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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포그래픽, 다빈치 - 그래픽으로 읽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ㅣ 인포그래픽 시리즈
앤드류 커크 지음, 박성진 옮김 / 큐리어스(Qrious) / 2017년 10월
평점 :
절판
물결의 소용돌이 보며 카오스이론 생각한 다빈치
[리뷰] 『인포그래픽 다빈치(그래픽으로 읽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앤드류 커크 저, 박성진 역, 큐리어스, 2017.)
최근 『인포그래픽 다빈치(그래픽으로 읽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앤드류 커크 저, 박성진 역, 큐리어스, 2017.)를 읽을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이미 다큐나 여러 서적으로 숱하게 인용되었던 위인 레오나르도 다빈치에 관한 책이었다. 사진이나 글뿐 아니라 현대적 특색에 맞는 일러스트와 그래픽이 추가된 점으로 책은 독특한 느낌을 주었다. 다빈치의 여러 작품 해석과 이를 시각적으로 묘사한 부분들은 한층 뇌리에 강하게 남을 정도였다.
많은 사람들이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떠올릴 때면 ‘시대를 초월한 사람’이라 던지 ‘호모 사이피엔스를 넘어선 종’이라고 느낀다. 1452년 4월 15일 밤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빈치에서 태어난 다빈치는 자신이 훗날 이처럼 위대한 칭호를 가지게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다빈치가 태어난 때는 중세 이후 초기 근대로 넘어가는, 사회와 문화가 변화하는 시기였다. 유럽인에 의한 세계 탐험과 식민지화로 인한 세계화가 시작되기도 한 시점이었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경제발전과 IMF가 동시에 벌어지는 급변기라고 할 수 있다.
다빈치가 태어나고 1년여 정도가 지난 1453년은 오스만투르크의 침공으로 콘스탄티노플이 몰락하고 유럽 곳곳에서의 종교 개혁 움직임으로 세계는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다. 그리고 기독교에 대한 전통적인 견해가 흔들리게 되었다. 그 와중에 수많은 천재가 태어났다. 혼란 속의 천재들이었다. 이 시기 단테, 페트라르카, 보카치오 등 이탈리아의 문학가들이 그리스·로마의 고전 문화에서 휴머니즘을 발견하여, 다시 인간 본연의 개성과 자유를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문화의 절정기였던 고대로 돌아가자는 운동을 펼쳤다.

혼란 속에 태어난 천재들
이러한 사상은 이탈리아 사회의 여러 분야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탈리아는 고대 로마 시대부터 풍부한 문화가 쌓여 있었다. 지리적으로 이슬람과 동로마의 문화를 접하기 쉬운 위치였으며 그래서 문화를 서유럽과 연결시키는 통로 역할을 했다. 이탈리아에서 가장 먼저 꽃 핀 르네상스는 마사초, 보티첼리, 레오나르도 다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의 천재들을 탄생시켰고, 예술 분야의 황금시대를 만들었다.
천재들은 비로소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게 되었는데 신 중심의 세계관이 지배하던 사회에서는 표현될 수 없었던 개성과 창의성이었다. 인간의 얼굴 표정과 육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자연을 연구하여 그 모습을 정확히 묘사하려는 예술가들의 시도와 사상은 독일과 네덜란드, 영국 및 프랑스로도 전파되어 발전하였다. 그리하여 몽테스키외, 루소, 괴테, 니체, 톨스토이 등 많은 철학자와 문학가들에 까지 전수되었다.
이처럼 다빈치는 시기를 타고난 천재라고도 할 수 있는데, 모든 창의성이 매몰되는 안정화 시대가 아닌 급변기를 대표하는 인물로 남게 되었다. 다빈치의 상상력은 과히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500년이 지난 지금도 과학자들과 사상가들은 다빈치의 생각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있었다. 예를 들면 이렇다. 다빈치는 모든 자연과 인간이 상호 연관되어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는데, 같은 시대 인들이 보기에는 과히 이단적인 생각이었다. 당시로서는 인간과 동물이 동일한 근원에서 출발했다는 진화론적 관점이 없던 때였다. 이로부터 350년은 더 흘러 찰스 다윈에 의해 진화론은 비로소 정립이 된다.
게다가 다빈치는 오늘날 논란이 되는 카오스 이론에 대한 생각 역시 가지고 있었다. 물결의 소용돌이를 유심히 관찰하면서 추동력을 받는 중심 흐름이나 복귀 흐름을 생각했고, 물의 움직임을 수십 개로 나누어 분류하기도 했다. 이러한 다빈치의 작업노트는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 또한 당시로서는 꿈과 같았던 ‘하늘 날기’나 ‘잠수 원리’ 같은 기계적 상상이나 ‘인간 해부’ 같은 의학적 관찰로 오늘날 과학자들에게 영감을 주고 있다. 2003년 세계 행글라이더 챔피언이 다빈치의 설계도를 기초로 경비행기를 제작해 성공적인 비행을 해냈다는 사례를 보면 그렇다.
언제나 깔끔하게 다녔던 다빈치
책은 다빈치의 삶을 짤막하게 조명하고는 그의 작품과 그의 생애로 본격 들어갔다. 멋들어진 그림들로 인해 독자들은 많은 글을 읽을 필요 없이 뇌리에 ‘다빈치’의 존재를 새길 수 있을 정도였다. 다빈치는 늘 수염을 깔끔하게 정리했는데 튀는 옷을 즐겨 입었으며 화술은 화려했다고 한다. 그림 작업 시에 잘 차려입어야 사랑스러운 색을 칠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의 깔끔함이 어느 정도였냐면 작업노트에 “화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옷으로 꾸밀 줄 알아야 한다.”는 글을 적어놓기까지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또한 자신만의 음식 레시피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재미있었다. 집에는 예술가답게 책이 많았는데 그냥 꼽아 두기만 한 것이 아니라 분류하여 놓기까지 했다.
다빈치는 평생 홀로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당시 수려한 외모의 젊은 조수들을 거느리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다빈치를 동성애자라 여겼다. 1478년에는 동성애 혐의로 고소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다빈치는 개의치 않았다. 그저 부유한 후원자로부터 정기적으로 봉급을 받는 와중에 연구만 하길 바랐다. 와중에 <최후의 만찬>이나 <모나리자>를 의뢰받아 그렸다고 한다.
다빈치에 대해 말을 하자면 끝이 없다. 한 위인을 안다는 건 너무도 어렵다. 혹시나 알고 싶다면 『인포그래픽 다빈치(그래픽으로 읽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를 읽어보면 좋겠다. 빠르게 다빈치를 탐구할 기회가 될 것이다. 그럼으로써 우리 역시 ‘르네상스적 인간’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