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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개 - 토종개에 대한 불편한 진실
하지홍 지음 / 글로벌콘텐츠 / 2017년 8월
평점 :
토종개로 살펴본 민족의 정체성과 수난사
[리뷰] 토종개에 대한 불편한 진실 『한국의 개』
골목 사이 마당 있는 집들에는 소위 ‘똥개’들이 묶여 있다. 그에 반해 상대적으로 덩치가 작은 애완견이나 아주 큰 사냥개들은 거의 볼 수 없다. 집을 지키는 ‘똥개’들은 무엇으로부터 주인을 지키려 저렇게 꼿꼿이 서 있는 것일까. 토종개 연구가들은 한반도로 처음 토종개가 들어왔을 때를 연구하였다. 개의 유입 경로를 통해 한국인 종의 주류를 인문학적 틀에서 연구하려는 것이었다. 토종개들은 한국인과 함께 성장하면서 소설, 시조, 민담, 노래 등으로 박제되었고 특유의 정서적 공감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이러한 토종개들이 한 때 씨가 마를 위기를 겪은 적이 있다면 믿겠는가.
일본으로부터 핍박받은 조선의 개들
경북대 유전공학과 하지홍 교수는 저서 『한국의 개(토종개에 대한 불편한 진실)』(글로벌콘텐츠, 2017.)를 통해 우리나라 개의 계보를 소개했다. ‘그저 개이기에 한 마리 키우고 있다.’는 많은 이들에게 소중한 마음을 주는 책이다. 「조선의 개와 그 모피」라는 문서가 있다. 조선총독부에서 만든 것으로 내용을 보면, 공권력으로 조선의 개를 대량 도살한 기록이 나와 있다. 실제로 일제는 1938년~1945년까지 수많은 개를 학살했고 그 중 150만 장의 모피를 군수품으로 이용했다. 그렇게 해방이 되기까지 한국인들 못지않게 수난을 겪은 중형 개들은 멸종 직전까지 가게 되었다. 해수(害獸)구제사업 못지않은 무서운 행위였던 것이다.
책은 토종개에 대한 경각심을 시작으로 본격적인 토종개 역사를 이어나갔다. 당시 일본은 고대 동물 뼈에 대한 연구를 체계적으로 수행하며 기술적으로 다양한 동물을 육종하거나 변형하는 연구를 병행하고 있었다. 이로 투견이나 소형 애완견과 같은 품종들을 육종하기에 이르렀다. 한국의 개들이 핍박받는 것과 달리 1930년대에 들어 일본의 특산종 개들은 보호받고 있었다. 그리고 세계 기준에 맞는 품종으로 키워져 세계적으로 홍보되었다. 현재 일본은 애견 문화와 산업 분야에서 세계적인 수준이다.
만약 일본의 핍박이 없었더라면 우리나라의 개 연구는 얼마나 발전할 수 있었을까. 이 역시 자국 내에서 토종개를 연구하고 지키려는 학자들과 시민들의 관심이 있어야 가능하다. 중국의 경우를 보면 딱히 지배를 받지 않았던 공산주의 시절이지만 많은 특이한 토종개들이 다양성을 잃었음을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역시 지배에서 벗어나고서도 한동안 토종개 연구는 그다지 활발하게 진행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자료가 많이 없어 현재 연구를 수행하는 기관들은 주로 일본 고고학계의 연구를 바탕으로 분석하고 있다. 저자 역시 책에서 이를 언급하며 자신의 연구 방향을 서술했다. 연구를 위해서는 개의 외적 형태나 혀의 검은 반점, 혈액 속 단백질들, DNA 특성들을 두루 살펴야 한다. 유전학이 발달하는 요즘, 일본 연구물 없이도 풀리지 않았던 많은 질문들에 대해 해답을 얻을 수 있게 되어 앞으로 주목해볼 일이다.
한반도로 들어와 토종개가 된 개들
우리나라 토종개의 기원은 과연 어디서부터일까. 이러한 질문에 답을 찾는 일은 뜻 깊다. 왜일까. 저자는 이렇게 서술했다. “토종개 연구는 개를 길러온 우리 민족의 기원과 실마리를 간접적으로 아는 일이다.” 실제로 일본 정부는 총독부 문서에서 우리나라 토종개를 지칭할 때 ‘조선의 개’라면서 ‘조선’이라는 단어를 꼭 붙였다. 그들과 다른 우리 민족만의 무엇이 개 조차에도 들어있음을 일본인들도 알았던 것이다. 지금에 와서라도 우리 토종개를 품종으로 혈통 고정하겠다는 연구가 이뤄져서 다행이지, 당시만 해도 그런 생각을 못한 채 해방을 맞아 한국의 토종개들은 떠돌이 똥개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어버리고 말았다. 이제는 생각을 바꿔야 할 때다.
