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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와 함께 읽는 문학 속의 철학
이현우 지음 / 책세상 / 2017년 12월
평점 :
도스토옙스키의 인간론 … 자기 이익에 反하다
[리뷰] 『로쟈와 함께 읽는 문학 속의 철학』(이현우, 책세상, 2017.)
사람들은 고전 작품을 읽을 때 줄거리만 염두에 두고 읽는 경우가 많다. 줄거리를 읽는다는 건 간접 경험을 하며 작품 속 시대를 살고 인물이 되어 보는 것과 같다. 그러나 단지 읽기만 해서는 작품에 대해 두루뭉술한 감정만 남게 마련이다. 누군가와 함께 읽으며 작품에 대한 해석을 듣는다면 모호한 느낌은 다수 사라질 것이다. 이러한 고민을 해결해줄 책이 새로 나왔다. 인터넷 상에서 ‘로쟈’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이현우 씨가 낸 책이다. 『로쟈와 함께 읽는 문학 속의 철학』(이현우, 책세상, 2017.)을 통해 독자는 작가와 함께 철학을 하듯 작품 세계를 접할 수 있다.
책은 마치 대학교 강의 계획서와 같았다. 작가에 대한 다짐과 앞으로 배울 것 그리고 각 강의 주제가 제시되어 있다. 대학시절 문학 수업을 듣던 때와 기분이 비슷해 책을 펼치기 전부터 설레기까지 했다. 책은 총 8강으로 이루어졌으며 소포클레스, 볼테르,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제임스 조이스, 헤르만 헤세,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가 인물로 나온다. 각각의 작가가 쓴 책의 주제들인 윤리와 악, 인간의 본질, 인생의 의미, 예술, 깨달음, 성이 강의로서 진행되었다. 철학에 대한 사유를 일상이 아닌 문학 작품 속에서 끌어 낸 셈이다.

도스토옙스키가 말하는 예측 불가능한 인간
『로쟈와 함께 읽는 문학 속의 철학』은 단순히 책 분석에만 그치지 않았다. 작가들의 작품과 관련하여서도 분석이 이루어졌는데, 도스토옙스키와 관련된 부분의 경우 사회주의 운동까지도 책이 미친 영향이 소개되었다. 도스토옙스키는 인간의 본질에 대해 ‘과학적 법칙이나 논리로는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비합리적인 면, 부조리한 면을 지닌 존재’라고 하였다. 인간이란 자기 이익에 반하여 행동할 수도 있는 존재라는 의미이다. 만약 정해진 루트대로만 산다면 그건 삶이 아닌 죽음의 시작일 뿐이다. 때문에 도스토옙스키는 합리적 에고이즘(이기주의)을 불편해하며 이를 반박하기 위해 『지하로부터의 수기』를 쓰게 되었다.
『지하로부터의 수기』는 쉬운 책이 아니다. 작품은 주인공 화자가 끊임없이 어떤 타자의 말에 응답하고 가상으로 대화하는 형식이다. 책의 내용에 대해 쉬운 예를 들자면 이렇다. 가령 물건은 사는데 이쪽에서는 똑같은 물건을 500원하고 저쪽에서는 1,000원 한다 치면, 누구나 당연히 500원 짜리를 구입할 거라고 기대를 한다. 이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경우지만 책에 나온 도스토옙스키적 여성은 이런 선택지 자체를 모욕으로 받아들인다. 특히 도스토옙스키는 체르니솁스키의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소설에 반박을 하곤 했는데 이 소설에서 말하는 낙관적인 결말이 인간 생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유였다.
인간은 자유를 확인할 필요가 있고, 누구나 그렇게 할 것 같은 예측 가능한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 그럼으로써 고통을 받는다. 그런데 이 고통 속에서 인간은 또 쾌감을 얻는다. 합법칙적인 세계를 무력화하는 세계 속에서 쾌감을 느끼는 것이 인간이라고 도스토옙스키는 보았다. 때문에 소비에트 사회주의 체제는 도스토옙스키를 매우 불편해했다. 도스토옙스키가 제시한 인간들은 사회주의가 이해할 수 없는 인간이며 그들의 사상에서 양립할 수 없는 인간이기도 했다. 오늘날 복잡화된 인간을 모델로 한 어떠한 자유주의 역시 어쩌면 여러 사회주의 인간들이 모인 집합체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론에 대한 시각 차이
톨스토이가 신앙인이 되고 싶어 했었다는 사실은 책을 읽으면 새로이 알게 되었다. 그만큼 톨스토이로서는 소설 창작에 관심과 열의가 줄어든 때였기에 책 『이반 일리치의 죽음』을 『안나 카레니나』를 발표한 뒤 8년 만에 냈다고 한다. 그런데 톨스토이 신앙심은 기독교 교리에 어긋나곤 했다. 신은 우리 마음 안에 있으며 우리 각자가 신이라고 그는 여겼다. 이러한 사상이 작품 속에 심어진 때문인지 『이반 일리치의 죽음』에서 주인공은 자기 삶을 철저히 부정하고 죽음을 맞이하는 것으로 끝이 난다. 이러한 이반 일리치가 죽음에 이르는 과정 자체는 너무도 자세하고 충실하게 묘사된 통에 교재로 사용되곤 한다.
