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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괴 ㅣ 다음, 작가의 발견 7인의 작가전
정명섭 지음 / 답(도서출판) / 2017년 12월
평점 :
세화 병원의 붕괴 그리고 원초적 두려움이 만나면
[리뷰] 『붕괴(진실은 무너진 건물 안에 있다!!)』(정명섭, 답, 2017.12.15)
소설 속 인물들은 붕괴된 세화 병원으로 들어가 자신의 가족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소설 『붕괴(진실은 무너진 건물 안에 있다!!)』(정명섭, 답, 2017.)는 마치 세화 병원이 무너진 이유를 밝히려는 수사대의 이야기를 다루는 듯 이야기를 진행하였다. 이 작품은 영화화해도 좋을 만큼 긴박함과 스릴러적 요소를 갖고 있다.
주요 인물로 세화 병원을 수사하는 자들이 나온다. 병원이사장으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은 자들이다. 메일 내용은 “엑토컬쳐 실험이 실패했기에 후문에 함께 모여 붕괴 직후 구조대를 조직해 들어가자.”였다.
각자 붕괴 1년 전, 10개월 전, 4개월 전에 엑토컬쳐 시험 대상자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권투선수 아들에 죽임을 당한 상대선수를 확인하기 위해 들어가는 남자, 아들과 아내를 병원에 두고 있는 남자, 수영 경기 때 위험에 빠진 남자 친구를 구하지 않고 죽게 한 여자 등 다양한 사연의 인물들이다. 그리고 이외 십여 명의 사람이 추가로 세화 병원이 무너지던 8월 19일 오후 4시에 약속이라도 한 듯 한 곳에 모였다. 모두들 병원에 자신의 가족을 입원시켰거나 치료하게 한 경험이 있으며, 또한 치료 시 ‘엑토컬쳐’와 관련된 서류에 서명까지 했던 이들이었다.
엑토컬쳐 시험 대상자들을 구하려는 사람들
소설 내용 중 무너진 건물 주변에서 인터뷰하는 모습이 묘사된다. 그 중 한 남자가 “병원이 무너지기 전 어떤 남자 아이가 병원 위에 유령처럼 둥둥 떠 있었다.”는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하지만 이러한 허무맹랑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있을 리 없다. 그런데 이 남자 아이의 존재가 훗날 이야기 뒷부분에서 다시 나온다.
소년은 엑토컬쳐 실험대상자들을 염력으로 조종하는 유일한 실험성공체였다. 문제는 병원 이사장 역시 소년에게 조종당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줄거리를 보자면 이사장은 사람들을 데리고 누구도 알지 못하게 점차 지하로 깊이 내려간다. 그러면서 민간 구조대들을 모두 죽이려고 데리고 온 것처럼 이야기가 진행된다. 우연인지 민간 구조대들은 모두가 똑똑해 난관을 잘 헤쳐 나갔다.
세화 병원이 무너진 이유는 병원 윗부분의 붕괴 때문이었다. 그러나 본질적 붕괴 이유가 이사장 본인에 의한 건지, 염력 있는 소년이 의도한 것인지는 여전히 혼동된다. 명확한 답을 책에서는 찾을 수 없었다. 또한 책은 재난물이 아니기에, 병원이 무너진 이유와 관련해서는 나오지 않는다.
작가는 책을 쓴 이유로 “우리 안의 악몽을 다루고 싶었다.”고 적으며 엑토컬쳐와 인물들 간의 대립을 주요 내용으로 두었다. 막상 작가가 말하고픈 주제는 책에서 구체적으로 느낄 수 없었다. 호러물이나 범죄 스릴러 같기은 긴장감을 품은 소설이었다. 간간이 ‘나쁜 기억’에 대한 이사장의 설명이 추가되긴 했지만 그저 이야기의 한 부분으로 느껴져 그것만으로는 주제를 파악할 수 없을 정도였다.
