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심
고은채 지음 / 답(도서출판)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이상의 ‘날개’와 쌍둥이 같은 소설 ‘연심’

[리뷰] 고은채 작가의 『연심』(답, 2018.03.15)

 

고은채 작가의 소설 『연심』(답, 2018.03.15)을 끝까지 읽고 작가 후기를 보았다. “처음 연심을 쓴 건 18살 여름이다. 한국 사람이라면 모두가 알고 있는 ‘박제가 된 천재’의 이야기를 듣다가 불현 듯 첫 문장이 생각나 문학 선생님 몰래 교과서에 적어 두었다……. 그리고 스물 하나가 되었다.”

 

거의 3년을 묵혀 세상에 나온 작품이었다. 작가가 소설을 구상한 계기가 작가 이상의 소설을 읽고 나서라는 점도 놀라웠다. 내가 『연심』을 읽는 내내 느꼈던 감정이 다시 생각해 보니 이상의 소설과 매우 비슷했던 것이다. 고은채 작가가 “글자들로 인물을 종이 위에 박제하다.”라고 지칭한 것과 같이 그의 인물들은 결국에 가서 박제된 삶을 살게 된다.

 

줄거리는 이렇다. 은휘라는 20대 초반 여성이 카페에서 재우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얼마 안가 은휘가 청혼을 한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은휘는 수많은 고난을 겪어왔다. 아주 오래 전 사랑하는 어머니를 여의고, 폭력적인 오빠와 무관심한 아버지 사이에서 자라나, 사랑하지 않은 남자와 결혼할 운명에 놓인 상태였다.

 

순종적인 삶을 살아가던 은휘는 성당에서 피에르 신부를 만나 사랑에 대한 새로운 정의를 듣게 된다. 신부는 은휘를 ‘아가페’로 여기며 사랑했고, 은휘는 신부가 죽은 뒤 아가페와 같은 남자 재우를 만나서는 평생을 함께 할 것을 약속한다. 이 과정에서 은휘는 아버지 몰래 결혼을 하고 집을 나간다. 행복한 결혼 생활 도중 아버지 사망 소식을 듣고, 남편 재우는 사회주의 혁명가로 낙인 찍혀 옥에 갇히게 된다. 재우가 다시 나왔을 때는 몸을 못 쓰고 정신도 온전히 못했다.

 



아가페의 사랑과 결혼 그리고 행복

 

재우는 종일 잠만 잤으며, 대신 은휘는 돈을 벌기 위해 식당 일을 나가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결혼할 뻔했던 남자 박동빈을 식당에서 만난다. 박동빈은 일본에서 결혼을 한 상태였는데, 은휘를 본 뒤로 과거 무시당했던 순간이 떠올라 은휘를 괴롭히는 지경에 이른다. 은휘가 일자리를 얻지 못하게 근처 식당들에 어르고 결국 궁지에 빠진 은휘를 붙잡아 능욕해버린다. 그 대가로 돈을 주어서는 재우의 치료비와 생활비를 감당하게끔 노예로 만든다. 은휘는 재우를 위해 모든 치욕을 참는다. 박동빈은 심지어 은휘의 집까지 와서 겁탈을 하는데 그 때마다 은휘는 재우가 알아차리지 못하게 미리 수면제를 먹인다.

 

『연심』은 1930년이라는 배경을 시작으로 전체 구성이 작가 이상의 소설과 매우 비슷했다. 이상의 『날개』를 보면, 주인공은 건강하지 못하고, 밤낮없이 잠을 자며, 아내에게 사육된다. 그리고 매음 행위를 하는 아내는 주인공을 방에서 나오지 못하게 수면제를 먹이고는 한다. 이상의 주인공 ‘나’와 고은채 작가의 ‘재우’가 아내에 의해 감기약 아스피린과 수면제 아달린을 먹게 되는 경우도 같았다.

