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내력 호밀밭 소설선 소설의 바다 2
오선영 지음 / 호밀밭 / 2017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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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회나 결과 모두 평등하지 못한 사회, 그 내면

[리뷰] 『모두의 내력』(오선영, 호밀밭, 2017.12.20)

 

오선영의 소설책이 나왔다. 2013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등단에 소개된 단편소설 『해바라기 벽』을 포함한 총 8편의 단편 묶음 집 『모두의 내력』(오선영, 호밀밭, 2017.12.20)이다. 인물들은 대체로 현실에서 만날 법한 존재들이며,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개인적인 경험들이 이야기로서 전개되었다. 그래서인지 읽는 내내 이야기가 전혀 낯설지 않고 금세 그 인생들에 수긍하게 될 정도다.

 

오선영은 글쓰기와 관련된 학과를 졸업하지는 않았다. 대학교 3학년 때 소설을 한 편 써 어머니께 드리고 “잘 썼다”는 말을 듣게 된 것이 소설쓰기의 출발이라고 작가는 말했다. “내 소설의 출발은 어머니로부터다.” 어머니의 용기어린 말 한마디가 오선영 작가의 삶을 바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가가 지은 소설 세계들에는 ‘사람’이 있었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다양한 사회조직 안에서 매일 매일을 사는 주인공들이 주요 주제로서 나온다.

 

작품들 가운데 『백과사전 만들기』는 군인인 아버지가 나온다. 자신의 딸이 계급이 높은 동료의 아들에게 백과사전을 빌리는 조건으로 코가 벌게지도록 대가를 치러야 했던 사건이 발생하게 된다. 이에 아버지는 36개월 할부로 백과사전 전집을 즉시 주문하고는 자존심을 회복한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백과사전을 버리지 못하고, 이후로도 자존감을 찾기 위해 백과사전에서 삶의 답을 찾으려 자주 책장을 넘기고는 한다. 주인공은 신조어가 없는 백과사전에서 아버지가 찾으려는 ‘테블릿 pc’에 대한 단어와 뜻 등을 끼워가며 부재하는 제도에서 아버지가 찾고자 했던 모든 내용을 담은 백과사전을 만들어 나간다.

 



사람들과 사회조직 안에서 관계 맺기

 

『밤의 행진 속』 작품은 결혼을 위해 저렴한 전셋집을 구하려 밤늦게까지 발품 파는 신혼부부의 이야기이다. 신부는 고급 아파트에 앉아 쉬다가 주민이 아니라는 이유로 쫓겨난 경험이 있다. 신랑은 그런 신부에게 보잘 것 없는 프로포즈를 한다.

 

신부는 전세 집을 찾으러 다니며 자신이 경험한 취업 준비 시절과 단칸방 시절을 떠올렸고, 결혼 후에도 이어질 지긋한 생활을 떠올리며 결혼에 대한 회의감을 가진다. 그러다 늦은 밤 달동네의 허름한 전셋집에서 도시의 야경을 보게 된다. 그리고는 그곳을 신혼집으로 선택하기로 신랑과 서로 동의한다.

 

작가는 이야기를 쓰는 내내 지나다니는 주변의 사람들 역시 자신의 이야기 속 인물이 될 수 있음을 여러 번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기회도 결과도 평등하지 못한 사회의 내면을 이야기로 담으려 애를 썼다. 또 다른 작품 『로드킬』은 잊혀져가는 수많은 직장인들의 존재가 한줌의 명함으로써 소리 없이 파도에 쓸려가는 모습을 보인다.

 

책의 제목과도 같은 단편 『모두의 내력』에서는 ‘나’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나는, 성균 선배가 나를 좋아하고 있다고 믿는 학생이며, 존경하는 인디아나 존스를 유물파괴범이라 칭하는 고고학계의 바이블 정 교수를 이해 못하는 주인공이었다.

