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의 식탁 - 인물과 음식으로 읽는 식탁 위의 세계사 이야기
차이쯔 창 지음, 이화진 옮김 / 애플북스 / 2017년 11월
평점 :
절판


채식주의자인 간디와 히틀러, 공통점과 차이점은?

[리뷰] <정치인의 식탁>(차이쯔창 저, 이화진 역, 애플북스, 2017.11.10.)


간디와 히틀러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극명하다. 둘 다 채식주의자라는 점과 그 이유가 다르다는 점이다. 비폭력주의자 간디는 억압과 폭재에 저항하기 위해 채식을 선택했다. 한 나라의 성숙도를 판가름 하는 일은 동물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간디는 강조했다. 그는 ‘체력(육식)’을 내세운 폭력이 아닌, ‘정신(채식)’을 내세운 비폭력의 방식으로 항쟁하기 시작했다. 간디가 진리를 찾으려고 했던 노력은 ‘사티아그라하’라고 불린다.


반면, 히틀러는 다 알다시피 냉혈한 폭군인데 이상하게도 채식주의자였다. 그 이유는 종교와 인종사관 때문이었다. 특히 히틀러가 좋아했던 음악가 바그너 때문에 채식주의자가 되었다. 바그너는 <영웅주의와 기독교>라는 책에서 이상한 종교 사관을 서술했다. 인류가 타락한 이유는 동물을 죽여서 먹기 시작하면서 동물의 피로 오염되고 부패하면서부터란다. 특히 바그너는 독일 아리아 민족이 쇠락한 이유가 열등한 유대인과 피를 섞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히틀러는 암살에 대한 위험 때문에 시식 시종을 15명이나 두고, 음식을 먼저 먹게 했다고 한다. 업보다.


정치학과 교수가 쓴 <정치인의 식탁>은 단지 정치인들이 어떤 음식을 먹었는지 뿐만 아니라 세계사를 함께 다루고 있다. 국제외교와 정치가 어떻게 흘러왔는지를 알려준다. 예를 들어, 체코슬로바키아의 ‘벨벳 혁명’의 기폭제가 된 작가이자 사상가 하벨은 <옥중편지>라는 책을 쓴다. 공산정권에 저항한 하벨은 옥중에서 얼 그레이 차의 맛과 사색을 즐겼다.


아파르트헤이트(인종분리정책)에 저항하다가 27년간이나 투옥한 만델라. 그는 나중에 노벨평화상을 수상하고, 흑인 인권운동의 상징이 된다. 1962년부터 만델라는 로벤섬 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는데, 채소밭을 달라고 끈질기게 요구했다. 그에게 채소밭은 정신을 집중하고 딴 생각을 안 하도록 해주는 유일한 낙이었다. 교도소의 식사는 형편없었다. 흑인들에겐 F식단이 주어졌는데, 아침은 죽, 설탕 한 숟가락, 우유도 넣지 않은 커피, 저녁은 희멀건 죽이 대부분이었다. 일주일에 네 번 지급되는 F식단의 육류는 총 60그램에 불과했다. 교도소에서마저 인종차별이 난무했다. 책에 따르면, “박애정신으로 똘똘 뭉친 넬슨 만델라는 대통령이 된 후에도 ‘움포코코’라는 소박한 잡곡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채식주의를 하는 이유도 제각각


중국의 노자는 큰 나라를 다스리는 게 작은 생선을 요리하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정치는 곧 요리라고 좀 오버해서 말해볼 수도 있겠다. 책에는 여러 정치인과 영부인, 대통령의 딸, 왕자와 왕비의 이야기가 나온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폭압의 정치를 펼치던 독재자들이 식탁 외교와 국민들을 현혹하기 위해 음식을 이용했다는 점이다.


스탈린의 시대, 생필품마저 텅 빈 상황에서 샴페인과 캐비아(철갑상어의 알로 만든 음식)는 소련 국민들을 행복하게 했다. 스탈린은 국민들을 환상 속에 살게 해 마치 행복한 사회주의에 살고 있는 것처럼 현혹되도록 했다. 특히 스탈린은 이 샴페인과 캐비아를 통해 영국과 미국의 외교전략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이탈리라의 무소불위 정치인 무솔리니는 위장이 좋지 않음에도 면요리를 자주 먹었다고 한다. 이를 통해 이탈리아의 국내 밀 생산량이 3분의 1이나 늘었다고 한다. 실제로 무솔리니는 면보다 빵을 좋아했다. 빵이 ‘무산계급’의 성향을 띤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은 군인으로서 지극히 단순한 입맛을 가졌다. 전쟁과 정치에만 관심을 기울였던 나폴레옹이었다. 드골은 프랑스를 위험에서 매번 구했던 결단력과 용기를 보여주었다. 드골은 양의 넓적다리 고기를 선호했는데, 그의 부인 이본느는 드골의 건강을 위해 매번 고기를 푹 삶게 지시했다고 한다.


반면, 처칠의 경우 ‘식탁 외교’를 통해 국제 정세를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고 한다. 신사도와 유머, 화술 그리고 연회로 연맹과 동맹을 도모한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열강의 이익구도가 뒤집어지는 건 쉽지 않았다고 한다.


저항의 정치와 정치인, 음식과 외교


<정치인의 식탁>에서 가장 눈에 띄었던 건 소탈한 음식문화다. 대통령들이 핫도그와 햄버거를 먹으며 담소를 나눴다는 이야기는 신기했다. 1939년 6월, 미국을 국빈으로 방문한 영국의 조지 6세 국왕은 핫도그를 먹어야 했다. 루스벨트 대통령은 왕실국가에서 온 국왕에게 핫도그를 대접했던 것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이 핫도그가 영국 왕실의 수수함과 친근함을 불러왔다고 전해진다.


또한 오바마 대통령은 햄버거를 즐기기로 유명하다. 실제로 참모들을 데리고 백악관 근처의 햄버거 가게에 들러 직접 돈을 내고 햄버거를 사 먹을 정도다. 오바마 대통령은 의료개혁 관련 논문을 직접 집필할 정도로 언제나 적극적이고 소탈했다.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은 러시아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친 후에 작은 햄버거 가게를 찾았다. 책에선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이 일 이후에 푸틴에게 밀렸다고 나오는데,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대통령의 발걸음은 다르게 보이는 모양이다.


한편, 민주당 후보로서 연임에 성공한 클린턴 얘기가 재밌다. 클린턴은 단 음식들, 예를 들어 초콜릿, 크림 크래커, 땅콩 잼을 바른 바나나 샌드위치 등을 좋아했다고 한다. 하지만 클린턴 부인 힐러리의 지시로 기름기 많은 프랑스 요리가 주였던 백악관의 메뉴가 저열량의 채소 위주로 바뀌었다고 한다.


클린턴 내외가 이러한 진보적 성향의 입맛을 띠었는데, 아들 부시 내외의 입맛은 전통적 혹은 보수적이라고 표현되는, 미국 가정식 음식을 즐겼다고 한다. 전자가 최신 트렌드를 즐겼다면, 후자는 심플한 요리를 선호한 것이다.


정치인과 식탁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어떤 음식을 먹는지가 그 사람을 결정한다. 그 사람은 정치를 하고 정책을 만든다. 따라서 좋은 음식이 좋은 정책을 불러온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