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세계 : 세상 별별 춤을 찾아 떠나는 여행 - 2020 세종도서 인문 선정도서
허유미 지음 / 브릭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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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재능-일상, 쉘 위 댄스? 춤추는 세계

[서평] 춤추는 세계(허유미 저, 브릭스, 2019. 07.18.)

 

이십 대에는 그저 위대한 안무가가 될 테야정도의 불확실한 꿈을 꾸었다. 또한 잘 보이는 길 밖으로는 사람이 다니지 않고 춤을 추지도 않는 줄 알았다. 그렇게 저자는 잘 보이는 길로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춤을 찾아 각지를 돌아다니면서 저자는 자신이 모르던 춤의 예술적 부분을 바라보게 되었다. 춤추는 세계는 복합적인 정서와 감각을 지닌 춤꾼의 모습이 여행서 형식으로 기록되어 있는 책이다.

 

처음 그 일에 뛰어드는 사건은 재능이다. 그러나 일상이 된 일의 지겨움을 견뎌내는 인내심은 소질이자 적성이다. 저자는 자신이 생각해보지 않은 형식으로 춤을 추는 사람들과 자신이 움직여 보지 않은 방식으로 몸짓하는 사람들을 보면 두고두고 궁금증이 일었다고 했다. 그리고 저자가 내린 결론은 춤사위는 그 지역의 땅이고, 물이고, 바람이고, 사람이다.”는 점이다. 성격, 정서, 감수성 같은 것들이 몸에 반영되어 오래 쌓이고 여러 사람 몸을 거치다 보면, 자연스레 춤사위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춤이 지닌 예술적인 측면

 

지난 날 혜화역에서 실가라는 무언의 연극을 본 적이 있다. 춤으로서 관객을 집중시키는 그들의 몸짓은 춤이라고 하기에는 생소한 장르와도 같았다. 책을 읽는 내내 그때 보았던 춤 연극이 떠올랐고,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다시 생각해 보았다. 춤은 어떻게 춰야 된다고 정해져 있는 바가 없다. 공연자가 표현하기 나름이었다. 공연자의 몸 자체가 새, 풀잎, 바다, 흙 같은 존재로서 움직이는데 그만큼 심오하고 철학적인 주제를 지니고 있다.

 

관객 역시 춤꾼들을 볼 경우 보고 느끼는 감정은 각자 나름이다. 누구에게는 깊은 통찰이 아니라 깊은 난해함으로 느껴질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춤은 알게 모르게 우리를 성장시킨다. 그것들은 모두 우리 몸을 채우고 또 우리를 늙어가게 한다. 예로 산카이 주쿠의 작품을 보자. 이 작품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것들을 표현하고 있다. “개별적인 인간은 비연속성을 갖지만 삶이라는 거대한 질서는 연속성을 갖는다.”가 주제다. 춤추는 이는 물이나 모래라는 자연적 환경과 인간의 몸이 어우러져, 우주란 무엇인가 혹은 삶이란 어떤 질서 속에서 이어지는가와 같은 것을 보여주기 위해 몸을 움직여야 했다.

 

저자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어느 하나 허투루 빚어지는 게 없기에 두고두고 찬찬히 들여다보고 싶다. 어떤 춤이 궁금하다는 것은 그래서, 그 춤을 형성한 공유된 몸들의 세계와 더불어 어떤 사람이 궁금하다는 것이다.” 이에 맞게 저자는 각 나라의 춤을 설명하기 전 도시에 대한 역사와 지리 설명을 먼저 서술했다. 예를 들어, 중국의 경우 <발레의 종주국을 자처하던 20세기 중반의 소련에서 발레 교육과 작품 제작 시스템을 들여왔으므로 문화혁명 시기 매우 빠르게 일정 수준의 춤꾼과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는 설명의 경우 독자로 하여금 나라 고유의 춤이 생기게 된 이유를 파악하게 할 정도로 충분했다. 춤은 무엇을 표현하는지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그러니 동작 하나하나 무슨 의미인지 가늠해 보려 애써 본들 전문지식 없이는 힘들다. 전체적인 분위기를 읽으며 감상하는 방법이 오히려 유효할 것이다.

 

직관적인 세상 너머의 것을 표현하는 몸짓

 

저자는 여행을 할 경우 별 준비 없이 떠나는 편이다. 대부분 겨우 항공권을 준비해 놓는 것으로 여행 준비를 마친다. 비행기가 정상 고도에 오르면 여행 가이드북을 읽기 시작하고, 여행지에서 만난 여행자들, 숙소나 식당 사랑님들에게 정보를 얻고, 가다보니 좋아서 더 머무르거나, 그 반대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한국에 있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싶을 정도로, 다른 나라를 여행하는 저자의 모습은 일관되게 게으르다. 그저 그 나라를 듬뿍 느끼다가 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여행기라는 느낌을 주기도 했다. 무엇보다 춤에 대한 저자만의 분석은 절대 어렵지가 않았다. 저자에 따르면 춤은 내 정체성을 드러내는 가장 강력한 매체이다. 과거 이주 한인들은 살아가는 동안 자신이 누군지 계속 되물어야 하는 과정을 겪어야 했다. 아마도 그들의 춤은 그런 확정되지 않은 몸의 흔들리는 과정을 웅변하면서 발전했을 것이다. 전 세계 이주 한인들은 저마다 현지에 적응하며 나름의 사회를 구성하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가 같았던 시절 공유했던 어떤 것을 찾으려 하고 있다.

 

떠나고, 머물고, 춤추는 것, 그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단순한 경험적 세계에서는 알 길이 없다. 삶의 모진 순간들과 정면으로 만나 기꺼이 살아내고, 상처받은 그 몸을 일으켜 세워 움직이면서 지극한 상태의 진리를 몸에 다시 새기는 것이 춤이다. 춤은 그런 차원의 예술인 것이다. 울고, 웃고, 노래하는 것, 아마도 우리가 아는 세계는 이런 직관적이고 감정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우리가 모르는 세계에서 춤추듯 살아온 분들은 많다.


책을 읽다보면 내가 아는 춤의 세계가 좁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춤추는 이들을 보자면 우리는 동일하고 균일한 세계 속에 살고 있지 않았다. 다르다는 것을 무수히 만나봐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다름을 존중한 후에야 보편적인 삶도 이야기할 수 있다. 춤도 마찬가지다. 춤을 추고 싶은 근본적인 욕구는 세상 어느 사람이나 가지고 있겠지만, 드러나는 양식과 내용은 제각각이다. 다른 춤들을 많이 만나보고 이해하려고 애써 봐야 춤이 어떤 가능성과 보편성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을 완성하기 위해 세계 곳곳으로 여행을 다녔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멋진 생각으로서 독자와 함께 이야기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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