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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스빌 이야기 - 공장이 떠난 도시에서
에이미 골드스타인 지음, 이세영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19년 3월
평점 :
GM차의 공장 폐쇄, ‘제인스빌’이 망가지다
[리뷰] 『제인스빌 이야기 (공장이 떠난 도시에서)』(에이미 골드스타인, 이세영, 세종서적 2019.03.05.)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재난을 겪은 이들이 있다. 그 재난은 생태에서 오지 않았고 자신들을 지켜 주리라 믿었던 사회로부터 왔다.『제인스빌 이야기』는 공장 폐쇄 이면에 담긴 진실을 그린 책이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시간과 맞닥뜨린 사람들의 삶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2001년 우리나라에서 대우자동차 정리해고가 시작되었다.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는 서른 명이 넘는 해고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그리고 2018년 2월 13일, 한국 GM이 군산 공장 ‘3개월 후 폐쇄’ 방침을 발표했고 군산 공장은 5월 31일 공식 폐쇄됐다. 이로써 희망퇴직자와 전환 배치 대기자, 비정규직 해고자, 협력 업체 노동자와 그 가족들 모두의 삶에 비상사태가 도래했다. 비슷한 사건이 미국 위스콘신주 제인스빌에서도 발생했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9/0417/pimg_7576941242175319.jpg)
제인스빌의 유서 깊은 GM 공장의 폐쇄
제인스빌은 미국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90번 고소도로에서 시카고~매디슨 구간의 4분의 3지점에 있다. 인구 63,000명의 군청 소재지로 록강의 만곡부를 따라 시가지가 형성되었다. 소도시지만 대통령,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들, 곧 대통령이 될 사람들이 들렀다 갈 정도의 규모는 되었다. 제인스빌은 지역 출신 제조업자 두 명이 유명했다. 질 좋은 만년필로 특허를 받아 1880년대 파커 펜 회사를 세운 조지 S. 파커와 사업가 조지프 A. 크레이그. 크레이그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 GM을 지역에 유치하기 위해 전략적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불과 몇 년 만에 GM 생산 공장은 풋볼 경기장 열 개 크기인 13,400여 평으로 확대되었다.
제인스빌은 금융위기 이후 여러 가지 곤란한 상황을 겪은 와중에도 민주당 텃밭 도시로서의 정체성을 지켰다. 그런데 불길한 소문 하나가 떠돌기 시작했다. 제인스빌 공장이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었다. 주민들은 불안했지만 그것이 현실이 되리라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 은행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 신청 소식이 들려왔고, 이로부터 4주 후 월요일 제인스빌 공장의 조기 폐쇄가 결정되었다.
사건의 여파는 엄청났다. 2008년과 2009년 제인스빌과 인근 지역에서 9,000명에 이르는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GM이 이 지역에서 지불하는 급료 규모와 이번 사태가 몰고 온 경제적 충격은 너무도 컸다. 이와 관련한 묘사 한 구절이 매우 강하게 눈에 띄었다.
“폴의 휴대전화는 지금으로부터 3년도 더 지난 어느 날 밤, 공장이 문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예고 전화를 받았을 때처럼 그의 벨트에 고정되어 있다.”
2008년 12월 23일, 미국 최대 자동차 생산 업체의 가장 유서 깊은 공장에서 최후의 제품이 출고되었다.
빛 좋은 개살구와 같은 직업 재교육
책은 공장폐쇄 뒤 벌어진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담았다. 13년하고도 엿새를 GM 노동자로 지내온 제러드 휘태커라는 남자가 있었다. 그의 아버지와 장인 역시 그곳에서 30년을 일했고 퇴직 후 GM의 빵빵한 연금을 받았다. 휘태커는 조립 라인이 사라진 뒤에도 회사가 자신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데 의심을 품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대부분의 실직자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일자리를 위해 재교육을 받아야 할 상황에 처해버렸다.
처음에 사람들은 자신들이 재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믿지 못했다. 사라진 일자리를 대신할 새 일자리를 당장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새로운 기술을 배우며 전직 기회를 찾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기까지 길게는 1년 이상 걸린 사람도 있었다. 당시만 해도 연방정부는 매년 수백만 달러를 실직 노동자들의 재교육에 지출했다. 제인스빌 GM공장과 인근 지역에서 일자리를 잃은 수천 명이 이러한 직업 재교육을 처음 몇 해 동안 받았다. 그러나 직업 재교육은 제인스빌은 물론 그 주변 지역에서도 구직 기회나 임금을 늘리는 데 아무 도움도 되지 않았다.
공장 관계자는 조립라인 곳곳을 돌며 실직 후의 인생 계획이 중요하다는 점을 공들여 설득해야 했고 간간이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블랙호크 기술전문대학의 가을 학기가 시작된 8월의 마지막 월요일, 실직 후 새 일자리를 찾지 못하고 달리 갈 곳도 없었던 제인스빌 노동자들은 학교로 몰려갔다. 사람들은 모두 불안하고 주눅 들어 있었다. 이러한 모습은 책에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었고, 저자는 이를 비판적으로 묘사했다. 블랙호크에 많은 공장 노동자들이 들어왔지만 대다수 학업을 중도에 포기하곤 했던 점이 수상했기 때문이다.
생생한 사회학 교재와 같은 책
GM 중역들은 위스콘신주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인센티브 패키지를 도입하기도 했지만, 파산 법정에 선 회사에 돈보다 중요한 것은 없었다. 제인스빌은 공장 문을 다시 열 기회를 잡지 못했다. 2015년 <제인스빌 가제트> 1면에 제인스빌 공장 영구적인 폐쇄 기사가 실렸다. 공장 살리기에 실패한 것이었다.
책은 직장을 잃은 뒤 4년간의 제인스빌 실직자들의 삶을 가까이서 파헤쳤다. 사람들이 간절히 직장을 원하고 그곳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이유를 가족과 연관하여 묘사하기도 했다. 책은 중요한 시사점을 품고 있었다. 우리가 흔히 ‘공장폐쇄’와 관련해 알고 있는 겉보기와 달리 그 내부에는 중요한 사실이 담겨 있었다. 실직자뿐 아니라 GM 부품을 더 이상 하역할 필요가 없어질 화물 조차장 노동자들, 불화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지갑을 열지 않으면 고객을 잃을 소규모 점포들, 더 이상 집이나 건물을 짓지 않는 탓에 일이 끊길 건설 노동자들의 사정까지. 이들의 모습이 충분히 관심을 둘 만큼 언론에 보도되지 않고 있었다.
『제인스빌 이야기』는 한 지역 공동체의 부분적인 이야기만을 담았지만, 저자가 경제 상황과 인근 주민들의 태도를 광범위하게 탐색하려 노력했다는 점을 엿볼 수 있었다. 저자는 록 카운티에 대한 설문조사에 착수하기도 했고, 직접 수년간 이들과 함께 실직의 고통을 겪었다. 사람들의 일상을 1년 단위로 세밀하게 묘사하고 이들의 불안을 생생하게 담았다. 그럼으로써 독자 역시 한 사람의 제인스빌 주민이 되어 당시의 상황을 체감하게 하였다.
실직은 주민들의 감정과 인간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솎아지는 노동계급의 실태를 통해 과연 노동자로 산다는 의미가 어느 정도까지 국가에 예속되어야 하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