톨스토이 작품에서 눈여겨 볼 점은 그의 예술론이다. 그는 예술감염론을 주장하곤 했는데, 작가나 예술가가 가진 감정이나 사상이 작품이란 매체를 통해서 독자나 관객 같은 수용자에게 전달된다는 것이 주요 핵심이었다. 예술과 관련해서는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서도 새겨들을 만한 말들이 나온다. 조이스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을 완결적인 예술 작품이 아닌 보고서 내지는 출사표 정도로 썼었다. 조이스 역시 거창하게 예술을 시작한 것이 아닌 셈이었다. 조이스는 예술론에서, 예술가가 광채를 예술 작품을 통해서 보여주어야 예술이 인식에 도달할 수 있다, 는 점을 주요 내용으로 두었다.
사랑과 성적 경험에서 작품을 쓴 로렌스
로쟈는 성(性)에 대한 부분을 책에 두 강으로 크게 할애하였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데이비드 허버트 로렌스의 『사랑에 빠진 여인들』이란 작품을 내세웠다. 로쟈는 ‘성이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제시하며 강의를 시작했다. 이 작품에 대해서는 숨은 비화가 많아 다른 강의 작품들보다 특히 어렵지 않게 읽혔다. 한편으로 로쟈는 성에 대한 부분을 다룰 경우 항상 가장 마지막에 다뤄질 만하다고 했다. 이성적으로 해명하거나 극복해야 하는 철학적 문제들과 달리 감정이 차지하는 부분이 많은 것이 성이기 때문이다.
성에 대한 본격적인 강의에 앞서 로쟈는 성적 욕구가 왜 발달하게 되었는가를 설명했다. 인간은 양육 기간이 20년으로 길다. 그러다보니 오랜 시간 부부 사이를 올바로 묶어줄 매개가 필요한데 이것이 바로 성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다른 동물과 달리 번식기가 제한되어 있지 않으며 번식 목적 이외로도 성관계를 하곤 한다. 이에 대해서는 인간의 성 본능이 망가져 과도한 성욕을 초래했다는 설도 추가되어 있었다. 성은 워낙 민감한 문제라 작가들마다 신념이 모두 다르다. 톨스토이는 “도덕적으로 정당한 성이란 출산을 목적으로 한 성뿐이다”고 여겼다. 톨스토이의 생각은 작품 『크로이체르 소나타』로도 나타났는데, 주인공의 아내는 아이 다섯을 낳은 뒤 의사들의 권고에 따라 불임 수술을 받게 된다.
로렌스의 경우 인간이 성을 통해 어떤 궁극적인 존재를 인식할 수 있다고 보았다. 로렌스는 『사랑에 빠진 여인들』을 집필할 당시 아내 프리다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프리다와 로렌스는 1912년 처음 만났는데 이때 프리다는 이미 결혼한 세 아이의 엄마였다. 그녀는 로렌스보다 여섯 살 연상이기도 했다. 로렌스가 그의 스승을 만나러 왔을 때, 우연히 만난 스승의 아내였다. 프리다는 삶에 대한 열정이 강했고, 그만큼 성욕도 강한 여성이었다. 처음에는 학식이 풍부해 보였던 남편을 따라 결혼했지만, 책에만 파묻히고 포부나 야심 같은 것이 보이지 않아 질리던 때에 우연히 로렌스를 만나게 된 것이었다. 프리다는 세 아이마저 포기한 채로 로렌스를 따라 도주를 했다.
프리다는 이후 로렌스가 쇠약해지자 다른 남자를 만나 넘치는 성욕을 풀기도 했는데, 로렌스는 이를 수용해주었다고 한다. 대신 이러한 자신의 경험을 소설 속에 집어넣었다. 『사랑에 빠진 여인들』 속 커플의 모델이 프리다와 로렌스라는 이야기가 그래서 오늘날까지 떠돌게 되었다.
『로쟈와 함께 읽는 문학 속의 철학』은 이외에도 작품과 작가에 얽힌 흥미로운 역사이야기가 여럿 실려 있다. 그 시대의 상황, 작가, 작품을 한 번에 돌아볼 수 있어 작품에 대한 이해도를 높일 수 있는 책이다. 또한 한 작품에만 그치지 않고 여러 작품을 한 주제와 연관해 분석한 점도 매우 좋았다. 다만 너무 강의 형식이고 논리적이다 보니 지루한 감이 있었다. 고전 뿐 아니라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신간을 대상으로 이러한 책을 구상해 봐도 좋을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