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걷기, 철학자의 생각법 - 사유의 풍경으로 걸어 들어가다
로제 폴 드루아 지음, 백선희 옮김 / 책세상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우리는 나아간다는 생각 없이 나아간다.”
[리뷰]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로제 폴 드루아 저, 백선희 역, 책세상, 2017.11.15.)
걷기와 사유하기는 과연 어떤 관계가 있을까?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 이 책의 부제는 ‘사유의 풍경으로 걸어 들어가다’이다. 책의 제일 첫 장에 보면, 니체의 말이 나온다. “누구든 걸음걸이를 보면 그가 자기 길을 찾았는지 알 수 있다. 목표에 가까이 다다른 사람은 더 이상 걷는 게 아니라 춤을 춘다.” 나의 걸음은 어떠한지 되돌아본다.
저자인 로제 폴 드루아는 철학에 대한 메타적 사고, 걷기와 철학하기에 대한 철학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걷기와 철학하기는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일까? 한 마디로 쉽게 설명하자면, 걸음 때기-쓰러지고-일어나고-다시 걸어보기로 집약된다. 우리는 모르는 와중에 걷고 사유한다. 걸으면서 사유하고, 사유하기 위해 걷는다. 우리 모두는 ‘걷는 존재들’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우리는 잘 걷고, 사유한다. 책의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는 나아간다는 생각 없이 나아간다.”고 말할 수 있다.
인간은 걷는 존재이자, 사유하는 존재이다. 오직 인간만이 그렇다. 새로운 성찰을 위해서라면 걷기와 사유가 연결돼 있다는 것을 명확히 해야 한다. 쓰러졌다고 다시 일어나고, 추락하다가 만회되고 다시 이어지면서 나아가는 게 사람이다. 그러면 제대로 정말 잘 쓰러지는 게 중요하다. 스스로 파기할 위험을 무릅써야 할지도 모른다. 로제 폴 드루아는 “우리 사유들에 대한 비판과 합리적인 검토는 그것들을 비틀거리게 만드는 방식일지 모른다.”면서 “반박과 비판적 분석은 우리가 명백하고 확실하다고 믿었던 것을 필연적으로 불안정하게 흔들고 휘청거리게 만든다.”고 적었다.
추락하고 다시 일어서는 걷기, 그리고 인간
모든 학문은 ‘비판’을 지향한다. 기존의 사고를 뛰어넘어 그 너머의 지평을 갈구한다.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고, 불안정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내가 잘 사고하고 있는지, 잘 걷고 있는지 살피는 일은 기존에 갖고 있던 사유의 토대를 무너뜨리는 일이다. 책에선 이를 확실성을 잃게 만드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저항이 만만치 않다. 기존의 보수적인 사고와 행동들은 어떻게든지 안정을 되찾고, 안주하려고 한다. 탈주가 아니다. 안주이다. 여기서 새로운 반박이 생겨나고, 비판의 날개는 다시 등장한다.
스스로 붕괴될 위험을 촉발하고, 새롭게 태어나기 위해 노력하는 자. 앉아있음을 경계하고, 걸어 나가 세계와 마주하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저자는 말과 생각이 인간의 걸음 속에 뿌리 깊이 똬리를 트고 있다고 강조한다. 어떤 철학자는 “네가 어떻게 걷는지 보여주면 네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말해주겠다.”고 했다. 걸음걸이 속에 그 사람의 인생이 녹아들어 있다.
『걷기, 철학자의 생각법』에는 여러 철학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우선 고대철학자 중 눈여볼 이는 엠페도클레스이다. 그는 엠페도클레스가 화산 분화구에 빠져, 청동샌들을 화산이 뱉어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세상의 모든 요소들은 계속해서 이어지고 끊어지며 맴돈다. 엠페도클레스에 따르면 우주는 결집과 분산 사이를 걷는다. 우리가 추락과 만회 사이를 걷듯이. 엠페도클레스의 설명 중 인상적인 것은, 우리가 한 때는 물고기였고, 포유류였고, 지금은 사람이라는 부분이다. 나중에 신이 될 거라고 예견했던 엠페도클레스이다.
책을 통해 알게 된 건 플라톤이 사람 이름이 아니라 “넓은 사람”이라는 별명이라는 사실이다. 그의 본명은 아리스토클레스이다. 플라톤은 동굴의 무지에서 벗어나려면, 즉 포로 상태에서 벗어나려면 걸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플라톤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새와 인간이 두 발로 걷는 방식을 비교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걷는지 자문하면서 걸었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자문하면서 생각했다. ‘균형의 교란’과 ‘불균형의 보완’으로 앞으로 나아간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이 인상적이다.
책에서는 의문과 불안정의 관계성이 설명된다. 인간은 의문이 있기 때문에 불안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철학은 단단한 것, 썩지 않는 것을 찾으려고 여행하고 걷는다. 그 예들은 궁극적인 요소, 즉 ▲ 플라톤의 선 ▲ 아리스토텔레스의 제1원리 ▲ 플로티누스의 일자 ▲ 데카르트의 코기토 ▲ 스피노자의 무한히 무한한 존재 등으로 나타난다. 유한한 인간의 토대 찾기이다. 인간만이 갖고 있는 든든한 무기이자 조력자로서의 철학이다.
니체는 걷기와 활동을 적극 강조했다. 그는 『이 사람을 보라』에서 “야외에서 몸이 자유롭게 움직이는 가운데 구상되지 않은 어떤 생각도 믿지 마라. 또한 근육이 춤추는 가운데 구상되지 않은 어떤 생각도 믿지 마라.”고 적었다. 니체의 명문은 다음에서도 확인된다. “움직이지 않는 내장에서 분비되는 생각들을 경계하고, 움직이는 근육에서 분출되는 생각들을 선호해야 한다.” 움직임이 없는 곳에서 쓰인 모든 글들은 허약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