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군자론 - 리더는 일하는 사람이다
이한우 지음 / 쌤앤파커스 / 2020년 2월
평점 :
남들이 자신의 허물 지적하면 진심 기뻐했던 ‘자로’
[서평] 『군자론 (리더는 일하는 사람이다)』(이한우 저, 쌤앤파커스, 2020. 02.07.)
배움, 즉 철학을 멈추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다. 세상에 대한 인간의 감각이 동물에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철학으로서 세상을 느끼게끔 만들어졌다. 살면서 얻은 철학과 경험을 새로운 시각으로 재구성하는 일이 철학이고 배움이다. 이는 체육활동이나 향수를 새로 바꾸는 작은 변화로도 시작할 수 있다. 『군자론』은 그러한 점에서 통찰을 주는 책이다.
생계를 내팽겨 두고 책 속 글줄에 갇혀 탁상공론을 일삼으며 목숨을 아끼지 않는 고지식한 사람들은 군자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착하고, 가난하고, 도덕주의적인 것이 절대선은 또 아니다. 지도자라면 앞으로 나아가기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 만약 아첨하는 신하가 꼬인다면 그는 멈추어버린 지도자인 것이다. 책은 옛 선인의 말씀을 현대적으로 풀이하여 올바른 정치와 언행을 깨닫게끔 한다.
자로가 말했다. “만일 스승님께서 삼군(三軍)을 통솔하신다면 누구와 함께하시겠습니까?” 공자가 말했다. “맨손으로 호랑이를 때려잡고 맨몸으로 강을 건너려고 하여 죽어도 후회할 줄 모르는 사람과 나는 함께할 수 없을 것이니, 반드시 일에 임하여서는 두려워하고 계책을 잘 세워 일을 이루어내는 사람과 함께할 것이다.”
공자가 말했다. “옛것을 배워 익히고 그리하여 거기서 새것을 알아내면 얼마든지 다른 사람의 스승이 될 수 있다.” 다른 사람의 스승이 되려면 지식을 먼저 갖는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미루어 헤아리는 능력이 있을 때 가능하다. 만약 군자라면 뛰어난 이를 귀하게 여기고 뭇대중을 포용하며, 잘하는 이를 아름답게 여기고 능하지 못한 이를 불쌍하게 여겨야 한다.
고집불통과 중용을 파악하는 법
사실 군자란 여러 모습이 가능하다. 저자는 일과 사람에 밝은 자로서의 군자를 우리 사회에 던져보자는 취지로 이 책을 썼다. 다시 말해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로 하는 군자의 모습이 어떤지를 찾아 제시하여 함께 그 같은 군자상을 각자의 마음에 담아보자는 것이다. 책에는 ‘선비 정신’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한국의 정체성을 표현하고 소개하는 개념 중 하나다. 개인적 차원에서 선비 정신은 도덕적 삶과 학문적 성취에 대한 결연한 의지와 행동으로 나타난다. 사회적 차원에서는 수준 높은 공동체 의식을 유지하면서도 이질적 존재와 다양성을 존중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이에 따라 국회의원과 논원의 차이가 두드러진다. 우리는 국회의원이라고 하지 논원이라고 하지 않는다. 의정활동이라고 하지 논정활동이라고 하지 않는다. 의에는 책임이 따르지만, 논에는 책임이 따르지 않기에, 여론조사가 여의조사가 될 수 없는 이유다. 일이 말보다 중요하다는 뜻이다. 일을 통해 사람을 파악하고 다시 사람을 보아 일의 전개 과정을 미리 파악하는 문제의 차원에서 <춘추>와 <춘추좌씨전>을 읽게 되면 그 자체만으로 훌륭한 군자가 된다.
책에서 가장 맘에 와 닿은 구절이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지도자의 고집불통에 관한 것이고, 나머지는 중용에 관한 것이다. 고집불통이란 성격이라기보다는 일과 사람에 대한 태도와 관련된다. 한 우물만 파는 장인의 경우 이는 고집불통이 아니며 애씀을 배우려는 쪽에 가깝다. 그래서 사람을 제대로 알려면 그 사람의 애씀과 바탕을 판별하고 이어 그가 애씀을 배우려는 사람인지, 아니면 꼼짝도 않고 제자리에 머물러 있으려는 사람인지를 통해 그 사람됨을 살펴야 한다. 교만함이나 인색함에 젖어 있을 경우, 앞으로 단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좋은 점을 배우려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남을 무시하며 자기 세계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 바로 고집불통이다. 맹자는 공자의 제자 자로를 높이 평가했다. 그는 남들이 자신의 허물을 말해주면 진심으로 기뻐했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우왕의 경우 남들이 좋은 말을 해주면 절을 했다고 한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겉으로는 허물을 받아들이는 듯 하지만 대부분 속으로 서운한 마음을 갖기 마련이다. 고집불통, 교만함, 인색함, 서운함은 리더가 일을 하는 데 있어 닦아서 없애야 할 부정적 개념들인 것이다.
나를 다스려 세상을 보다
공자는 말했다. “말을 알지 못하면 사람을 알 수 없다.” 장차 배반할 사람은 그 말에 부끄러워함이 있고, 마음속에 의심을 품은 사람은 그 말이 산만하고, 훌륭한 사람은 말수가 적고, 초조해하는 사람은 말이 많고, 좋은 것을 무고하는 사람은 그 말이 둥둥 떠다니며, 지켜야 할 바를 잃은 사람은 그 말이 굽었다.
공자는 말했다. “(무언가를) 배울 때는 마치 내가 (거기에) 못 미치면 어떡하나 하는 마음으로 해야 하고, 또 (그것에 미쳤을 때는) 혹시 그것을 잃으면 어떡하나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해야 한다.” 순간적으로는 누구나 배움에 적중할 수 있고 유지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오래 끌고 가는 것은 쉽지 않다. 여기서 중용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중용은 한 단어가 아니라 ‘중하고, 용하다’라는 두 단어다. 중은 가운데 운운하는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고, 아직 도달하지는 못했지만 무언가 사안의 본질이나 핵심에 닿기 위해 갖은 애를 쓰는 것이다. 용이란 열과 성을 다하여 어렵사리 중하게 된 것을 가능한 한 유지하는 것이다.
책의 문구를 하나하나 음미하다 보면 어느 순간 공자의 생각이 우리 마음 속 깊이 자리 잡게 된다. 또한 말과 일 그리고 사람을 이해하는 법이 무언지 조금씩 깨닫게 된다. 삶이 아주 조금이라도 새로워지는 순간의 느낌은 머릿속 종을 깨운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의 의미를 다시 깨닫는 순간이다. 그와 함께 내가 아는 것이 없었음을 알게 된다. 나를 알면 세상 모든 일이 이미 내 안에서 일어나고 있었음을 알게 되기에, 나를 아는 일은 진정 타인과 세상을 아는 일이다. 눈에 보이는 세상이란 그저 실체로서 거대하게 투영된 내면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