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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 - 여덟 가지 테마로 읽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앙투안 콩파뇽 외 지음, 길혜연 옮김 / 책세상 / 2017년 9월
평점 :
절판
프루스트, 고통의 실체를 밝히며 글을 쓰다
[리뷰] 『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 (여덟 가지 테마로 읽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앙투안 콩파뇽, 줄리아 크리스테바 저, 길혜연 역, 책세상, 2017.)
마르셀 프루스트(Marcel Proust, 1871년 7월 10일 - 1922년 11월 18일)는 말년의 시간을 바쳐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프랑스 작가다. 20세기 소설의 새로운 장을 연 작가이기도 하다.
고등학교 졸업 후부터 습작으로 부인들의 치장에 관한 글을 쓰며 작은 잡지들에 기고를 했고 언젠가는 자신이 문단에서 인정받겠다는 소망을 키워나가던 꿈 많은 사람이었다. 앙드레 지드와 같은 대작가는 풋내기 프루스트가 천재 작가가 될 가능성이 없어 보였는지 그의 작품을 크게 칭찬하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프루스트는 끊임없이 글을 쓰고 성찰하며 감동받았던 사연들을 수첩에 기록해나가기를 계속했다.
특히 시간과 기억에 대한 관념을 삶과 연관하여 생각하는 것을 즐겼다. 마치 철학자이기도 한 이런 그의 모습 속에서 프루스트 스스로도 소설을 써야 할지 철학 에세이를 써야 할지 고민했었다고 한다. 그 결과 그의 책은 그 어떤 장르에도 속하지 않는 독특한 문체를 가지게 되었다.
아직 난 프루스트의 책을 읽어보지 않았다. 심지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프루스트가 영화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서」 등의 모험 이야기를 쓴 작가인 줄로만 알았다. 제목이 비슷해서 그런듯하다. 그러던 중 『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 (여덟 가지 테마로 읽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앙투안 콩파뇽, 줄리아 크리스테바 저, 길혜연 역, 책세상, 2017.)을 읽게 되었다. 그 전에 왠지 프루스트의 책부터 읽어야 할 것 같았지만, 6권이나 되는 대작을 한두 달 만에 읽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할 수 없이 먼저 『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을 보게 되었다. 낯설 줄만 알았는데 생각 외로 프루스트에 대한 모든 것이 섬세하게 분석되어 있었다.

철학과 문학, 그 경계에 서다
프루스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집필을 1909년에 착수했다. 시간의 보이지 않는 본질을 글로 옮길 생각으로 그저 300페이지에서 500페이지짜리 책 한두 권을 쓰려했지만 생각지 못한 장편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집필 기간도 꽤 걸려 1912년이 되어서야 두툼한 소설 원고가 거의 완성될 정도였다. 초고를 쓰고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 내용을 줄이는 다른 소설가들과 달리 그는 초고에 살을 붙여 내용을 풍성하게 만드는 식으로 추가 집필을 해나갔다.
이러한 프루스트의 초고를 보면 노트의 뒷장은 항상 비어 있었다고 한다. 훗날 첨가할 내용을 위해 남겨둔 것으로 뒷장으로도 자리가 모자라면 노트의 가장자리에도 글을 쓰고, 별도의 종이를 풀로 붙이는 노력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 완성된 소설에는 날짜나 지표들이 거의 없었다. 다만 그의 목적대로 여러 경험과 추억, 시대들을 병치시킨 것은 변함이 없었다.
사람들은 프루스트의 책을 통해 시간의 의미를 되새기곤 한다. 워낙 강렬한 시선을 가진 작가이기에 이미지를 보지 않고도 글 속에 자신의 지각을 끼워 넣는 데 능숙해 마치 과거의 사건들이 방금 겪은 마냥 창조되어 있곤 했다. 독특한 점은 그의 소설들에 인물들의 전체적인 외양은 자세히 묘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대충 묶은 금갈색 머리, 매부리코, 큰 키에 호리호리한 실루엣과 같은 간략한 특징들만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을 읽다보면 그의 소설 속 인물들이 어찌나 본질까지 잘 파헤쳐졌는지 그 어떤 묘사보다 생생한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내가 프루스트의 책을 읽지 않았음에도 그의 소설을 생동감 있다고 느낄 수 있는 건 『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에 주석과 함께 달린 책의 인용 부분들과 여러 사진 덕분이었다.
