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업주부입니다만 - 지금, 여기에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기
라문숙 지음 / 엔트리(메가스터디북스)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지금 여기에 자기자신으로 살아가기

전업주부입니다만 라문숙 지음

 

그녀는 '주부이고 아내이고 엄마인 나'와 그냥 '나'사이,

그 어딘가에 있다.

어떤 날은 제자리를 찾은 듯 만족스럽다가도,

때로는 울렁거리는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여기가 아닌 먼 곳을 바라보곤 한다.

마침내 그녀가 말을 하기 시작했다.

작은 목소리가 우리의 당연한 일상에 파문을 일으킨다.

 

 

전업주부라는 정체성을 전면에 내세운 이 에세이는 한 사람의

사적인 이야기가 아닌, 현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결혼한 여성들의

대신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든다.

스스로를 대접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라 어떤 사람이라도 될 수 있어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지만 내가 나일 수 있어서' 좋다는 말에

아무것도 아닐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절망을 갖고 살았던

나에게 희망적을 전해주고 있다.

 

이 책은 목차부터 전업주부라면 공감할 단어들로 꽉차있다.

나도 어린시절이 있고, 청소년, 꽃다운 청춘으로

살았던 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주부... 아니면 아줌마로 불린다.

행복하고 싶어서 결혼을 했지만 선택하지 않아도 될 수 밖에

없었던 주부, 많은 전업주부들이 가족의 뒷바라지에 지쳐 자신을

잃고 우울함에 시달리는 경우가 있는데,

이 에세이를 읽고 희망을 품고 나를 찾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매일 똑같은 나날을 다르게 보내는 방법을 알고 있습니다.

끝없는 집안일을 해치우는 가운데,

문득 햇살이 비치는 순간을 잡아두거나 계절이 다가오는

소리를 듣는 것이지요.

오늘, 발 딛고 선 이 자리에서 풀어가는

전업주부의 우울하고도 행복한 하루하루.


 

 

 

집안일은 끝도 없다. 종류도 많고 시간도 품도 많이 든다.

매일 하는 일이지만 건너뛰기가 안 되는 일들이다.

큰맘 먹고 손을 놓으면 그다음 날에

정확히 두 배의 일거리가 되돌아온다.

 

나는 경계에 서 있는 주부다. 다른 직업이 없으니 전업주부요,

본업에 충실하지 못하니 불량 주부다.

남의 세상이 좋아 보여 한 발 넣었다가도 낯설고

두려워 발을 빼는 겁쟁이고, 편안하고 정결한 공간,

온기 어린 식탁을 꿈꾸지만 여전히 집을 벗어날

기회를 호시탐탐 엿본다.

 

직업을 묻는 각종 양식의 빈칸에 주부 외에 달리 쓸 무엇도

가지지 못한 자신에 대해 종종 어처구니 없다고 여긴다.

가끔 우울하고 가끔 행복하다.

행복할 때는 잊었다가도 우울하면 종종 생각나는 그 친구,

지금도 귀여운 여인으로 살고 있을지 궁금하다.

 

 

요즘 세탁기는 똑똑하다. 일반적인 세탁물 외에 울과 란제리,

아기 옷, 이불, 기능성 의류 등 세탁물 종류와 양에 따라

각각 다른 코스로 빨래를 한다.

남편과 아이는 세탁기가 알아서 다 해주니 편하겠다고

주부인 나보다 더 즐거워한다.

물론 그 이면에 빨래란 당연히 내가 하는 일이라는 전제가 숨어있다.

 

정해진 프로그램대로 작동하기만 하면 제 몫을 다하는

세탁기는 그러나 그것만 할 수 있다.

세탁물을 나누고 세제 양을 계산하고 섬유유연제를

넣을지 말지 선택하는 건 세탁기 능력 밖의 일이다.

 

세탁기 예찬을 펼치던 식구들이 돌변할 때는 바로 이때다.

옷이 줄거나 늘어지거나 색이 변하면 식구들은

왜 나를 쳐다보는지 모를 일이다.

빨래는 세탁기가 다 한다면서!

 



 

 

 

아침이면 '할 일'을 적곤 한다. 목록 중에는 반드시 '정리하기'가 있다.

오늘은 내일로 하고 마음을 먹었다가는 다른 일에 밀리거나

피곤하다는 핑계로 눈을 슬쩍 감아버려도 누가 뭐라하지 않아

'정리'라는 단어 아래 모인 목록들은 제법 오랫동안 살아남는다.

 

서점에는 단순하게 살기, 비우기 버리기,

미니멀리즘에 관한 책이 넘쳐난다.

간단하고 심플한 삶이 인생의 모범 답안이라고,

심플 라이프를 위해서는 집과 물건과 맛있는 음식에

대한 욕망을 버리기만 하면 된다고 한다.

 

어수선한 집을 말끔하게 정리하려는 애쓰는 사이에

정작 어질러진 내 인생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잊혀가고 있음을 알았다.

 

세상은 물론 나를, 내가 사는 방식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저절로 오는 계절처럼

우리들 인생도 이대로 괜찮으니까. 정리를 못한 건

내가 근성이 없거나 게으른 탓이 아니라

정도 많고 사랑도 많아서라고 생각하기.

 

 

직장을 다니는 워킹맘이지만 '전업주부입니다만' 이 책의

내용들이 공감이 가는 부분들이 많다.

한가정을 버티게 해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바로 '전업주부'임을 남편은 아이들은 알까?

작년에 방영된 '고백부부'의 마진주를 보며

많은 주부들이 공감을 하며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전업주부는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가족을 뒷바라지 하는 사람이기 전에

하고싶은 것 많고, 꿈많은 한 인간임을 알아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