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채널 - 미래를 만드는 사람들을 위한 메가트렌드
황준원 지음 / 21세기북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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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합현실의 미래 … 가상·현실의 경계가 사라져

[리뷰] 미래사회에 적극 대응하자는 『미래 채널』(황준원, 21세기북스, 2017.09.11.)

 

미래에 벌어지거나 일어날 법한 트렌드가 소개된 책이다. 인공지능과 VR, AR 그리고 자동차와 사물인터넷 등 4차 산업혁명에 종종 소개된 기술들이 나온다.

 

미래에 우리는 인공지능 비서를 두고, 각국에 맞는 인공지능을 가지게 될 것이다. 며칠 전 “미래에는 많은 직업이 사라질 것이다”는 내용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이에 반해 이 책의 저자는 미래 직업에 대해 다소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사라지는 직업을 걱정하기보다 4차 산업혁명으로 대체될 직업을 눈여겨보라는 주장이었다.

 

책의 재미있는 점은 MR(Mixed Reality)라는 혼합현실이 소개된 점이다. 나로서는 새로운 용어였다. 가상현실도 아니고 증강현실도 아닌 이것은 가상의 생명체가 현실의 의자나 침대 등에 자유로이 앉거나 눕는 것과 같은 상태다. 물론 증강현실에서도 가상의 존재들이 현실에 나타나긴 하지만, 그들은 현실의 물건을 이용하지 못한다. 그에 비해 MR에서는 진정 가상과 현실의 경계가 사라져 모든 측면이 이용되고 혼합되는 것과 같다. 행여 미래에 우리는 낯선 환영을 보며 잠결에 놀라 소리를 지르는 일도 생기지 않을까. 무섭기도 하다.



 

사라지기보단 대체될 미래의 직업들

 

로봇과 인간의 관계는 책의 중심내용이기도 했다. 한 번은 인공지능으로 소개가 되었고, 두 번째는 인간과 함께하는 로봇으로 소개가 되었다. 외로운 이들이나 소통하고 싶은 자들은 위해 로봇은 말동무가 되어준다. 로봇의 크기는 주머니에 넣고 다닐 정도로 작아졌는데 영화 「her」을 떠오르게 하였다.

 

그런데 대화를 할 때 인간은 자신의 감정을 기꺼이 내보이며 말을 할진데 그것을 맞받아치는 로봇에는 감정이 없기에, 로봇에서 우리가 공감 받을 수 있을까 생각이 들었다. 일자리에서 인간 동료가 아닌 로봇 동료를 두었을 때 우리는 어떻게 대화로 일을 공유하게 될까. 그저 일만 잘 수행하는 존재로서 필요한 걸까. 소통이 필요한 인간이기에 로봇의 사회가 인간의 감성을 바꾸지는 않을까.

 

마트 계산 아줌마들의 목소리가 사라지고 음식 서빙을 하는 종업원의 미소가 줄어든 미래. 뿐만 아니라 심지어 우리는 삶의 편리뿐 아니라 우리의 뇌와 신체까지 로봇으로 만들고 개조시키려 한다. 로봇 자체를 인간 이상의 존재로 보게 된 사람들은 그렇게라도 초인이 되려고 한다. 오히려 자신이 사라져가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우리가 먹는 음식과 입는 옷, 사는 집들이 인공지능화 되고 3D 프린터로 만들어지는 날, 우리는 환경과 소통하는 법을 잊어버릴 지도 모른다. 건강한 삶을 위한 도구들과 드론으로 신체가 보호받고 안정되는 시간 속에서 인간만의 진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신생에너지 측면에서 태양을 이용하여 인간이 지구와 친화적이 된다고 하지만, 에너지 문제의 목적 역시 결국 인간을 위한 것이었다.

 

환경과 소통하는 법을 잊지 말자

 

로봇 혁명이 성공적이더라도 인간 사회가 행복해지는 건 아닐 수도 있다. SNS를 보면 그렇다. 미래 지구인들은 SNS를 통해 서로의 나라로 가상 체험을 할 날이 올 것이다. 그런데 SNS가 마냥 좋은 도구만은 아닌 것이 자본주의 사회에 들어 우리는 부의 과시를 위해 이를 이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상대의 고통과 나의 고통을 이용해 자극적인 내용으로 ‘좋아요’를 얻으려는 마음 때문으로, 이는 수많은 좋아요와 팔로우가 곧 돈이 되기에 그렇다. 따라서 소통의 측면에 메신저들에 다소 검은 장막이 있는 것이다.

 

저자는 다음과 같은 고민을 책에 적어놓았다. 왜 편리해지는 시간 속에서 인간은 더 바빠질까. 인간 사회를 바쁘게 흐르도록 돕는 기계가 무수히 만들어진 것도 이유지만, 현재에 만족 못하고 계속 새로운 기계를 발명하려는 인간의 욕심도 한 몫 한다. 인공지능을 얻으려면 돈이 많아야하고 자본주의 사회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기에 그 속에서 자본가와 노동자의 격차는 커지며, 결국 우리 인간은 자본가의 편리함을 위한 로봇을 만들고 자본가는 잠재 고객이 될 노동자를 위해 더욱 바빠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가 절하고 기도할 신을 만드는 동안 스스로 고통을 감내하고 또다시 만든 신을 모시기 위해 우리는 일을 하지 않는 순간에도 희생을 하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미래 사회가 흥미롭고 획기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지금 삶도 충분히 불편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시대를 초월하고 싶은 인간들은 여러 이유와 조건을 대며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는 가운데 우리 역시 그저 이 혁명에 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따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저자는 미래사회를 준비하라며 다가올 미래사회를 미화하고 있었다. 그러나 책을 덮은 뒤 이상하게도 흥분이 되기보다 몸이 으슬으슬 더욱 추워졌다. 내적으로 성숙하지 못하고 정신이 외부로 팔려가는 사회 속에서 우리의 정신이 미래에 얼마나 더 빈곤해 질지 알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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