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란 담요 푸른도서관 81
김정미 지음 / 푸른책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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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로 분장하고 가면을 쓴 청소년들의 일상

[서평] 『파란 담요』(김정미 저, 푸른책들, 2019. 02)

 

소설 『파란 담요』는 나를 몇 번이나 놀라게 한다. 우선 글을 쓴 작가가 남학생이 아닌 30살을 훌쩍 넘긴 한 아이의 엄마라는 점. 그리고 그러한 나이 대의 작가가 쓰기에는 대화와 문체도 거칠고 완성적으로 다듬어지지 않았다는 점. 그래서 나는 처음에 이 책이 습작 중인 어린 학생의 작품일 거라 여겼다.

 

요즘 책을 통해 어떠한 감동이 전해 오고 또 책을 덮고도 그 감동이 지속되는지를 살피는 게 일상이 되었다. 소설『파란 담요』를 읽기 전 하필 안톤 체호프의 소설들을 읽고 있었다. 그래서 두 작품의 차이가 확연히 느껴졌다. 김정미 작가 작품들의 경우 내레이션이 길어 이상하게도 소설 속으로 깊이 집중되지 않았다. 또한 문장 이음새가 삐꺽거렸는데 글을 한 번 쓰고 더는 퇴고를 안 한 정리되지 않을 글과 같았다. 소설 속 상황들이 잡다하게 늘어지고 있었기에 퇴고를 통해 탄탄하게 잡아줄 필요가 있어 보였다.

 

추가적으로 느낀 점은 다음과 같다. 장점이라면 인물 간 대화가 많은 편이고 흐름이 빨라 쉽게 읽혔다. 아쉬운 점이라면, 청소년 소설이지만 내용이 풍부하지 않았기에 일러스트가 포함되어 있었더라면 훨씬 좋은 효과를 냈을 것이라는 것이다. 또한 대화체가 일반적인 문장과 달리 조금 어색했다. 예로 주인공 학생이 할머니와 대화를 하는 부분에서 할머니가 “너랑 살고 싶어서 왔어. 나는 너 보는 순간 마음에 들었는데, 넌 내가 싫은가 보구나?” 라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할머니’라는 언급이 없었더라면 주인공 친구가 말했다고 믿을 정도로 나이 지긋한 할머니의 말투로는 어울리지 않았다.

 


잡다하게 나열된 청소년의 일상

 

단편『피에로는 날 보며 웃지』는 피에로 분장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소년이 어느 모임에 초대되었는데, 참가 조건으로 피에로 분장을 하여야 했다. 주인공은 부끄러운 나머지 피에로 분장을 하지 않고 들어갔는데 이미 많은 친구들이 피에로 모습으로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주인공은 얼핏 옆의 거울을 봤는데 자신도 피에로의 모습이 되어 있었다.

 

<피에로 분장만 하면 없던 용기가 생긴다. 만약 이 일을 하지 않았다면 평생 내 안에 용기라는 게 있는 줄도 몰랐을 거다.>

 

자신을 숨기고 싶은 청소년들의 심리를 잘 나타낸 작품이었다.

 

하지만 작가가 작품으로 내보이는 피에로가 인터넷 상의 익명을 의미하는지, 심리적 불안을 내포하는지는 확실치 않았다. 그런 상태에서 자신을 숨기는 매개물로 ‘피에로’라는 소재를 썼다는 건 너무도 진부했다. 또한 이 소설은 독자들에게 억지로 교훈을 쥐어주려는 불편함이 있었다. 주인공이 갑작스레 피에로가 된 부분에서 “원래 모두는 태어나면서부터 피에로 같이 자신을 숨기고 웃는다.”는 문장이 비슷하게 전개되었기 때문이다. 주제를 억지로 전달하려는 글의 경우 다음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서부터는 그 글이 어떠하였는지 아무 감흥이 들지 않는다는 점이 있다. 여운이 없는 것이다.

 

또한 문장에 설명식 독백이 많았다.

 

<피곤하다. 이제 그만 자야겠다. 나는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리고 눈을 감았다. 언젠가 라디오에서 들었는데 사람의 뇌는 멍청해서 눈을 감고 있으면 진짜 잠을 자고 있는 것으로 여기고, 입 꼬리를 올리고 있으면 거짓이더라도 정말 웃는 것으로 착각한다고 했다. 나는 멍청한 뇌를 속이기 위해 눈을 꼭 감았다.>

 

이런 설명 전개가 청소년 소설에 어울리고 소설에도 어울리는지가 문제였다. 마치 에세이와 같이 느껴졌다.

 

단편『크리스마스에 N을』을 보면 주인공 남학생은 인터넷으로 ‘N’이라는 여자와 연락을 하게 되는데 크리스마스에 만나기로 하고 기다리던 어느 날 여자의 연락처가 사라져버렸다. 주인공은 여자를 찾기 위해 사진을 토대로 학교, 집 근처를 떠돌았다. 하지만 찾지 못하고 그저 약속 날 약속 장소로 찾아갔고 그곳에서 남자인 ‘N’을 보게 됐다. 주인공은 이런 말을 했다.

 

<“너도 변신술에 능했구나. 고양이나 산타가 아니어서 다행이랄까?”>

 

그런데 주인공의 말이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도 담담했다. 전혀 놀라지도 않았고 마치 이미 전날 만났던 친구를 눈앞에서 본 사람과 같이 행동했다. 책을 덮고 드는 생각은 아무리 청소년 소설이고 사건의 전개를 우연과 긍정으로 구성한다 하더라고 규칙이란 것을 지켜야 한다는 점이었다. 물론 책의 문구들은 청소년 소설에 맞게 활기에 넘쳤다. 다만 불안하고 규칙을 무시하려는 청소년들처럼 소설도 아무렇게나 편하게 쓰여 있었다는 점이 문제였다.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삼고서 시답잖은 대화를 나열하고 문장을 과격하고 놀라운 표현으로만 가득 채우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청소년이 주인공이라 한다고 꼭 청소년 소설이 되지는 않는다. 정돈된 문장으로 나름의 가벼운 성찰을 할 만한 거리가 들어가야 했다. 특히 억지로 의미를 만들기보단 흥미와 재미를 우선으로 두고 다음으로 독자들이 자연스레 의미를 찾도록 유도해야 했다. 요즘 청소년들도 어른 만큼이나 책을 읽을 줄 안다. 글을 이해하는 능력과 사물을 바라보는 모습도 어른처럼 배운다. 그렇기에 청소년 문학이라고 거친 문장만으로 이루어지거나 스마트폰, 유튜브 같은 유행물질을 과다하게 넣기만 해서는, 잠깐의 흥미만 불러올 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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