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계절이라면
윤인혜 지음 / SISO / 2019년 9월
평점 :
절판


달은 저만치 피어올랐는데 밤은 언제 오려나

[서평] 우리가 계절이라면(윤인혜, SISO, 2019. 09.30)

 

이렇게 달콤하고 쌉싸래한 라면이 또 있을까. 그 맛은 개운하면서도 하얀 국물을 생각나게 한다. 우리가 계절이라면은 그리운 누군가를 향한 연가 같은 시들이 모인 라면이다.

 

가령,/ 이제 더 이상/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는다 하여도/ 불어온 바람에 마음이 설레 버린 것은/ 나조차도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 <홍월>. p41

 

시들은 작가가 몇 년에 걸쳐 밤에서 새벽사이에 우러나오는 자신의 깊은 감정들을 모은 것으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글들로 표현되었다.

 

세상이 가장 어두워졌을 때/ 해는 뜨려 하고 있었다” - <>. p22

 

이 시는 짧다. 그리고 빨리 읽힌다. 하지만 읽고 나서 아마 많은 사람들은 시를 읽은 시간보다 더 길게 인생의 의미를 생각해볼 것이다. 나는 작가의 입장에서 시를 생각해보았다. 가장 어두운 새벽과 밤에 시상이 떠오른다는 작가는 그리운 이와의 아름다운 기억이 뜨려는 마음을 로 표현하고 있었다. 물론 이 시구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어 독자마다 여러 감상거리를 갖겠지만 나에게는 작가의 마음이 진하게 느껴지는 문구였다.

 


 

어두운 가운데 해가 뜨기를 기다리는 작가

 

시집에는 국어사전과 같이 단어를 풀어 쓴 대목들도 있었다. ‘희망이라는 단어에 대해 작가는 어둠 속에서/ 한 발짝 나서니/ 희미하게 불빛이 보였다라는 시구로 표현을 했다. 이성적이지는 않지만 공감이 가는 감성이 가득했다. 자연물을 주로 시적 대상으로 형용하는 편이며 달과 어둠, 잔잔한 풍경이 주를 이룬다.

 

안개 낀 통로를 지나/ 굽이진 길을 돌아가 본다// 은하수 비친 하늘은/ 차가운 밤공기를 대신해/ 어느 조용한 곳에 빛을 내리려 했다// 흐르는 물과 흙 사이에 피어있는 꽃은/ 어느덧 나를 일깨우고/ 바람이 불어 차가운 길에도/ 나는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려 했다// 보름달이 이윽고 구름에 가렸을 때/ 그곳의 어둠은 서서히 깨어나고 있었다” - <그곳의 시>. p50

 

시를 읽으며 아쉬운 점은 독자층이 청년 이상은 되어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 도시 감정이 들어있지 않아 어린 독자들의 경우 쉽사리 공감을 할 수 없는 시들이 많았다. 그만큼 인생의 풍파를 겪지 않았을 뿐더러 아직은 왁자지껄한 도시를 소재로 만들어진 영상이나 글을 더 좋아할 시기이기에 그렇다.

 

작은 물고기는/ 어항 속을 헤엄친다// 이곳은 왔던 길/ 다시 되돌아간다// 먹이가 둥둥 떠다니고/ 자갈도 바위도 있는/ 여기는 낙원// 어항 밖은 아무래도/ 위험해 보인다// 오늘도 내일도/ 이곳을 헤엄쳐야지// 작은 물고기는 그렇게/ 바다를 잊어간다” - <어항>. p82

 

<밤이 오지 않는 거리>라는 시가 있다. 시구 중 달은 저만치 피어올랐는데/ 밤은 언제 오려나라는 부분이 너무 좋았다. ‘은 분명 밤을 상징하는 구성물이다. 그런데 마치 달의 존재가 밤의 모든 것은 아니라는 듯 표현을 했다. 작가에게 있어 진정한 밤은 무엇인지 또 밤에 대해 사람마다의 감상이 이토록 다양할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했다. 작가가 밤이 되기를 기다린 이유는 무엇일까. 도대체 무엇이 그리워 이토록 밤을 갈망한 걸까 궁금했다.

 

밤거리에 날리는 눈꽃은/ 손에 잡히지 않는 하얀 조각들// 봄의 꽃들에 가랑비가 내려/ 칠흑 같은 밤을 감싸 안는다// 만개한 벚꽃의 향기는/ 수줍은 손길은 건네/ 이 봄 가득 머무르려 한다” - <눈꽃>. p134

 

시집에는 오직 겨울과 봄만이 있었다. 봄은 가을과 비슷한 온도를 지닌 계절이지만 좀 더 밝은 느낌을 준다.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순간은, 가장 추운 겨울 가운데 비로소 따스한 내일이 찾아올 것이라는 작가의 희망일 것이리라. 비슷한 감성이 반복되는 통에 시들이 지루한 감도 있다. 하지만 그리움을 마음 한 곳에 품고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을 추억이 잠기게 하는 겨울에 알맞은 시집인 것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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