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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기원 - 예일대 최고의 과학 강의
데이비드 버코비치 지음, 박병철 옮김 / 책세상 / 201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미생물만큼 작아진다면 중력 대신 전자기력만 남아
[리뷰] 알수록 더욱 모르게 되는 ‘과학’ …… 예일대 최고 과학강의 『모든 것의 기원』
데이비스 버코비치 박사는 2008년, 한 무리 예일대학교 학생들로부터 ‘모든 것’에 관한 강좌를 개설을 부탁받았다. 다른 강좌를 생각하고 있었지만 학생들이 하도 우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부탁을 들어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탄생한 책이 『모든 것의 기원』(데이비드 버코비치 저, 박병철 역, 책세상, 2017.10.25.)이다.
버코비치 박사는 책을 쓰는 틈틈이 과학자인 두 딸에게 전문적인 조언을 구했다. 책은 여타 과학책처럼 우주의 시작부터해서 현재 인간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담겨 있다. 여기에 최신 연구 내용이 추가로 첨가되면서 독특한 작가만의 시각이 곳곳에 담기게 되었다.
책의 내용 중 “빛도 소리처럼 파동이며……, 관찰자로부터 광원이 멀어질 때는 빛의 진동수가 작아지고, 파장이 길어진다.”는 부분이 있다. 수없이 보았던 내용이고 읽은 족족 그저 고개를 끄덕이며 지나쳐왔던 내용이었는데, 웬일인지 이번 책을 읽고는 빛과 색이 본질이 실제로는 차이가 없지 않나 궁금증이 들었다. 답은 따로 나오지 않았지만 새로운 궁금증이 생긴 것만으로도 책을 읽었음에 충분히 의미가 있었다.

기존 과학을 다르게 보다
버코비치 박사는 ‘대폭발’이라는 단어를 적절한 표현이 아니라고 보았다. 왜냐하면 태초의 우주는 질량과 에너지뿐만 아니라 시간과 공간까지 작은 영역에 똘똘 뭉쳐 있었기 때문에 ‘내부와 외부의 기압차’라는 것이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그냥 우주가 팽창하기 시작하여 경계선이 점차 확장된 것뿐 폭발은 아니라는 것이다.
책은 그렇게 우주의 팽창에서부터 점차 지구까지 나아갔다. 물질과 에너지가 만들어지는 설명 속에는 최신 연구인 암흑 에너지, 암흑 물질, 힉스 입자 등이 엮여서 설명되었다. 5년 전 물리를 배우던 학생들이라면 생소한 개념들일 것이다. 그만큼 과학의 발전은 매년 달라지기에 ‘기원’에 대한 책이 비슷한 내용이지만서도 매년 엮어 나오는 것은 좋은 것 같다.
우주의 힘이 넷으로 분리된 지금 우리는 중력을 제외한 나머지들을 하나로 통일하는 데 성공했다. 힘의 분리와 통일에 따라 우주의 상황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마치 우리가 액체, 고체, 기체 상태를 다르게 보듯이, 힘들에 따른 우주의 모습은 지금으로서는 그 상태들을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아마도 네 힘이 통합되는 순간 우리는 진정 빅뱅 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통합 상태가 바로 빅뱅 전과 같은 의미이기에 그렇다. 그런데 빅뱅 전을 겨우 알았는데, 그 빅뱅이 결국 또 다른 공간 속의 작은 폭발 중 하나임이라 하면 얼마나 허탈할까. 과학은 알아갈수록 더욱 모르는 것 같다.
크기와 질량에 대한 독특한 예시가 있었다. 우리가 벌레나 미생물만큼 작다면 중력보다는 전자기력을 강하게 느낀다는 주장이다. 실제로 천장에 붙은 개미에게 중력은 있으나마나 한 힘이다. 이는 우리가 세상을 인간 기준으로 보아왔음을 주장하는 역설적 내용이었다. 우리가 아주 큰 거인이거나 아주 작은 난쟁이가 된다면 우리 주변의 물리 현상은 다르게 교과서로 실렸을 것이다.
여하튼 그렇게 지구는 탄생했다. 저자는 쉬운 묘사를 통해 계속해서 이야기를 펼쳐나갔고 소행성 출동 부분에서 또 다시 인간 탈피적인 주장을 한다. 소행성 충돌이란 지구에 대한 어떤 것의 적대적 행위가 아니라, 태양계 형성 초기에 미처 사용되지 않은 재료들이 뒤늦게 지구로 유입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점이다. 분명 인간에게는 위험한 사건이지만 말이다.
인간 중심적이지 않고 지구 중심적인 주장
우주의 네 가지 힘이 지구 그리고 인간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주장 역시 독특했다. 외핵의 유체운동이 대류와 지구의 자전에 의해 발생하고 이로써 전류가 발생한다는 주장, 그리고 지구 전체가 하나의 자석처럼 거동하면서 동시에 자기장이 지구 생물의 이동(철새의 이동)이나 신경, 뇌, 심박과 관련 있다는 내용들이 있다. 자칫 어려울 뻔했던 내용들이지만 간단한 모형으로 상정되어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
놀라운 점은 강한 자기장을 가진 행성이 지구뿐이라는 점이다. 지구의 쌍둥이라 불리는 화성조차 자기장은 없다. 생명의 유무를 물이나 대기, 태양과의 거리뿐 아니라 자기장과 같은 세밀한 요소까지 통틀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라는 점이다. 지구처럼 자기장이 강한 행성으로는 목성이 있는데 그래서인지 목성의 위성 ‘유로파’가 생명 존재의 지역으로 자주 언급되나 싶다.
‘지구의 기후’ 관련 부분에서 저자는 우주뿐 아니라 지구 내의 맨틀 대류 역시 지구 기후를 형성하는 데 함께 했다고 주장한다. 바다와 대기 그리고 지질구조 판이 수십 만 년 주기의 빙하기를 만들면서 기후는 변해간다. 이밖에도 화석연료를 사용하기 한참 전부터 기후변화는 있어왔다.
그러나 인간들은 그때마다 ‘우리 인간 때문이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 예로 농지를 확보하기 위해 숲 전체를 통째로 태우던 때나, 7,000년 전쯤 아시아의 쌀 수확량이 최고조에 달했던 때 온실가스인 메탄이 대량으로 방출되어 일시적인 온난화가 초래된 적이 있었다. 현재 진행 중인 지구온난화 역시 정말로 인간이 방출한 이산화탄소 때문이라기보다는 인간의 문명과 상관없는 자연스러운 변화일 수 있으며, 이에 대해서는 여전히 학자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작은 실험실에서는 자연규모를 완전히 파악할 수 없다. 여러 계의 복잡성과 상호교환을 모두 모형으로 만들기는 쉽지 않다. 지구는 지금껏 알맞은 기후를 유지하며 생명체를 탄생시켜왔다. 몇 차례 대량 생물 멸종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지구의 생태계는 새롭게 정비되면서 생물학적 다양성과 진화의 밑거름이 되어왔다.
인간의 싸움이나 침략 등도 어쩌면 지구적 현상일 수 있다. 기후를 좇아 아프리카를 나오고 더 나은 식량으로 아마존을 베는 등 삶을 위한 인간 종만의 생물학적 원인인 것이다. 『모든 것의 기원』은 과학적 내용을 인문학이나 사회학적인 부분과 깊게 융합하지 못했고 과학만을 따로 떼와 설명한 진부한 면이 있었다. 그럼에도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책’임은 분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