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 인간의 삶을 바꾸다 - 교통 혁신.사회 평등.여성 해방을 선사한 200년간의 자전거 문화사
한스-에르하르트 레싱 지음, 장혜경 옮김 / 아날로그(글담)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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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 대신 바지 입고 자전거에 탄 여성들

[서평] 자전거, 인간의 삶을 바꾸다 (교통 혁신·사회 평등·여성 해방을 선사한 200년간의 자전거 문화사)(한스-에르하르트 레싱, 장혜경 역, 아날로그(글담), 2019.07.05.)

 

미국의 잡지 <사이언티픽 어메리칸>에서 한 기자는 이런 말을 했다. “자전거에 견줄 만한 사회 혁명은 없다. 바퀴 위에 앉은 인간은 기존의 수많은 공정과 사회생활의 형태를 바꾸었다. 자전거는 평등의 상징이다.” 19세기는 그야말로 두 바퀴 자전거의 최대 붐이었다. 역사서들이 자전거의 완성이야말로 19세기 최대의 사건이라고 결론 내린다고 해도 여기에 이의를 제기할 이는 없을 것이라는 기사가 실릴 정도였으니 말이다.

 

자전거, 인간의 삶을 바꾸다는 곧 출간될 흥미로운 자전거 역사서다. 제목에서와 같이 자전거의 역사를 통해 그 속에서 바뀌어 가는 인간의 에 초점을 맞추어 내용은 전개되었다.

 

 

자전거 바퀴살의 진화

 

1817년 카를 폰 드라이스는 자신이 만든 달리는 기계를 타고 독일 만하임에서 출발해 12.8km 거리를 한 바퀴 돌고 돌아왔다. 그 이후 200년간 자전거는 시대와 사람들의 요구에 따라 수없이 많은 변화를 거듭하며 지금에 이르렀다. 그리고 지난 2017년은 자전거 탄생 200주년이다. 초기 자전거가 나왔을 당시 사람들은 놀랐다. 달리는 기계가 폐달 없이 발로 땅을 차서 앞으로 나아가는, 즉 땅에서 장시간 발이 떨어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시대였다.

 

1851년 경 목수였던 월러드 소여는 금속으로 네 바퀴 벨로시페드를 만들었다. 이는 철제 기계로서 보기에 좋고 튼튼했다. 그러나 무겁고 가격이 비쌌다. 이후 혁신적인 생각이 나온다. 두 바퀴 자전거 앞바퀴에 폐달 크랭크를 장착하자는 아이디어가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이 주제는 자전거 역사를 기술할 때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는 질문 가운데 하나다. 여러 답이 있겠지만, 결과적으로 그렇게 하여 발을 땅에 딛지 않고도 장시간 자전거를 탈 수 있게 되었다.

 

바뀐 자전거의 프레임은 금속이었다. 그러나 바퀴는 여전히 나무였다. 압력이 강한 바퀴살은 옆으로 꺾이지 않으려면 두껍고 견고해야 했다. 장력이 큰 바퀴살은 그럴 필요가 없고 철을 이용해 실처럼 가늘게 만들 수가 있었다. 파리의 한 기술자가 이 원리를 이용해 크고 가벼운 바퀴를 제작했는데, 이후 이를 흉내 내려 했지만 10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거의 안개처럼 여겨졌다. 왜냐하면 이 기술자의 이름이 마지(Magee)'라고 잘못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일본의 학자 게이조 고바야시가 1993년 석사 논문에서 마침내 그의 정체를 밝혀냈는데 진짜 이름은 마지가 아닌 알자스 지방에서 태어난 외젠 메예르였다. 자전거의 제작과 공장 운영으로 인해 1870년대 750제국마크르였던 자전거 가격은 1910년이 되면서 28제국마르크까지 떨어졌다.

 

자전거의 발달은 교통 발달의 초기

 

미국에서 대부호들이 자전거에 오르기 시작했다. 석유 재벌 존 록펠러는 자전거 회사의 주주였을 뿐 아니라 직접 체인 없는 자전거를 몰았다. 1890년 워싱턴에서는 의원들이 모여 의회 바이시클 클럽을 만들었다. 정부 각료들이나 대법원 판사들까지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목격되었다. 당연히 자전거 관련 교통 법규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예전에는 아들의 성찬식이나 견진성사 때 금 회중시계를 사주었다면 이제는 자전거를 선물로 주었다. 아가씨들은 용돈을 모아 귀걸이와 브로치, 목걸이 메달을 샀는데 이젠 그 대신 자전거를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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훗날 비토리오 데 시카 감독의 1948년 영화 자전거 도둑은 이러한 배경이 기본이다. 1890년대 자전거 붐이 일면서 일찍부터 자전거 도둑은 기승을 부렸다. 자전거가 20만 대에 이른 시카고에서는 또 다른 절도단이 적발되기도 했다. 그들은 불과 열흘 만에 63대의 자전거를 훔쳐서 다른 곳에서 팔아치웠다. 롱아일랜드에서는 도둑 한 명이 하룻밤에 무려 다섯 번이나 도둑질을 해서 수입이 거의 50%나 늘었다.

 

자전거는 여성의 권리에도 역사적인 힘을 부여했다. 자전거를 타려면 긴 치마가 거추장스러울 수밖에 없었으므로 각종 자전거용 복장이 속속 등장했다. 당시엔 남녀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이 바지를 입은 여성을 보면 여성성이 사라질 것이라고 걱정을 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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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 이전에 세 영국 남자가 자전거를 타고 독일 곳곳을 돌아다니며 겪은 각종 경험담이 담긴 소설 자전거를 탄 세 남자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나온다. “10년 전만 해도 명예를 중요하게 여기고 남편감을 찾고 싶은 독일 여성이라면, 절대로 자전거에 올라탈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것이다. 요즘은 떼를 지어 자전거를 타고 다닌다. 그 모습을 보고 노인들은 기가 차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지만, 젊은 남성들은 오히려 그녀들과 나란히 달리기 위해 서둘러 따라 잡는다.”

미국의 한 신문은 자전거가 젊은 여성의 결혼 가능성을 더 높인다고 칭찬했다. 때로 자전거는 이혼 사유가 되기도 했다. 디트로이트의 한 여성이 변호사에게 이혼 상담을 했는데, 부부 문제의 원인이 바로 2인용 자전거였다. 어디로 갈 것인지, 언제 출발한 것인지, 어떤 길로 갈 것인지, 사사건건 싸웠다가 결국 지친 아내가 이혼을 요구했던 것이다.

 

20세기가 되자 남자들은 모터사이클로 눈을 돌렸다. 모터사이클의 역사가 다음 책으로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자전거와 비슷한 방식으로 인간사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본다. 책은 자전거의 진화보다도 진화하는 단계 속에서 보이는 사람들의 반응이 훨씬 재미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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