴이 눈앞에 드리웠다. 얼마나 악물었던지
죽어 벌어진 입안에 어금니들이 전부 부서져있었다.
죽어서도 감지 못한 눈에 핏줄이 터져 피눈물이 고여있었다.
희망으로부터 절망까지가 얼마나 다밭은지 알리기 위해
지옥에서 찾아온 귀면이었따.
미제로 남을 뻔했던 어영청 무장 변사 사건을 해결한 후 형조내에서
전방유를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적어도 드러내놓고 비웃거나 무시하는
일은 더 이상없었다. 하지만 여전지 소가 뒷걸음질 하다 쥐를
잡았다고 쑥덕공론하는 이들이 있었고, 정방유도 자신에게서
발견된 느닷없는 재능에 어리떨떨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가지는 명확했다. 그는 들었다.
죽은 사람의 말. 시체를 둘추고 시취를 견디며 그 말을 듣기 위해
귀를 기울였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자세히 듣고 정확히 보면 반드시 들을 수 있다.
그것만이 죽은 자를 위로할 뿐 아니라 산 자를 구할 수 있는 길이다.
'승전원일기'에 언급된 39개의 기사를 거치며 작가에게 구월의 살인은 살인 사건이되
단순한 살인 사건 이상의 무엇일 수 밖에 없다는 확신을 주었다.
이 소설은 기록 사이에 간극을 메우는 작가의 섬세한 시선으로 역사 속에서
가려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으며, 한 개인의 가장 소중한 것을 빼앗긴 뒤
복수만을 위해 칼을 갈던 삶의 끝에서 벌어진 일이다.
산 사람의 말 대신 죽은 자의 말에 귀 기울여온 전방유만이 유일하게 진실을
파헤치며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가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보여주고 있다.
살인사건의 범죄 추리극으로 끝까지 긴장을 놓치지 않게 만드는
김별아 장편소설 '구월의 살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