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의 나라 - 성폭력 생존자와 가해자가 함께 써내려간 기적의 대화
토르디스 엘바.톰 스트레인저 지음, 권가비 옮김 / 책세상 / 2017년 12월
평점 :
절판


강간의 가해자와 피해자, 서로를 치유하다

[리뷰] 『용서의 나라』(토르디스 엘바, 톰 스트레인저, 권가비 옮김, 책세상, 2017.12.25.)

 

토르디스 엘바는 『용서의 나라(성폭력 생존자와 가해자가 함께 써내려간 기적의 대화)』(토르디스 엘바, 톰 스트레인저 저, 권가비 역, 책세상, 2017.)를 지은 작가이자 성범죄 전문가다. 그런데 아이러니 하게도 작가의 직업이 성범죄 전문가가 된 이유는 과거 성범죄를 당한 피해자 신분에서부터였다.

 

놀라운 점은 공동 작가인 톰 스트레인저가 바로 가해자라는 것이다. 피해자와 가해자가 함께 대화를 나눈다는 부제와 별도로 그들이 함께 책을 써 나갔다는 것이 내 정서로는 익숙지가 않았다.

 

가해자와 피해자는 서로 연인사이였다. 그리고 성관계도 몇 차례 나누었던 사이였다. 그런데 남자 측의 한 순간 강압적 행동으로 둘의 사이는 멀어졌고, 거리마저 멀리 떨어지게 되었다. 두 당사자는 30살이 훌쩍 넘은 16년 만에 다시금 만남을 가졌다. 그 사이 8년간 300여 통의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앙금을 해결하려고도 했지만, 풀리지 못한 응어리가 있어 둘은 만나서 얘기하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일주일간 대면하며 서로 용서하고 치유한 경험적 내용들을 책으로 엮었다.


사건은 1996년에 일어났다. 10대였던 두 사람은 술이 취한 상태에서 파티장을 나와 여자의 집으로 가게 되었다. 여자는 술을 많이 마셔 입에 거품을 물었지만, 남자는 자신이 안전하게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며 여자를 이끌었다. 당시 여자는 ‘연애 관계’라는 틀에 묶인 채였고, 그래서 집으로 들어선 뒤 남자의 충동적 행동이 강간임을 인지 못했었다. 여자는 그날 밤 짧은 드레스를 입었으며 술도 많이 마신 상태였다. 여자는 자신이 처신을 잘못했다고 비난받을까 싶어 이 사실을 숨겼고 남자도 마찬가지였다. 각자 진실에서 도망쳤다. 그러나 마음은 안정되지 못했다.

 


치기 어린 행동 그리고 남은 후회

 

2005년 여자는 지구 반대편으로 떠나버린 남자를 용서하고 싶다는 편지를 보내며 8년 동안 서신을 통해 대면했고 2013년에 만남으로써 절정을 이루게 된다. 여자는 메일을 주고받던 중 깨달음을 하나 얻었는데 그것은 내가 행복하려면 용서할 수 있어야 한 점이었다. 두 남녀는 만나서 인생 초기부터 사건이 발생한 때까지를 회상하며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강간이 성립되기 위한 ‘올바른 처신’ 따위의 모범적인 대응이란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가 오갔다. 또한 이른 나이 때부터 외부에서 강간 사건을 피할 방법을 교육받아도 실제로는 아주 가까운 사람, 아주 친숙한 장소가 가장 위험함도 말이다.

 

나는 제3자의 눈으로 책을 보았다. 아마 독자 대다수는 강간과 관련 없는 이들일 것이었다. 이들이 보는 강간 사건이란 그동안 뉴스나 다큐가 전부였을 것이다. 그것도 표면적인 처벌을 받는 부분이다. 이와 달리 『용서의 나라』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심리적 부분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놀라운 점은 가해자 역시 피해자만큼이나 복잡한 심정을 품고 있음으로 묘사가 된 것이다.

 

남자의 경우 20대가 넘어 ‘자신이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을 세워갈 적에 의식적으로 더 깨끗한 ‘재료들’을 이용하려 했다. 부모님과 친구들이 나를 보는 기대, 내가 가진 정치적 신념, 자연에 대한 애정, 서핑 같은 것들을 말이다. 그러나 과거는 아무에게도 털어놓을 수가 없었다. 또한 남자는 지난 시절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는데, 등에 털이 나는 등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이겨내지 못하고 제모를 해버리곤 하였다.

 

두 작가가 만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케이프타운은 성범죄율이 높기로 유명하다. 이러한 곳에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불안을 잠재우며 시간을 보냈다는 상황이 역설적이었다. 책 중간에 여자는 남자를 만나 용서를 말하려는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기도 하였다. 왜냐하면 그녀에게는 자식들이 있고, 새로 약혼한 남자 비르디가 있었다.

 

가해자와 피해자, 불안을 잠재우다

 

물론 약혼자를 포함한 가족들에게 먼저 자신이 지난 과거 속 가해자를 만나러 가겠다는 사실은 알린 상태였다. 가족들의 걱정과 달리 여자와 남자의 만남은 별탈없이 흘렀다. 일주일의 시간동안 남자는 자신의 행위를 ‘강간’이라 올바로 인지했고 다음 순간 여자에게 ‘미안해’라고 말을 하였다. 그리고 여자는 남자에게 ‘너를 진심으로 용서해’라고 말하게 되었다.

 

책은 단순히 두 사람의 사적인 이야기로만 구성되지 않았다. 남녀불평등이라는 큰 사회적 맥락 안에서 두 사람의 과거사와 강간이 어떻게 발생하였는지 대화로서 설명되어갔다. 남성 우월주의로 인해 여성은 ‘당하는’ 입장으로 전락되어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성폭력 문제를 극복하려면 공동체 전체가 같은 방향으로 잘못된 생각을 다듬어내고 노력을 합쳐야 했다.

 

이렇듯 자신들만의 의구심을 정의해나가며 둘의 과거 일은 더 이상 고통스러운 기억이 아니게 되어갔다. 여자의 경우 새로운 남자들과 육체적인 사랑을 할 때 마음이 몸에서 분리된 상태이기에 평안하지 못했었지만, 가해자 남친을 용서한 이후 제대로 된 사랑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책 『용서의 나라』는 정말 독특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앙금을 풀기위해 굳이 대면을 해야 했을까 궁금하게끔 구성이 되어있었다. 생각해보면 이유가 있었다. 연인과 헤어지고서 미련이 남아있던 자가 우연한 만남이나 전화 한 통으로 연인에 대한 미련이 깨끗이 사라진 것. 이와 마찬가지로 두 작가도 만남이 끝나고 오히려 친밀한 감정을 느끼게 된 것이리라.

 

비로소 여자는 10대 때 멈춰버린 자신을 찾았고, 남자도 홀가분하게 자신의 잘못을 주위 사람들에게 말하며 용서를 빌었다. 특히 여자의 약혼남이 “이제야 정말로 당신이 돌아온 것 같아.”라는 말을 한 부분은 가해자와 만나고 온 여자의 상태가 꽤나 평온해 보임을 잘 표현하고 있었다. 순간의 판단과 잘못이 얼마나 오랜 시간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의 삶을 괴롭게 하는지 깊게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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