겉모습이 서로 다른 삽살개와 진돗개가 우리의 토착 개라는 여러 주장이 있다. 그중 조상 개들이 유목민족을 따라 북쪽에서부터 한반도로 내려와 정착했다는 설이 가장 설득력 있다. 10만 년 쯤 전 중국 늑대에서 개로 종 분리가 일어났고 개들은 세계로 뻗어나갔다. 1만 년 전 쯤 한반도에는 아마 토착 개들이 있었을 거고, 유목민족과 함께 가축화된 개들이 들어오면서 개들은 서로 교미하여 한반도 개 역사의 혈통을 만들어갔다. 정확한 자료는 아직 없지만 민화나 구전으로 전해오는 이야기를 듣자면 그렇다. 그런데 조선시대 그림들을 살펴보던 저자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책에 적었다. “여기서 진돗개 닮은 개의 모습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진돗개가 우리 토종개의 대표적 모습이라는 생각은 일제강점기를 통과하면서 얻어진 급조된 왜색 문화적 관점일 수도…….” 이 주장 때문인지 저자는 자신의 연구실로 몰려온 8명의 진도군 의원들과 다툼이 일어난 적도 있다고 한다.
책 내용에 따르면 현재로서는 세 가지 종류의 개가 한국의 대표적 토종개로 공식 인정받고 있다. 진도의 진돗개, 경산의 삽살개, 경주의 동경이가 주인공이다. 책에는 우리나라 개의 사진들이 실려 있는데 진돗개를 누런색이나 흰색으로만 알고 있던 나로서는 흑구, 바둑이, 회색, 오반색, 시베리안 닮은 진돗개들도 있음을 처음 보고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삽살개의 모습은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털이 긴 지저분한 개로 오해할 정도였다. 털 긴 개들은 관리가 안 된 개라고만 생각하고 있던 게 오산이었다. 그들이 실은 삽살개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거렁뱅이 같은 외모지만 실은 삽살개는 ‘살을 없앤다’는 뜻을 지닌 액운 쫓는 유명한 개다. 그래서 과거에는 땅 힘이 센 집의 기운을 꺾거나, 큰 집의 액막이용 동물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개와 함께 살아온 민족의 정체성을 보게 하다
토종개 연구가 활발하다고는 하나 밝히기 어려운 점도 있다. 개 복원 사업을 추진했지만 중단해야 했던 ‘불개’와 ‘오수개’의 사례를 보자. 눈, 코, 발톱이 붉은 토종개 불개는 약용으로 쓰이던 중 멸종했고, 주인을 충성스레 지켰던 오수개 역시 설화에서만 만날 수 있을 뿐 토종개로의 복원이 어려운 실정이다. 게다가 풍산개의 경우 북한 풍산 지역이 원조이기에 북한으로부터의 자료와 표준 개들을 여럿 구해야하기에 현재로서는 연구 진행이 어려운 실정이다.
토종개 바둑이, 누렁이, 검둥이, 발발이, 삽살개, 더펄개 등의 여러 개들의 소개는 개의 평균키, 체중, 반점 유무 등과 함께 자세히 책에 나와 있다. 한편으로는 글만 봐서는 그 개가 그 개 같고 사진 역시 토종개 전문가가 아니면 구분이 어려울 정도로 똑같아 이해에 어려움이 있었다. 내 생각이지만, 독자로서는 저자가 전하려는 토종개 계보 연구의 숨은 의미를 생각하는 것이 토종개를 애써 구별하려는 시도보다 더 우선적이 되어야 할 것 같다.
개에는 아종(亞種, 종을 세분한 생물 분류 단위로 종의 바로 아래 단계다.) 대신 품종이라는 용어가 쓰인다. 인간의 노력으로 유전질이 개선되거나 바뀌어 독특하게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실제로 거의 모든 개의 종 성립 과정을 보면 인위적 노력이 다수를 차지한다. 이와 함께 저자는 우리의 토종개를 ‘우리 기후 풍토에서 특별한 병 없이 잘 산 개’라고 칭했는데 설명이 약간 의아했다. 우리 기후에서 병 없이 잘 살았다는 것은, 우리 기후와 비슷한 다른 지역에서 잘 살았다가 우리 기후로 들어와서도 잘 살게 된 외래종에도 쓰일 수 있기에 그렇다.
책은 토종개의 역사와 설명을 잘 서술해 나가다가 끝에 가서 다양한 애완견 이야기로 방향을 틀었다. 게다가 품종 개량과 세계적 애견 문화 설명이 들어 간 것은 ‘토종개의 불편한 진실’이라는 부제와 더욱 맞지 않았다. 차라리 우리나라 개와 관련한 민요, 속담, 전설, 사진 등에 더 초점을 두어 깊이 들어갔더라면 좋았을 듯싶다. 또한 왜 가축이었던 개가 비상식량이 되어 개고기 문화가 발달하게 되었는지 등도 깊이 서술했으면 더 좋았겠다.
책을 읽으며 제대로 된 이름도 가지지 못하고 관심도 끌지 못한 채 살아온 토종개들을 돌아볼 수 있었다.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토종개에서 찾는 과정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여러 동물들의 수난 역시 인간 수난의 역사와 별개로 보아서는 안 될 중요한 사안임을 다시금 생각했다. 주인의 힘이 약해 같이 수탈을 받았던 우리의 ‘똥개’들에게 미안했다. 창밖을 내다보았다. 더워서 혀를 길게 내민 채 집을 지키는 개가 보인다. 무엇을 지키려는 것인지, 유난히 눈길이 오래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