 

또한 나는 주변 여자들과 바람을 피우며 엄마를 싫어하는 아빠를 이해 못하고 있었다. 이에 엄마에게 이혼을 말했지만 엄마는 “아버지가 말하기 전까진 함부로 추측하면 안 돼”라고 오히려 나를 나무랐다. 이에 엄마마저 이해를 못하게 된다.

 

중간에 교수는 이런 말을 한다. “기와와 처마도 저마다의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그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세요. 보이는 것만 가지고 추측하지 말고, 각 사물들의 내력을 생각해 봅시다.” 뒤에 가서 이야기는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나를 각별히 대해주던 성균 선배가 민주라는 아이와 이미 사귀고 있었고, 교수가 발굴을 하는 모습이 마치 다른 시공간에 있다는 느낌을 어느 날 받게 된다. 또한 그토록 증오해온 아빠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엄마는 왜 아빠를 참고 기다렸는지, 그 모든 것의 내력에 의문을 갖는다. 마치 자신이 오해하고 있는 타인의 대한 부분 역시 ‘내력’에 불과하듯이 말이다.

 

내가 오해하는 타인의 내력들

 

작품들 가운데 가장 먼저 실렸고 또 등단작품으로 유명한 『해바라기 벽』은 유난히 뇌리에 남는다. 벽화마을로 유명해진 주인공의 집 앞 부근에서 한 남자가 사진을 찍는데 우연히 주인공이 찍히게 된다. 휴지를 들고 공중 화장실로 급히 뛰어가는 모습이었다.

 

화려한 벽화와 달리 주인공의 삶은 보잘 것 없었다. 주인공은 SNS 상에서 부유한 집에 사는 척 남들의 환심을 살며 만족을 하던 중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공중 화장실로 뛰어가는 모습이 실시간 검색 1위로 오르면서 ‘화장실 없는 소녀를 돕자’는 운동이 시민들 사이에서 일게 된다.

 

작품에서 주인공의 현재 상황은 여러 모습과 대조되어 나타났다. 허름한 집안과 화려한 벽화, 화려한 SNS 상과 가난한 실제. “벽과 담에 노란 해바라기가 수십 송이 피었다. 나는 해바라기 감옥에 갇혀버렸다. ....동물원의 원숭이를 보듯 사람들은 할머니와 나를 구경했다. 장식된 벽화에 관심을 가질 뿐, 감옥 같은 우리 집에 사는 할머니와 나에게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점점 사람들의 관심이 SNS 상 자신이 아닌 실제 자신에게 쏠리면서 주인공은 으쓱해하기 시작한다. 또한 사람들의 말처럼 진짜로 자신에게 화장실 달린 집이 생길 거라는 기대를 하게 된다.


하지만 거짓으로 운영해온 주인공의 블로그가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후원금을 보내지 말자는 쪽으로 입을 맞추게 된다. 그리고 주인공과 가족들이 쇼를 했다며 욕을 한다. 주인공은 갈등을 하다가 좌절을 한다. 여전히 집 앞은 사진 찍는 사람들이 가득한데, 그 앞에서 주인공은 해바라기 벽화에 똥물을 퍼부어버린다. 작가는 『해바라기 벽』을 쓴 후기에 “벽화에 보이는 이면을 소개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에 누군가가 카메라를 들이밀고 사진을 찍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를 소설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이다.

 

한편으로 오선영의 단편 묶음 집의 몇몇 부분들은 이야기 전개를 위해 어느 정도 설정이 되어 있었다. 하대 받는 주인공 옆으로 우연히 벤츠 차량이 지나가는 부분 등이 그랬다. 이야기 구성을 위해 작위적인 듯 끼워 넣어진 느낌이었다. 그럼에도 작품들에는 대조되는 상황이 이야기를 극적으로 묘사하는데 알맞게 이용되었고 인물들도 모두 독특한 과거로써 묘사되었다. 왠지 오선영의 단편들은 재미있지만 다 읽고 나서 그리 개운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희화화된 작품 내에 우리가 모르는 사회의 불협화음이 담겨있어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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