 

마지막 부분에서 『날개』의 주인공은 아내의 매춘현장을 목격하고 거리를 쏘다니다가 건물 위에서 사이렌 소리를 듣고는 자유를 갈망한다. 주인공의 자유 의지가 심리로 표현된 것이었다. 『연심』의 경우 재우는 은휘가 외출을 할 때면 화장대에서 놀곤 했는데, 봄바람을 맞던 어느 날 정신이 퍼뜩 들어 ‘알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고 ‘연심’을 외쳐대며 집 밖으로 뛰쳐나간다. ‘연심(戀心)’은 재우가 오랫동안 잊어버리고 있었던 은휘의 애칭이었다.

 

소설에 나온 문장 중 은휘의 상황을 단적으로 묘사하는 적절한 문장이 하나 있었다.

 

“은휘는 박동빈이 사준 검은색 코트를 꺼내 입었다. 목덜미에 털이 달려 보드랍지만, 살아 있는 것의 목숨을 끊고 붙여 놓은 것의 냄새는 언제나 슬프고 동정스럽다.”

 

죽음과 삶 사이를 예리하계 비유한 문장이었다. 이렇듯 젊은 작가이면서 첫 작품인 『연심』은 묘사가 매우 섬세했다. 감수성이 풍부한 작가라는 느낌이 들었다.

 

감수성이 예민한 작가의 첫 작품

 

내용의 경우 전반적으로 설명이 많아 에세이 소설과 같았는데, 전개가 빠른 편이었다. 예를 들어 “찻잔을 쥔 손이 조심스레 요동쳤다. 안에 들어 있는 차가 흔들리며 은휘의 입술을 놀래키더니, 그 후에는 덜덜거리며 전체가 흔들렸다. 손이 흔들렸다는 것은 그 안에서 허용할 수 있는 불안감이 한계를 넘었다는 것이었다. 통제할 수 없을 만큼.”이라는 문장을 보면 충분히 이전에 은휘의 상황을 독자가 추측할 수 있음에도, 굳이 독자가 느껴야 할 추상적 느낌을 말로써 구체화 해버렸다. 느낌이 글로 박제된 셈이었다. 이 경우 설명된 감정은 작가의 것이며 독자의 것이 아니기에, 독자에게는 여운이 오래 남지 않을 수도 있었다.

 

소설은 내내 ‘재우에 대한 은휘의 사랑’을 보이며, 벼랑 끝으로 걷게 되는 은희를 보였다. 그럼에도 소설 『날개』에 맞춰 이야기를 진행시키려다보니 주인공과 사건이 자연스레 흐르지 못한 점이 군데군데 있었다. 재우와 결혼을 결심하기에 앞서 둘의 관계를 좀 더 애틋하게 묘사했으면, 은휘가 왜 그렇게도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까지 재우를 사랑하는지를 쉽게 받아들이고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었다. 왜냐하면 나의 경우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이 얼마나 재우를 사랑하는지 쉽사리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흐름상 진도만 나간 느낌이었다.

 

한편으로는 신부에 대한 사랑을 재우에 투영한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사랑하는 신부님께 당신을 소개하러 왔어요.” “나, 묘비를 세우거든 아가페라고 적어줄래요? 아가페. 사랑이래요. 내가 사랑으로 받은 첫 이름이었어요.”라며 아가페와 신부를 여러 번 언급한 부분들이 많았다. 또한 그간 은휘가 재우를 애틋이 여겼으면서도 재우가 집을 나간 뒤 애써 찾지 않고 아침까지 집에서 재우를 기다린 것과 계속 일을 하겠다는 다짐들도, 재우에 대한 애틋함이 적어 보이는 묘사들이었다.

 

그럼에도 고은채 작가는 『연심』으로 새롭고 독특한 시도를 보였다. 은휘라는 인물을 ‘연심’이라는 또 다른 이름으로서 자유롭게 만들고 또한 박제 시킨 점과, 이상 소설에 숨겨진 심리와 상황을 새롭게 묘사한 점은 눈여겨볼만하다. 특히 감정과 심리를 비유하는 문장력이 좋았다. 훗날 고은채 작가의 다른 소설이 나온다면 꼭 읽어보고 싶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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