주제 의식 드러내기보단 분위기 짙은 소설
책은 전반적으로 빠르고 숨막히게 읽혔다. 다음 장이 궁금하게끔 독자를 이끌어나간 점은 좋았다. 배경은 세화 병원 지하이며, 사건은 엑토컬쳐를 무찌르고 가족을 구하려는 민간 수사대의 노력이다. 그런데 인물의 경우 심리가 상황에 따라 쉽게 변하곤 했다. 인간 내면을 울리는 깊이를 파악하기 쉽지 않아서인지, 특정 인물 하나조차 책을 덮고서 기억에 남지 않았다.
책은 중후반으로 갈수록 인물들의 행동에 초점이 맞추어진다. 다양한 인물들이 병원의 지하에서 머리가 깨지고 손이 비정상적으로 긴 엑토컬쳐들의 모습을 보거나 동료 수사대들이 죽어가는 모습을 본다. 그러면서도 평정심을 유지하며 인물들 모두가 앞으로 나아가는 부분이 나온다. 이 경우 역시 다소 작위적이어서 공감이 가지는 않았다. 또한 여느 재난 영화와 같이 가장 힘이 쎈 깍두기 남자가 사람들을 이끌고 엑토컬쳐를 주도적으로 죽이는 역이 강조되어 나온다. 극적인 효과를 위해 만들어낸 설정인 것만 같았다.
작가는 후기에, 인간이 내면에 가지고 있는 공포와 고통에 관심이 많았다고 적었다. 타인에 대한 뿌리 깊은 질투심과 증오, 평소에는 억눌러야만 한 그런 감정들을 마음껏 폭발시킬 수 있다면 어떤 모습을 보일지 궁금해 그것을 책 『붕괴』로 표현해 냈다고 한다. “녹색 세상은 어둠을 들여다볼 수 있게 해주었다……. 증오로 탄생한 자들, 이 어둠이 엑토컬쳐들을 악마로 만들었지만 우리에게도 빛이 주어지리라고 믿는다.”는 서술 부분이 대표적이고 인상적이다.
이사장 역시 작가를 대변해 작가의 생각을 여러 번 언급한 인물로 나온다. “엑토플라즘으로 만든 피실험체들 중에는 종종 당사자의 생김새나 기억을 공유하는 경우가 생깁니다.”는 내용이 그렇다. 마치 독자에게 직접적으로 말하는 듯하다. 한편으로는 독자에게 설명을 하려 따로 이사장을 이야기 밖으로 끄집어내버린 듯한 느낌도 들었다. 이야기 속 인물들의 행동과 심리를 통해 독자가 자연스레 주제를 알도록 해주어 옳았다.
이외 “근래에 벌어진 몇 가지 사고들이 어떤 식으로든 세화 병원과 연결되어 있다.”는 부분 역시 두루뭉술했으며, 병원이 붕괴한 날짜 ‘8월 19일’가 강조되어 책 표지에까지 적힌 것 역시 왜 그 날짜였는지 알 수 없었다. 작가는 자신의 붕괴된 마음과 마주친 자들, 그리고 마음을 붕괴시킴으로써 마음속의 공포와 고통을 마주보는 것을 이야기로 만들려고 했다. 작가는 엑토컬쳐와 사람들 사이의 원초적인 두려움을 이용해서 서로 싸우게 만든 거라고 후기에 적었다. 그러나 그런 의도가 적확하게 잘 표현되지 않은 것 같다. 으스스하고 긴박한 스릴러물로만 여겨진다.
책은 재미있고, 문체도 술술 넘어갈 정도로 매끄럽다. 다만 한 편의 호기심 어린 이야기로서만 내용이 진행된 점은 아쉽다. 주제가 책에 잘 표현되지 않았고, 인물들의 경우도 일회용인 듯 여겨진다. 이사장의 총에 맞은 여자가 쓰러진 부분에 뒤이어, 여자가 다시금 멀쩡히 걸어와 “총알이 살짝 비껴갔어요.”라고 말하는 부분도 어색했다. 딱히 병원 붕괴와 관련하지 않고 다양한 배경에서 만들 수 있는 이야기들이었다. 내용에 주제가 잘 녹아든 소설을 위해 좀 더 다듬고 내용도 고민한다면 멋진 이야기가 탄생할 거라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