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 생명의 지배자 - 누가 당신을 지배하여 왔는가?
윤정 지음 / 북보자기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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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고착이 부른 히스테리, 무의식으로 치료

[리뷰] 『무의식 생명의 지배자』(윤 정, 북보자기, 2019. 04..04.)

 

누가 나를 지배하여 왔을까. 모든 삶에서의 선택은 나의 의지이고 의식인 줄로만 알았다. 간혹 이해할 수 없는 감정을 보이는 사람들을 만날 경우 ‘왜 저들은 이성적으로 생각을 하지 못 할까.’ 안타까울 때가 많았다. 그러나 『무의식 생명의 지배자』를 보자니 사람들의 모든 선택은 의식이 아닌 무의식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책은 세 명의 정신분석학자들의 주장을 담았다. 이를 통해 독자로 하여금 존재의 의미를 고민하면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문명사회 속에서 자아가 주체를 갖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무의식의 현상과 잘 소통해야 한다. 무의식에 관해서는 19세기에 쇼펜하우어, 니체 같은 실존주의 철학자들이 내면의 역동성을 주목하면서 이성이 미치지 못하는 마음속 깊은 곳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면서 본격 연구가 되었다.

 


프로이트, 충동의 무의식

 

히스테리를 연구하던 프로이트는 무의식의 존재에 관심을 가졌다. 히스테리 치료에서는 기억 자체가 아닌 고착되어 있는 불편한 감정을 중요하게 여긴다. 그런데 놀랍게도 무의식으로 기억을 호출하고, 그 기억을 자아가 수용하게 할 경우 히스테리 증상은 사라지곤 한다. 우리 모두에게 자발적으로 수용하지 못한 무의식이 있는 것이다.

 

인간이 겪고 있는 신경증의 1차원인은 문명이다. 문명 속에서 살기 위해서는 본능을 사회화해야 한다. 그런데 그 과정에는 억압이 따르며 결과적으로 고통과 갈등을 겪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문명을 거부하고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아니다. 프로이트는 존재적 가치를 문명 속에서 추구하며 동시에 삶을 도약시키기를 바랐다.

 

프로이트 주장에 따르면, 무의식은 아이가 맨 처음 접하는 집단인 가족 구성원 속에서 발생한다. 자신의 위치를 잡는 과정에 오이디푸스 콤플렉스가 정서적 근원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격은 무의식에 담은 성충동의 조직화를 얼마만큼 완화시켜 표출하는가에 따라 달리 형성된다. 자아는 무의식의 충동성과 초자아를 완화시키는 과정 속에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를 극복한다. 이와 관련해 책은 인격의 형성도에 따른 여러 문제적 성적 정체성도 설명했다.

 

라깡, 상징의 무의식

 

라깡은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상상적 의미의 존재를 거부했다. 라깡에 따르면 “나는 생각하지 않는 곳에서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는 곳에서 생각한다.”이다. 라깡은 문명사회 자체에 의구심을 가졌다. 문명사회에서 사용하는 문자가 오히려 그 생생한 현존을 제거하고 말 자체의 진리를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인간의 의식은 문자를 가지고 존재를 드러내는 것이라 볼 수 있는데, 문자만으로 자신의 삶을 대신 보충하며 살아간다고 달리 말할 수도 있었다. 그래서 문명사회의 언어야말로 무의식을 발생시키는 원인인 것이다. 문자로 표현하는 것에 절대적인 의미를 담을 수는 없다. 이 과정에서 문명인들은 소외와 부재하는 결여를 느낄 수밖에 없다.

 

라깡의 주장은 책에 나온 3명의 심리철학자 가운데 가장 설득력이 있었다. 문명 속의 무의식은 언어의 구조화 속에서 소외와 결여를 느끼며 말하는 주체에게 발생한다. 그렇다면 과연 문명에서 살지 않은 이들은 어떻게 무의식을 표출할 수 있을까. 아마도 예술이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이성이 난무한 사회에서 예술은 시기에 따라 다르게 작용하면 비문명 사회처럼 문명인들의 결여를 충족시키는 역할을 해온 것이다.

 

세상을 이성으로 바라보기보다는 ‘삶’으로 바라보는 것이 더 근원적이고 본질적이다. 이러한 주장은 매우 공감이 되었다. 인간 상실에 대한 주장이 아마 라깡에서 시작된 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인간을 통제하고 지배하는 사유체계 속에서 인간의 무의식은 지속적인 억압을 당하고, 이로 더 강력한 충동성을 가지게 되며 상실의 위기에 몰리고 있기 때문이다. 존재와 소외와 결여에서 욕망은 파생된다. 욕망은 계속 누적되어 문명을 지배하는데 이러한 자신의 욕망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 ADHD, 불면증, 중독증, 강박증 등등이 나타나기도 한다.

 

윤정, 현상의 무의식

 

윤정의 무의식은 생물학적인 부분이 바탕이 되었다. 물리학, 화학, 분자생물학, 세포학, 미생물학 등과 결부시켜 생명적이고 현상적인 관점에서 성찰했다. 윤정 역시 상징계의 모든 언어의 의미가 사물에 도달할 수 없다는 한계를 절감하고는 있었다. 이와 함께 보이지 않는 것이 드러나는 다양한 생명체의 현상 속에서 무의식을 바라보았다.

 

현상의 무의식에서는 생명체가 막(membrain)을 갖게 되는 사건을 최초의 자아적인 질서로 이해한다. 막을 가짐으로써 다양한 자극의 감각은 자기 유지를 위한 생리적 현상과 결합한다. 사라지는 모든 것들은 흔적을 남긴다. 오늘날 만들어지는 새로운 것들은 그런 흔적들의 결과다. 이러한 흔적은 보이지 않지만 생명의 근원자리인 무의식에서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현상의 주체가 된다.

 

윤정의 주장 역시 처음에는 나름 설득이 갔다. 그런데 책 후반부로 갈수록 물질적인 생명현상을 추상적인 주장으로 바꾼 부분이 있어 혼란이 들었다. 가령 ‘흔히들 마음이 질병을 만들고, 마음으로 치료할 수 있다는 말을 한다.’는 등 심리와 관련한 내용으로 주장이 전개된 점들이 그렇다. 결국 무의식이란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고 형이상학으로 빠져버릴 수밖에 없는 현상인 건가 생각이 들었다.

  

책은 3명의 정신분석가들 주장에 이어 관련된 여러 사례들이 나온다. 이론들을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게 한다. 책에 따르면 오늘날 사회나 개인 문제 다수가 무의식과 관련되었기에 제대로 바로잡을 수도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인간은 불완전하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불완전하기에 우리는 영원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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