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에서 걸려온 전화
고호 지음 / 델피노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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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의 주희와 북한의 설화가 전화로 나누는 아픔

[서평] 평양에서 걸려온 전화(고호 저, 델피노, 2019. 11.25)

 

선체에 올라탄 북한 전사들의 모습이 나온다. 마치 전쟁을 치르러 가는 듯한 비장한 모습이지만, 그 안에는 딸을 구하기 위해 가슴 아픈 선택을 한 아버지의 사연이 들어 있었다. 평양에서 걸려온 전화는 주희라는 여성이 영호라는 신문기자에게 자신의 경험담을 말하는 액자 형식의 소설이다.

 

소설은 영호라는 인물로 시작을 한다. 통일 관련 강연을 마친 영호에게 연락이 오는데, 한 여자가 만나고 싶다고 했다. 당시 영호 머릿속은 두 여자로 가득해 복잡한 상황이었다. 한 명은 양육비 지급 날짜가 하루나 지났다고 독촉전화를 해대는 엑스 와이프이고 또 다른 여자는 백미러 아래로 길게 늘어진 펜던트 속 딸아이였다. 소설은 이후 이들과 관련해 영호가 무슨 일을 벌이는 것처럼 전개가 된다. 하지만 주희라는 여자를 만난 뒤 영호라는 인물은 소설 속에서 존재감이 사라져버리는 오류가 발생한다. 주희를 등장시키기 위한 수단에 불과한 인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이 점이 소설에서는 아쉬웠다.

 

기자인 영호에게 다가온 주희는 제보를 하겠다고 말한다. 자신이 말하는 모든 것은 사실이며 의문의 전화가 걸려오면서 사건은 시작되었다고 이야기를 시작한다.

 


 

서로 다른 시공간에 사는 남한과 북한

 

소설에는 설화라는 다른 여성이 나온다. 북한 소녀다. 이 소녀가 등장하는 부분에서는 마치 실감나는 북한 모습처럼 문장들이 묘사되곤 한다.

 

발바닥이 마룻바닥을 마찰시키는 소리가 류달리 콩콩거렸다. 그 옆 풍금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는 기악 련습실을 지나니 이번엔 익숙한 노랫말이 들렸다.” -45p

 

설화의 오빠는 도망을 갔고, 아빠는 훗날 설화를 위해 남한 간첩으로 지원을 하게 된다. 그전에 설화는 어느 날 저녁 누군가에게로 전화를 건다. 그리고 받은 이는 뜻밖에도 남한에 사는 주희였다.

 

주희는 이산가족 상봉을 바라는 아흔의 할아버지가 있었다. 번개가 세차게 치던 날 ‘850-’으로 시작하는 전화를 받는다. 그것은 북한에서 걸려온 전화였다. 주희는 전화를 받을 수만 있고 다시 걸 때에는 없는 번호라는 멘트를 들어야 했다. 처음에는 혼선으로 빚어진 천만 분의 일에 해당하는 기적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전화는 이후로도 계속 왔다.


그런데 둘이 대화를 할수록 서로가 약간 어긋나고 있음을 알았다. 문화나 사상의 차이가 아니었다. 알고 보니 설화가 있는 곳은 1996년이었는데, 2019년에 사는 주희로서는 정말이지 미스테리와 같은 일이었다. 서로 다른 시공간이었다. 여기서부터 소설은 새로운 사건을 보여주며 흥미로운 내용을 전개하기 시작한다. 와중에 주희 할아버지께서 중환자실에 입원을 하게 되고, 설화는 자신의 아버지에게 남한의 어떤 여자와 통화를 하고 있음을 고하게 된다.

 

설화로서도 자신이 건 전화가 남한으로 가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북한 내 어떤 남자에게 건 전화였기에 잘 못 간 줄 알았다. 그러나 점점 주희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고 계속 전화를 걸면서 주희의 말을 믿게 된다. 주희는 설화에게 앞으로 북한에서 벌어진 일들을 이야기한다. 김정은이 집권을 하고 트럼프와 만나는 등 역사적인 이야기가 전재된다. 독자로서는 소설을 통해 다시금 북한의 역사적인 부분을 생각하게 하는 문장일 것이다. 이 문장은 단 몇 장으로 끝나 아쉬움이 남았다. 만약 앞으로 북한에서 벌어질 일을 안 설화가 무언가 행동을 취해 미래를 바꾸려고 노력을 하는 전개가 되었으면 어떨까 싶었지만, 별다른 변화 없이 소설 내내 둘의 전화 통화만이 계속된 점은 약간의 흥미를 줄이는 감이 있었다.

 

그러던 중 위기가 발생한다. 설화가 아버지에게 남한 이야기를 털어 놓을 때 누가 엿듣고 있었는데, 그 여인이 보위원에 고발을 한 것이다. 보위원은 설화를 의심하며 주희한테 전화를 건다. 다행히도 주희가 불길한 낌새를 알아차리고는 중국어로 대답을 하여 상황을 모면한다. 이후 설화는 공화국을 탈출하려고 마음먹는다. 그 전에 주희에게 마지막으로 전화를 걸어 남한 간첩으로 간 아버지가 어떻게 되었는지 미래를 알려달라고 한다.

 

주희는 설화의 요구를 들어주려 인터넷 검색을 한다. 이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된다. 설화가 자신의 큰 아빠의 딸이라는 사실이다. 즉 둘은 친척이었다. 이때 번개가 다시 한 번 와장장 치고 전화 너머로 설화의 비명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중환자실의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다. 마치 우연과 같았다. 이후 주희는 설화가 북한을 탈출해 남한으로 넘어왔는지 찾기 위해 수소문을 한다.

 

주희는 과연 설화를 찾게 될까? 책은 끝날 때까지 긴장을 놓지 않게 한다. 또 새로운 사건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책은 북한 현장에 맞는 묘사를 하며, 괄호로 남한의 치수를 추가 표기하는 방식은 마치 두 공간을 다른 나라처럼 의도되어 있었다. 빠르게 읽히며 흥미로운 전개를 가진 책이지만 이산가족 할아버지의 아픔이 거의 들어가지 않았고, 주희와 설화 간의 전화 통화만이 대다수를 차지하여서 책을 덮고도 여운이 오래 남지는 않았다. 남북 간 미세한 사상 차이와 변해가는 문화 차이로 인한 갈등을 조금 넣었어도 흥미로웠을 진데 말이다.

 

주희는 북한의 미래를 엿보는 주도적인 인물이며 설화는 수동적으로 주희의 정보만을 듣는 역할이다. 아직도 남한이 앞선 사회임을 내비치는 듯한 느낌을 주지만, 이로서 북한의 실상을 알리려는 작가의 의도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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