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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대중의 탄생 - 흩어진 개인은 어떻게 대중이라는 권력이 되었는가
군터 게바우어.스벤 뤼커 지음, 염정용 옮김 / 21세기북스 / 2020년 2월
평점 :
자아를 강화하는 새로운 대중…‘반죽-혼돈’이 대중의 어원
[서평] 『새로운 대중의 탄생 (흩어진 개인은 어떻게 대중이라는 권력이 되었는가)』(군터 게바우어, 스벤 뤼커, 염정용 역, 21세기북스 2020.02.13.)
철학 전공자들이자 역사와 미디어 연구에도 일가견이 있는 두 공저자가 ‘대중’에 대해 논한다. 군터 게바우어는 현재 베를린 자유대학 철학 명예교수이다. 스벤 뤼커는 에세이스트이자 철학 강사이다. 이 책에는 박근혜와 최순실이 사례로 언급된다. 대중들이 광화문에 모여서 대통령 탄핵을 외쳤을 때 새로운 대중이 탄생하는 좋은(?) 사례로 제시된 것이다. 이때 새로운 대중은 ‘자아-강화’가 일어난다.
공저자들이 계속 언급하듯이 대중을 정의하기는 어렵다. 다만, 대중의 어원을 보면서 추적해볼 수 있다. 『새로운 대중의 탄생』에서 흥미로웠던 건 대중이 반죽을 뜻하는 그리스어 ‘maza’에서 파생되었다는 점이다. 반죽은 뒤죽박죽을 의미한다. 나중에는 이 단어가 혼돈으로까지 뜻이 확대된다. 마사지라는 단어 역시 영어의 ‘crowd’와 관련 있다. 이는 주무르다, 눌러 짠다의 ‘press’와 연결된다. 대중(masse)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의 어근인 massein도 주무르다는 뜻이라고 한다. 반죽-혼돈-마사지는 이상하게 연관이 된다.
대중을 보통 사람들 무리와 구분하는 기준은 다음과 같다. △ 집결하기 △ 지향성 △ 변화 △ 즉흥성 △ 육체성 △ 사회적 융합 △ 정서 반응 △ 구별짓기와 상대적 개방성 △ 폭력 △ 양면 가치. 공저자들이 주목하는 건 전통적 개념의 대중이 아니라 항의하고, 열광하고, 즐기는 새로운 ‘대중’이다. 이 대중의 관념은 포퓰리즘적 대중과 반대된다. 새로운 대중이 태동한 시기는 1950년대 유럽, 1960년대 중반 미국의 대학가이다. 대중이 단지 폭력만 행사하는 집단이 아니라 평화를 지향하고 순응하는 보통 사람들로 구성된 문화의 주류로 자리매김한다.
“새로운 대중은 참여한 개인들이 서로 다른 역할을 한다는 면에서 포퓰리즘적 대중과 구분된다.”-9쪽.
대중의 어원은 반죽과 혼돈을 뜻하는 단어
『새로운 대중의 탄생』는 대중 이론의 서로 다른 세 시기를 구분한다. 1. 1900년경으로 프랑스 혁명이 있었던 시기다. 이때 대중의 위력은 그들의 시위 장소가 비어 있어도 무시 못할 정도로 계속 파급되고 커져간다. 2. 미국에서 중산층이 사회 주류를 이루면서 연속적 방식으로 대중이 탄생한다. TV 같은 뉴미디어 덕분에 집결해서 동시에 똑같이 행동하며 파급력을 행사할 필요가 없어진다. 3. 1960, 1970년대 이래 대중의 다원화가 이루어진다. 특수성(singularity) 사회가 대중 현상과 결합하는 시기로 관찰자=행위자가 된다.
1장은 ‘대중은 어떻게 탄생하는가’이다. 『새로운 대중의 탄생』엔 무수히 많은 영화와 문학 작품, 역사적 사례들이 제시되고 있어 읽는 데 도움이 된다. 대중의 탄생 관련, 알프레드 히치콕의 <새>라는 작품이 언급된다. 무수히 많은 새 떼는 어떻게 인간을 불안으로 이끄는지 알 수 있다. 말없는 동물들을 보면 사람들은 불안해하는데, 이로써 어떻게 대중이 탄생하는지 모범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고 공저자들은 적었다.
좀 더 단계적으로 살펴보면, 대중은 모여서 의식을 형성해간다. ▶ 첫 번째 단계 : 책에서 흥미로웠던 표현인데, 사람들은 이미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모인다고 한다. ▶ 두 번째 단계 : 수많은 사람들이 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것. ▶ 세 번째 단계 : 일체화된 행동으로 의식과 생각을 형성한다. 즉, 상상력이 생긴다. ▶ 네 번째 단계 : 참가자들 사이에서 자신이 지금 무언가를 바꿀 수 있는 대중의 일원이라는 의식이 생긴다. 분노와 저항을 불러올 잠재력이 들끓는다.
2장 ‘대중은 어떤 원리로 움직이는가?’에선 대중에 대한 여러 이론들이 등장한다. 프랑스의 사회심리학자인 르봉은 대중의 정신 상태는 최면에 빠진 인간의 상태와 같아서 전파된다고 보았다. 최면술사=지도자라는 공식이 성립한다. 철학자 니체는 개인적 정체성을 통해서 대중을 바라봤다. 개인의 자아는 그 안에서 권력을 다투는 내부 세력들이 다수 존재하고, 우세한 충동이 자아를 형성한다. 대중 역시 마찬가지다. 마지막으로 뒤르켐의 '발효 과정' 이론이 소개됐다. 발효를 거쳐 분노하는 시민들이 탄생한다.
“새로운 대중 속에서 개개인은 자기 자신이 개인적으로 풍부해진 것을 경험한다. "우리들=자아*+자아*+자아*…"-111쪽.
3장은 ‘이중 대중’인데, 이 표현도 참 흥미로웠다. 하나의 대중은 다른 대중이 있어야만 존재한다. 마치 선과 악, 빛과 그림자가 동시에 존재하는 것과 같다. 이중 대중의 특성은 화합하지 않고 분열한다는 점에 있다. 이중 대중을 안정화하는 것은 그 집단의 내부에서 안정적인 동일성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그 집단의 외부에 있는 또 다른 대중을 비판하고 무시하면서 가능해진다.
4장은 ‘포퓰리즘’이다. 대중 안에는 너무 많은 것이 들어 있기에 제대로 표상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한다. 불쌍한 한 두 명은 드러낼 수 있어도, 절망스러운 1백만 명을 다 보여주긴 힘들다는 뜻이다. 대중영합주의인 포퓰리즘은 침묵하는 국민을 대신해서 발언하며 나타난다.
“포퓰리스트들은 자신에 대해 긍정하는 말을 하지 않고, 남들에 대해 부정하는 말을 한다.”-15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