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이 거기 있다, 한 점 의심도 없이 - 쓰는 사람 정지우가 가득 채운 나날들
정지우 지음 / 웨일북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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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불안 > 전방위적인 강박과 압박

[서평] 행복이 거기 있다, 한 점 의심도 없이(정지우, 웨일북(whalebooks), 2019.08.14.)

 

중학교 시절 중간고사 끝나고 난 후, 저자 정지우 씨는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에 휩싸인다. 그래서 소설을 써서 어머니께 보여드렸다. 군대를 제대하고 난 후에는 청춘을 달래듯 장편소설을 썼다. 그 후 정지우 작가는 매일 글을 썼다. 이 책 행복이 거기 있다, 한 점 의심도 없이는 그런 그의 숨결이자, 저녁이고, 잠과 같다고 표현했다.

 

8쪽엔 이런 문장이 나온다. “살면서 쓰는 사람이, 쓰면서 사는 사람이 되었다.”

 

글 쓰는 사람에겐 글 쓰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 웬 당연한 소리냐고 할지 모르겠으나, 요새 드는 생각은 그렇다. 가수는 노래를 하고 싶어 하고, 배우는 연기를 하고파 한다. 교사는 가르치고 싶고, 작가는 쓰고 싶다. 화가는 그리고 싶고, 정치인들은 남들을 속이고자 한다.

 

내가 가장 온전히 숨 쉴 수 있었던 시간의 증거이기도 하다.)(9)

 

책의 시작은 아케디아라는 악마에 대한 이야기다. 수도사들이 지금, 여기를 벗어나고 싶게 만드는 정오의 어느 순간을 의미하는 게 바로 아케디아. 정적이고 무료한 수도사 생활에서 벗어나 동적이고 멋진 외부가 있을 것 같다는 환상을 심어주는 게 바로 아케디아. 작가들은 언제나 멀리 떠나고 싶다. 왜냐하면 현실이 지긋지긋하기 때문이다. 새로운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 하고, 새로운 경험을 하고자 한다. 시간과 돈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작가들이 많은 경험을 하도록 이 세상이 허락하면 좋겠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아케디아를 견디는 유일한 힘은 바로 스스로 더 깊이 외로워지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면 악마도 어느 순간 포기하고 떠난다. 그 자리엔 형언할 수 없는 기쁨이 찾아온다. 요새 왜 그리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아케디아, 정오의 악마, 고독과 기쁨

 

두 번째 에세이는 거대함의 감각을 일깨우기이다. 일상을 벗어나고픈 심정처럼 거대함을 잊고 사는 인간들이다. 그래서 작가 정지우 씨는 아래와 같이 썼다. 그것이 꼭 자연일 필요는 없다. 지성의 전당이거나 문화와 문명의 역사, 혹은 태초의 탄생이나 우주의 확장 등 그 무엇이든 괜찮다. 종교적으로는 신이면 어떻겠는가. 글을 쓰는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전쟁 같은 삶 속에서 작가는 삶의 핵심을 겨냥해 알아채기 위해서 글을 쓴다고 했다.

 

그래서 무엇이 되었든 거대한 것과의 연결점을 잃지 않는 건 중요하다.”(22)

작은 기쁨일수록 거대한 것에 뿌리내리고 있다.”(22)

 

행복은 발굴해야 하는 것이라는 에세이는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삶에 대해 최선을 다해서 살아내야 하는 것이라면,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역시 시간을 투자하고 사람과의 실패든 사업의 좌절이든 받아들여야 할 지점들이다. 정말 안타까울 수밖에 없는 일들도, 발굴해야 하는 행복 앞에선 별개 아닌 일이 되고 만다. 가장 소중한 것들을 위해 우리는 얼마나 덜 소중한 것들에 매몰돼 있는가. 반성할 일이다.

 

행복이 거기 있다, 한 점 의심도 없이는 총 5부로 되어 있다. 1: 오늘의 괜찮음을 확인하는 것 2: 삶이 이미 쓰인 이야기라면 3: 우리는 각자 알맞은 자리에 서서 4: 정성스럽게 사랑하겠다 5: 나라는 고유명사로서의 삶. 에세이들이 정말 차원이 다를 정도로 좋다. 작가의 내공이 느껴지는 것이다. 우선 좋은 문장들부터 소개 하고 싶다.

 

시간으로 솜사탕을 만들어 먹고, 시간이 도처에 널려 있어 그것을 타고 구름 여행을 하는 어느 천국을 상상한다.”(33)

나는 어느 겨울, 세 강아지를 내 팔다리에 하나씩 끼고, 그들의 숨결을 느끼며, 고요히 책을 읽던 오후보다 더 나은 순간을 좀처럼 알지 못한다.”(41)

결혼하여 부부가 되었든, 고백하여 연인이 되었든, 오늘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저 공허한 명칭에 불과할 뿐, 사랑하는 자라고 할 수는 없다.”(43)

사람들은 자유로운 불안보다는 자기를 붙들어 매줄 수 있는 명확한 길을 원한다.”(51)

새로운 무언가가 되려면, 즉 새로운 관계를 얻고 새로운 세상을 알고자 하면, 나를 포기하는 순간이 있어야 했다.”(56)

삶은 자기 이상이라는 잉크로 척척 써나가는 것이라기보다는, 도래해버린 상황들 속에서 주섬주섬 적응하고 선택하는 일인 것이다.”(79)

사실 항로의 주인은 선장이 아니라 바람과 해류 따위이고, 선장이 할 수 있는 일이란 그러한 이미 정해진 흐름을 크게 거스르지 않으면서 겨우 바다를 건너는 것 정도이다.”(80)

자기 존재의 근본, 당당함, 자신감, 나를 지켜주는 정체성의 근원이 나의 잘남보다는 내 앞의 타자에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알 필요는 있다.”(176)

대부분의 사랑이라는 것은 그 대상에 새겨진 자신의 시간에 대한 사랑이다.”(216)

 

정지우 작가는 이상할 만큼 나와 많이 닮은 것 같다. 살아온 방식도, 생각하는 것도, 지향하는 것들도. 아마 나이가 비슷한 것일까. 나이 듦에 대해서도, 그동안 해온 것들에 대한 상념들도 보니 꽤 닮아 있다. 나만의 착각일지 모르겠으나 시간의 소중함을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아마 정지우 작가가 작가로서 역량이 충분한 것일지 모르겠다.

 

자부심에 대한 그의 무엇에 자부심을 가지는가에세이 소개로 서평을 마무리 해야겠다. 이 글을 읽고 있으니, 신해철의 <나에게 쓰는 편지>가 저절로 떠오른다. 우리는 그저 우리가 가진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 서로 상대방에게 당신의 자부심이 무엇인지도 잘 묻지 않는 우리 문화다. 작가 정지우 씨는 자신이 여동생과 잘 지냈던 점, 동물들을 사랑하고 보살핀 점이 자신에겐 자부심이라고 했다. 나도 많이 그렇다. 형님을 많이 사랑하는 점, 동물들을 아끼고 보살피는 점이 나의 자부심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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