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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적 깨달음 - 딴뜨릭 불교의 여성들
미란다 쇼 지음, 조승미 옮김 / CIR(씨아이알)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불교와 페미니즘이 만나면 … 딴뜨릭 불교의 여성들
[리뷰] 『열정적 깨달음』(미란다 쇼 지음, 조승미 역, 씨·아이·알, 2017. 9. 28)
최근 잇따라 발생하는 데이트 폭력은 왜곡된 성적 우위에서 비롯한다. 만약 가해자들이 여성에 대한 시선을 조금이라도 달리한다면 문제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이 같은 맥락에서 학술적 성취를 보여준 『열정적 깨달음』(씨·아이·알, 2017. 9)은 불교의 관점에서 여성에 대한 존경과 종교적 승화를 강조한다. 여성은 단지 남성의 성적 도구가 아닌 파트너이지 신성이다.
붓다는 “이 길에서, 여성이 버려져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책에 따르면, 붓다는 깨달음의 성취를 위해 성적인 결합의 기쁨을 강조한다. 이러한 설명은 전후 맥락을 충분히 살핀 후에야 이해 가능하다. 어떤 철학자는 자기 부정이야말로 궁극의 쾌락을 제공한다고 했는데, 붓다는 그 반대를 언급한다. 자기 자신을 자기부정으로 고문하면 성불할 수 없다. 자기에 대한 최고의 승리를 이끌지 못할 것이다. 한편, 붓다가 금욕주의를 설파한 것은 붓다의 가르침이 딴뜨릭 결합에 관한 가르침으로 이익을 볼 수 없는 혹은 심지어 그것으로 해를 입을 수 있는 사람을 위해서 창안된 것이라고 한다.
『열정적 깨달음』은 딴뜨릭 불교의 여성들을 다룬다. 그것도 페미니즘의 시각에서 말이다. 따라서 딴뜨릭 불교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딴뜨릭에서, ‘딴’은 “짜다, 엮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세상의 만물이 남성과 여성의 인생을 포함해서 딴뜨라의 도상에서 서로 엮이고 짜이는 것이다.
또한 책에는 ‘요기니’라는 용어가 자주 등장한다. 이 말은 “요가나 의식 예술을 행하는 여성으로 신비한 힘을 가진 여성이나 여성 신격의 일종에 해당한다.”고 설명된다. 여성수호신인 ‘다끼니’는 공중을 걷는 자, 날아다니는 여인, 하늘에서 춤추는 여인 등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 지향하는 바는 ‘만다라’로 집약된다. 만다라는 심미적 청사진 혹은 본보기로서 지상에서 궁극적 단계에 도달하려는 진리의 신격화이다.

학술적 성취 보여준 저자의 페미니즘
그동안 인도 불교에서 딴뜨릭 불교의 여성들은 남성과의 성적 결합을 위한 도구로만 인식되어 왔다. 저자인 미란다 쇼 교수(미국 리치몬드 대학 종교학과 교수)는 인도와 티벳 불교 등에 나타난 문학, 관련 인터뷰, 서구의 시각 비판 등을 종합해 이 책을 썼다. 그렇다면 딴뜨릭 불교에 대해 좀더 알아볼 필요가 있다.
딴뜨릭 불교는 대승불교의 지류이다. 이타적 동기, 연민 행동, 지혜, 인내를 우리의 생에서 달성 가능하다고 믿는다. 딴뜨릭 불교는 대승불교와 철학적 교리를 공유하지만, 친밀감과 성, 젠더와 체현을 해탈에 이르는 길이라고 조명한다. 지식과 힘의 원천으로 감각과 쾌락을 수용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에서 서구의 에피쿠로스 학파와 닮았다. 우리의 몸은 ‘환희의 집’이다. 욕망과 감각은 원래 생래적인 것으로서, 욕망을 가진 자가 욕망을 억제하려고만 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딴뜨릭 불교는 비판적 사고를 담지하며 불교 안의 움직임이라기 보단 하층민들의 저항운동으로 발생했다.
대승불교는 모든 사람이 성불할 수 있다고 간주한다. 마찬가지로 딴뜨릭 불교는 버려진 사람들, 거리의 청소부, 심지어 도둑과 도박꾼, 창녀와 광대 등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을 모두 포용하였다. 후자가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딴뜨리즘은 모든 활동에서 깨달음을 발견할 수 있다고 본다. 심지어 성적 친밀성을 통해서도 말이다.
『열정적 깨달음』의 가장 의미 있는 부분은 딴뜨릭 불교 내재적 관점에서 여성의 상을 복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성 젠더는 신성함을 회복한다. 책에선 다음과 같이 표현된다. “힌두교와 마찬가지로 딴뜨릭 불교에서도 우주의 모든 힘이 여성을 통해 여성으로부터 흘러나온다는 믿음을 보여주고 있다.” 여성들은 자유롭고 진지하게 종교적 수행을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 연구자들은 그렇지 않게 보았다.
특히 서구의 학자들은 딴뜨릭 불교에서 여성은 남성 수행자의 성적 도구로 인식하는 차원에 그치고 있다고 미란다 쇼는 비판한다. 인도의 세계관을 이해하기 위해선 그 안으로 충분히 들어가야 한다. 인도에서 여성은 주술적 잠재력과 신성한 힘을 내재하고 있고 존중과 경외의 대상이다. 서구의 차원에서 강요되는 자연과 문화, 물질과 정신, 인간성과 신성이라는 이원성은 인도에 적합하진 않다. 젠더에 대한 이해는 각 나라별로 다르다.
젠더에 대한 이해, 내재적으로 접근
미란다 쇼는 분명하게 말한다. “나는 딴뜨릭 불교가 착취의 모델이 아니라 상보성과 상호성의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바이다.” 남성 대 여성이라는 이분법이 아니라, 여성은 남성의 신성을 존경하고 사랑했다. 여성은 영적인 동맹자이자, 존경 받는 스승이고, 신비한 동반자이면서 마술적 힘과 깨달음을 주는 존재였다.
만약 왕자나 왕족들이 천민 여성을 통해 계급의식을 내려놓으려고 했다고 주장할지 모른다. 하지만 책에 따르면, 딴뜨릭 불교의 여성들은 자신만의 기술과 문화적 지식을 보유하고 있었다. 무용수들은 엄격한 신체 훈련을 거쳐 신성한 동작과 그에 대한 지식을 지녔다. 창녀는 관능적 기술과 섬세함을 지니며 신성을 보여주고자 했다.
『열정적 깨달음』에서 전복하려는 여성의 상은 사실 현대사회에서도 그대로 적용해볼 수 있다. 여성을 학대하고, 폄하하면서 절대로 합일의 경지에 이를 수 없다. 남성의 입장에서 말이다. 파트너와 신성을 경험하기 위해선 상대를 인간적으로 대우해야 하며, 그때야 비로소 딴뜨릭 불교에서 강조하는 종교적 환영, 즉 본존인 자아가 하나가 되는 것이다. 여성성의 회복이야말로 만다라의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