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 어느 페미니스트의 질병 관통기
조한진희(반다) 지음 / 동녘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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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스런 질병들에 대한 한 페미니스트의 일침

[서평]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 (어느 페미니스트의 질병 관통기)(조한진희 저, 동녘, 2019. 05.27)

 

30대 중반 갑자기 건강이 무너졌다. 저자는 건강을 잃은 후 질병과 함께 산다는 의미를 마음속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아프게 된 몸을 스스로 미워하지 않고 삶을 재구축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 우리 사회에는 질병과 관련한 문구들이 많다. “난독증 있냐/ 암 걸리겠네/ 지랄병 도졌네.”와 같은 질병의 희화화. “저러니까 병 걸렸지/ 어떻게 살았기에 저 집은 암 환자가 여럿이야.”와 같은 질병의 개인화. 이해받지 못하는 월경통 등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의 작가는 이러한 주제를 다루었다 .

 

페미니즘이 다루는 주제 중 하나로 몸과 질병을 읽는 건 크게 어렵지 않았다. 페미니스트는 이라는 이슈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데 저자 또한 그랬다. 사람은 언어가 있어야 의지대로 살 수 있다. 언어를 통해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으며, 여러 현실에 대응할 수 있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이런 시선과 언어의 차이를 가장 크게 느끼는 곳은 미투 운동일 것이다. 평등한 사회를 만드는 주요 출발점 중 하나는, 몸과 세상의 언어가 불일치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침묵에 가두거나 세상에 일방적으로 꿰맞추지 않겠다고 거부하는 것이다.

 


 

아픈 개인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사회

 

저자는 아픈 몸, 질병과 관련해서 그런 작업을 해보려 했다. 결과 아픈 몸에 대한 논의가 의료나 제도에 과도하게 한정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아픈 몸들은 때로 눈빛에 베인다. 유방암은 사랑받지 못해서 걸리고, 자궁암은 섹스 파트너가 많아서 걸린다는 식의 시선이 흔하다. 이러한 결론들은 작가가 몇 년간 응시한 끝에 비로소 얻게 된 것이었다. ‘가 상처 입은 것은 질병 때문이 아니라, 질병에 대한 우리 사회의 태도 때문인 것이다.

 

비장애인 중심 사회가 장애인들을 배제하듯이, 건강 중심 사회는 아픈 몸들을 배제하고 있었다. 아픈 몸들을 자책감의 나락으로 밀어내고 있었다. 공식 통계에 따르면 3명 중 1명이 암에 걸린다. 하지만 사회는 건강한 몸만을 올바른 몸의 기준으로 상정하고 있었고, 우리 사회에 통용되는 언어는 건강 세계의 언어뿐이다. 나의 아픈 몸을 설명할 언어가 별로 없었다. 이러한 질병의 개인화는 아픈 몸에게 질병의 책임을 전가시켜 죄책감으로 고통 받게 만든다. 질병에 대한 관점 자체가 바뀌지 않으면 아픈 몸이 상처받는 일은 줄어들기 어려운 것이다.

 

잘못된 질병 이미지나 낙인은 물론 여성 질환에 국한되지 않는다. 감염성 질환 대부분에는 근거 없는 믿음에서 비롯한 낙인이 강력히 새겨진다. 낙인이 가장 극심한 질환의 대표는 에이즈이다. 에이즈를 일으키는 HIV 의 감염인은 한국에서 연간 800명이 채 안 된다. 그로 인한 사망은 약 100여 명이다. 이에 비해 결핵은 연간 약 35,000명이 걸리고, 매년 약 3,000명이 사망한다. 그럼에도 에이즈를 둘러싼 공포는 결핵에 비할 수 없을 만큼 깊다. 남성 동성애자들의 질병이라는 잘못된 명명과 동성애 혐오가 만들어낸 질병 이미지 때문이다.

 

관습으로 통용되는 질병에 관한 묵은 생각들

 

멜러니 선스트럼은 남성이 통증을 호소하면 진통제, 수술, 완벽한 검사의 혜택 등을 누릴 가능성이 크지만, 여성이 통증을 호소하면 우울증과 불안을 치료하는 향정신성 의약품을 처방받는다.”는 글을 썼다. 여성의 통증 호소는 심인성으로 치부되기 쉽고,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할 때도 있다는 의미다. 폐암은 여성스럽지 않고, 출혈이나 갑상선암 같은 병들은 여성스러워야 한다는 말을 우리는 종종 듣는다. 때로는 영화나 드라마 속 현기증이나 빈혈도 여자 주인공의 병으로 대표되곤 한다. 폐암 같은 병은 남자들의 것이라는 인식이 강하다. 심지어 19세기에는 결핵이 천재들의 병’, ‘예술가들이 걸리는 병으로 낭만화 되었다.

 

우리는 아픔과 고통에 대해 듣고 자란 것을 관습처럼 여기고 있었다. 결과 현대의 여성 질환들은 홀대받고 있는 실정이다. 작가 글로리아 스타이넘은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월경이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자랑거리가 될 것이다. 남자들은 자기가 얼마나 오래 월경을 하며, 생리양이 얼마나 많은지 자랑하며 떠들어댈 것이다…….” 아파도 미안하지 않습니다를 통해 우리는 생각 없이 쓰는 질병에 관한 여러 말 속에 어떠한 묵은 의미가 끼어 있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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