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로 사랑에 속아주는 버릇
류근 지음 / 해냄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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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것은 더 아프게, 슬픈 것은 더 슬프게

에세이 「함부로 사랑에 속아주는 버릇」

 

김광석 <너무 아픈 사랑은 아니었음을>의 노랫말을 쓴 시인이자,

시집 '상처적 체질' 등을 통해 상처와 외로움을 진솔한 언어와 

감정을 표현한 시인 류근의 산문집이 출간되었다.

 

 

 

 

 

어떤 슬픔에 대해서 천천히 이야기해보기로 하겠다.

 

함부로 사랑에 속아주는 버릇,

그리고 함부로 인생에 져주는 즐거움.

 

 

당신과 손을 잡고 함께 울어도, 백 명이 모여 함께 울어도,

천 명이 다 함께 보여 우우 울어도, 언제나 우는 것은 

나 혼자 우는 것이었다. 그러니 괜찮다.

오늘은 아픈 내가 혼자 울면 된다. 비가 와서 당신 떠난 자리

지우기 전에, 나 혼자 나 혼자서 내 울음을 다 울면 된다.

나 혼자 울면 된다.


 

 

나는 타인에게 불친절한 예술가를 믿지 않는다.

예술가는 늘 자기 자신에게 불친절하고 화를 내는 사람인데,

그것이 범람해서 타인에게 들키는 순간 그는 그저 흔해빠진

저자의 장삼이사에 지나지 않게 된다. 자신을 향한 불친절과

분노가 타인을 지향할 수 있다는 것은 결국 그가 지금 현재

자기 자신을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고,

더 이상 영혼의 균형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자백하고

있는 것이다. 

통제와 균형에서 일탈한 자를 누가 예술가라 부를 수 있을 것인다.

 

 

 

물은 낮은 데로 낮은 데로 흘러서 결국 바다에 가 닿는다.

지구의 가장 낮은 곳에 바다가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가장 낮은 곳에

있다는 바다는, 지구에서 가장 깊은 곳이고 지구에서 가장 넓은 곳이고

지구에서 가장 힘이 센 곳이다.

세상의 가장 낮은 자리에 누가 사는가. 힘없고 병들고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가.

사람의 가장 낮은 자리엔 무엇이 사는가. 서럽고 외롭고 그리운 마음들이 사는가.

슬퍼 말자, 언제나 가장 깊고, 가장 넓고, 가장 힘센 것들은 모두 다 

낮은 자리에 산다. 그 위대한 힘들이 다 나의 이웃이고 동무다.




 

 

밤새 너에게 편지를 쓰다가 흑흑 흐느껴 울었다.

그런게 아니라고,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목이 메어서 고개를 들자 꿈이었다. 지독히도 선명한 총천연색 꿈.

가을의 예감은 꿈속에서조차 비애롭구나. 하늘이 높아질 수록

어깨는 낮아지고 구두 굽은 실족 쪽으로 쉽게 기울어진다.

넘어지지 않기 위해 바닥을 응시하는 일...

가을에 내 존재의 각도가 굽어지는 이유.



 

나는 어디론가로 가는 버스 안에서 그의 부음을 라이도 뉴스로 들었다.

어리둥절해져서, 그러나 곧 정신을 차리곤 합의할 수 없는 비현실감을

씻어내기 위해 혼자서 낮술을 마셨다. 그 취기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2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그가 떠나고 남은 별에 그의 노래가 

유서처럼 떠돈다. 이제 우리 다시는 사람으로 세상에 오지 말기.....


 

 

 

우리는 어제나 가진 것보다 가지지 않은 것을 더 좋아한다.

그러니까 자꾸만 지금 가지지 못한 것을 더 가지려고 

몸부림을 치다가 결국 지금 가졌으나 별로 사랑받지 못했던

목숨을 놓고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죽음 쪽으로 건너 가는게 아닌가.

 

 

 

 

 

사랑해요. 라는 고백조차 파도를 보내서 나 대신 울어주는 바다.

 

 

 

 

내가 죽으면 이런 풍경이 올까.

아무도 오지 않는 장례식장에서 오래오래 술을 마셨다.

 

 

이 책은 지독한 상처를 견디어본 자가 구사하는 

궁극의 화법을 담고 있으며, 농담과 진담 사이, 

행간에 숨어있는 슬픔의 연대를 발견할 수 있다. 

 

저자 특유의 표현에 따라 맞춤법의 구어적 사용,

비속어 표현 등이 담겨 있으며. 

5개의 장으로 나누어 희망을 기다리거나,

팍팍한 일상을 견디거나, 과거를 돌아보거나, 

세파에 휘청이거나, 마음에 상처를 입은 '그대'와

나누고픈 시인의 메세지가 담겨있다. 


에세이를 하나하나 읽으면서 느끼는 건...

고단한 현실속에서도 순정과 진정성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시인의 화법과 고백, 상처와 사랑을 동시에 끌어안으려고 

하는 내면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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