프루스트의 업적은 그가 죽고 더욱 빛이 났다. 그는 소설을 완성하고 베르나르 그라세 출판사에서 비싼 자비를 들여 책을 찍었다고 한다. 왜냐하면 출판사들이 그의 책 출간을 거부했기 때문인데, 어떤 출판사에서는 그의 원고를 거의 열어보지도 않은 채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나 소설이 출간되고 비평은 호의적이었다. 민중들은 그의 소설에서 훌륭한 마음의 양식을 얻고 정신에 생명력을 얻었다. 프루스트가 성당을 짓듯이 전력을 다해 글을 썼기에 그의 진심이 전해진 것이리라.
프루스트의 글쓰기는 그의 삶과 때놓을 수 없었다. 그는 사물에 내재된 본질적 아름다움에 주의를 기울이며 거리를 자주 쏘다녔다. 고된 훈련으로 마침내 흘긋 지나칠만한 시선과 풍경의 아름다움을 보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 그만큼 철학자적 삶을 살아왔다. 그리고 감각과 인식 그리고 감정을 혼합해 작품으로 만들곤 했다. “단 하나의 진정한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눈을 갖는 것이리라.”는 대목처럼 그는 떠나지 않고도 한 사물에 대해 다양한 관점을 가지는 능력으로 훌륭한 작가가 되었다.
진짜 여행은 다른 눈을 갖는 것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는 어렴풋한 추억에서 오는 행복감이 묘사되기도 했고 삶, 죽음, 사랑, 시간, 나이, 기억, 정치, 험담 등에 대해서도 철학적으로 생각할 거리가 제공되어 있다. 빈말로 프루스트의 책을 읽은 독자들은 다른 사람이 되어 세상을 보게 된다고 할 정도였다. 시간이 우리의 인생을 어떻게 스치고 지나가는지부터 사랑에 대해 어떠한 관점이 더 있는지 등 누구도 생각지 못한 작가만의 생각이 글마다 세밀히 묘사되어 있었다.
하지만 다른 작가와 같이 프루스트에게도 글을 쓴다는 것은 언어를 통해 고통을 통과하는 일처럼 힘들었다. 이는 글 쓰는 작가로서 가야 할 길이었다. 오히려 프루스트는 고통의 실체를 밝혀냄으로써 고통을 무시하거나 웃음, 아이러니, 풍자로 만들었다. 추운 겨울에는 시트 일곱 장을 덮고 두 개의 탕파를 끼고 외투를 입은 채 글을 썼고, 외부와는 완전히 단절된 채 가정부의 시중을 받으며 오로지 언어만으로 고통을 무릅쓰며 하나의 대성당을 지어나갔다.
그의 생명 에너지가 그야말로 쓰는 행위에 모두 소진된 것이었다. 또한 밤에 글을 쓰고 낮에 자면서 불규칙적인 생활을 했는데 때문인지 몸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프루스트는 자주 병가 생활을 이어나가야 했다. 그럼에도 글쓰기를 계속했고 병상에서 마지막 힘을 모아 대작에 마침표를 찍은 후 “이젠 죽을 수 있겠어”라고 외쳤다고 한다. 1922년 11월 18일 그렇게 그는 쉰한 살의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프루스트와 함께하는 여름』은 해변을 느끼게 할 정도로 청량한 느낌이 있는 책이다. 그래서 가을에 출시된 책이지만 제목에 ‘여름’이 들어간 것일 수 있다. 책은 마치 프루스트의 전기를 읽는 듯했다. 글쓰기에 대한 그의 열정을 읽을 기회가 되었고, 그의 글을 맛본 순간을 얻었다. 마지막 장을 덮는 때는, 너무도 방대해 도전할 엄두가 나지 않았던 프루스트의 책들이 매우 읽고 싶어졌다. 여운을 계속 이어나가고 싶었다.
“각 개인이 그 개인의 예술가라면 무엇보다도 자기 자신을 넘어 서서 하나의 작품이 될 수 있는 기회다. 이런 방식으로 자아에 만족할 때 삶은 어떤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어둠 속에서 지냈던 인생도 명확히 밝혀질 수 있고, 끊임없이 왜곡되던 인생이 그 전의 모습에서 참된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고, 결국엔 한 권의 책 속에서 구현될 수 있다.” 예술이 있고 읽을 책이 있어 인생이 얼마나 더욱 살 만한지 느낀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