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배기 남편 그래도 사랑해 - 치매 남편과 함께한 6년, 그리고 당신의 빈자리
배윤주 지음 / 청년정신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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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 걸린 남편을 위해 시간은 거꾸로 갔다

[서평] 세 살배기 남편 그래도 사랑해 (치매 남편과 함께 한 6, 그리고 당신의 빈자리)(배윤주 글/그림, 청년정신, 2019. 07.27.)

 

가족이 아프면 끝까지 책임을 지고 돌보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다. 그러나 치매는 아무리 금슬 좋은 부부라 할지라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을 갖게 하는 질병이다. 세 살배기 남편 그래도 사랑해는 치매로 3살 아이가 되어버린 남편을 돌보는 한 여성의 이야기다.

 

치매는 우리나라에만 해도 12분에 한 명씩 발생한다. 치매는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 뇌 기능이 손상되거나 저하돼 전과 달리 부적절한 행동을 하거나 일상생활을 수행하는 데 장애를 보이는 증상이다. 유독한 환경과 스트레스가 주요 원인이라는 연구결과가 있다. 스트레스로 인한 뇌의 변화는 치매로 진단되기 20년 전부터 시작된다고 한다. 저자의 남편도 1995년 공장이 부도나면서 극심한 충격을 받았다. 이후 2012년 말 치매로 의심된다는 진단을 받았고 거의 17년이 지나서야 치매로 나타났다.

   


 

남편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책은 저자의 경험이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었고, 치매에 대한 정보와 예방에 대한 부분도 담겨 있었다. 남편이 알츠하이머성 치매 진단을 받고 저자는 적극적으로 노인 사회복지분야에 더 관심을 가졌다. 치매전문교육을 받고,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땄다. 치매 증상은 70~100가지의 원인으로 나타나는데, 그중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하는 건 뇌세포 퇴행에 의한 알츠하이머성 치매다. 1906년 독일의 정신과 의사 알츠하이머 박사가 최초로 보고하면서 명명되었다. 치매는 발병하면 거의 완치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치료약이 없다.

 

치매에 걸린 뒤 남편의 시간은 거꾸로 가기 시작했다. 저자를 보고 가끔 기분이 좋을 때면 엄마라고 부르고, 화가 나면 인상을 쓰며 밀쳐버리곤 했다. 감정 조절을 잘 못했다. 그리고 익숙한 것들로부터 하나씩 멀어지고 있었다. 어린아이들은 하나씩 배워나가는데, 남편은 하나씩 잊어버리고 있었다. 전에는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면서 신바람을 내며 다림질을 하곤 했는데, 어느 날부터인가는 이리저리 계속해서 옷을 돌려놓기만 할 뿐 다리미를 잘 다루지 못했다. 때문에 저자는 남편이 조금씩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남편의 일상은 어머님과 함께 하루 종일 집에 있거나 혼자 동네를 돌아다니는 것이었다. 어머님은 아들에게 별 관심이 없으셔서 혼자 방에 계시다가 가끔씩 동네공원이나 성당을 다녀오실 뿐이었다. 남편에게 일자리를 얻어주기도 했지만 열흘 만에 골프장 알바에서 잘리거나, 쫓겨나곤 했다. 그래도 남편이 실망할까봐 사실 대로 이야기할 수는 없었다. 치매환자를 돌보는 것은 긴 싸움이므로 분담이 필요했다.

 

남편은 스스로 화장실을 찾아가서 볼일을 볼 수 없는 상태가 되었고, 3~4시간마다 화장실로 데려가 볼일을 보게 해야 했다. 하지만 여전히 보통사람과 같은 인격을 갖춘 인간이었다. 좋은 그림을 보면 좋아하고, 좋은 음악을 들으면 즐거워했다. 두 아들과 같이 여행을 온 날은 기분이 좋은지 남편은 하루 종일 싱글벙글 웃었고 밥도 맛있게 잘 먹고 잘 잤는데, 누구와 어디를 다녀왔는지는 금세 잊어버렸다. 하지만 그 순간만큼은 즐겁고 행복한 것 같았다.

 

내가 즐거워야 치매 환자도 잘 돌볼 수 있다

 

치매 환자를 돌보는 데는 배변과 식사 케어가 가장 힘들고 시간이 많이 든다. 환자의 건강과 직접적인 관계가 있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일이기도 하다. 특히 2018년은 저자에게 무척이나 힘겨운 해였다. 남편의 치매증세가 급격히 나빠져 가족들을 힘겹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밤이 깊어도 잠을 자지 않고 이상한 행동을 하며 지새웠다. 용변처리, 양치질, 수저질도 잘 못했고, 잘 걷기는 했지만 단어를 거의 다 잊어버려서 몇 시간을 같이 있어도 거의 말을 하지 않고 대화가 거의 되지도 않았다. 또 매사에 간섭을 하고 폭력적인 행동을 해댔다.

 

어느 설날 가족들이 모인 자리에서 아들은 아빠를 요양원으로 모시겠다고 선언했다. 저자는 겉으로는 안 된다고 얘기를 했지만 어쩌면 속으로는 이렇게 먼저 얘기를 해주기를 바랐는지도 몰랐다. 우선 내가 즐겁고 행복해야 남편을 즐거운 마음으로 돌볼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취미생활을 시작했다.

 

남편의 사망은 합병증 때문이었다. 실제로 치매환자는 치매로 사망하는 경우보다 치매에 의한 합병증으로 죽는다. 남편도 흡인성 폐렴으로 입원했다가 결국은 폐혈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저자는 책에 주장했다. 이제는 잘 죽어야 하는 시대라고. 남편이 떠나기 한 달여 전 갑자기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저자에게 똑똑히 했다. 저자는 아직도 남편을 그리워하며 지내고 있다.

 

책은 치매 환자를 돌보는 가까운 가족의 감정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생생했다. 읽는 내내 눈물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떠올리게 했다. 점점 아기가 되어가는 치매 환자를 돌보던 어떤 이가 아름다운 영화로서 그를 영원히 담아두려고 만든 영화는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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