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아리랑 17:20≠1:1.2≠1/1.2=1:2=1/2 - 그는 혼자였습니다
남도현 지음 / 페이퍼르네상스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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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하는 아버지를 <자본론>으로 되돌아보다

[서평] 『혼자 아리랑 17:20≠1:1.2≠1/1.2=1:2=1/2 (그는 혼자였습니다)』(남도현, 페이퍼르네상스, 2019. 01.11.)

 

만화 작가의 삶을 엿보고 싶은가. 『혼자 아리랑 17:20≠1:1.2≠1/1.2=1:2=1/2』을 보시라. 책 표지에 ‘그는 혼자였습니다.’라고 적힌 명함이 붙어 있고, 반투명 띠지가 둘러져 있는 고독한 작가의 삶이 다뤄진 책이 있다. 작가가 겪은 일상을 철학적으로 조명한 11가지 에피소드가 책에 담겨 있다.

 

만화 속 배경은 작가가 작업을 하는 농촌이고 인물로는 작가 외에 백구, 아버지, L, 스승이 나온다. 프롤로그 소개에 의하면 이 책은 작가가 시골에서 ‘독립적인 주체’로 살아가기 위한 작은 투쟁을 기록한 것이라고 한다. 작가는 만화를 집중적으로 그리기위해 깡촌으로 이사를 하게 된다. 이사란, 낡은 것이 이탈하는 고통이자 생을 다시 살리는 연료이기도 하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이사를 가면서 미련을 두었던 것을 과감히 처리하는데 그만큼 새로운 마음을 가지게 된다.

 

책의 그림들은 매우 디테일했다. 농촌의 나무와 이파리가 세밀하고 뚜렷했는데 아쉬운 건 그림에 배경의 모든 것은 한 컷에 담으려다보니 너무 현란하여 정작 글씨를 읽기가 버거웠다는 점이다. 작가는 만화를 그리며 현실도피를 해왔다. 그건 어릴 때부터 이어진 습관이었다. 하지만 결국 만화 세상에서 창조되는 자들은 현재 작가의 습관과 같은 인물들이다. 결국 현실을 벗어날 수 없고 조금 비틀 수 있을 뿐임을 작가도 깨닫게 된다.

 



고독한 에피소드들

 

세 번째 에피소드는 ‘노동’이 나온다. 작가는 아버지의 무거운 어깨와 가장의 책임감을 보고 자랐다. 그래서 일만하는 삶을 지양했고 결국에는 돈이 풍요의 전부가 아니라고 자위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면서 이야기는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에 이르기까지 깊어진다. 철학적 내용에 이어 작가는 다시금 일만 하는 아버지를 다시 돌아본다. 그때 아버지의 노동이 새롭게 보이게 된다.

 

네 번째 에피소드는 교회에 다니기 싫었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만든 이야기이며, 다섯 번째는 조급한 마음 때문에 진득하게 한 가지 일을 해나가지 못하던 성격을 돌아보는 내용이었다. 이 경우 철학자 에릭 호퍼의 말을 빌려서는 ‘배워가는 인간’이라는 결론으로 마무리를 맺었다. 여섯 번째 에피소드는 고독이다. 작가라면 누구나 고독을 삶의 부분으로 가지고 살 것이기에 특히 흥미로웠다.

 

일곱 번째 에피소드는 새벽이다. 새벽이라는 어휘에 걸맞게 흑백의 만화 세상에서 인물은 달빛과 같은 노란 옷을 입고 있었다. 원고 마감에 쫓겨 작가는 여러 차례 밤을 새야 했다. 그러나 피로를 이기기 힘들어 종종 새벽에 일어나려고 하지만 늦잠을 자기 일쑤다. 그러한 에피소드 중간에 니체 이야기가 나오면서 “니체는 헤겔과 달리 밤이 아닌 정오에 집중했다. 생성의 아침, 그림자가 가장 짧은 순간.”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철학자 설명에 대한 부분들은 독특했지만 이야기 흐름을 막아 버린다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세밀하고 빽빽하고 현란한 배경 묘사들

 

아홉 번째 에피소드에 이르러서야 책 표지에 소개된 등장인물 중 하나였던 ‘스승’이 나온다. 아주 잠깐 나오고 사라졌다. 그래서 분량을 거의 차지하지 않는 인물이 주요인물 소개로 나온 것이 의아했다. 이외 죽음, 사랑 등의 에피소드가 실렸다.

 

만화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독자의 입장으로서 그림에 여백이 너무도 없어 눈이 어지러울 정도였다. 또한 죽음과 관련한 성찰 부분에서 우스꽝스러운 그림이 나온 것은 적당해보이지 않았다. 각각의 에피소드는 철학자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끝이 나곤 했는데, 이후 앞선 이야기가 어떻게 마무리되었는지도 명확치 않았다.

 

물론 이야기에 깊이를 주기위해 철학자와 현학적 이야기를 끌어들인 건 독특한 구성이다. 그러나 ‘사랑’ 에피소드를 예로, 작가가 애인과 싸우고 한창 부정의 골이 깊어진 전개 순간 철학자의 말 ‘당신을 사랑할 수 없다면 세상 누구라도 사랑할 수 없어요.’와 같은 정 반대 심상의 이야기가 나온 것은 이야기에 대한 감정 변화를 정반대로 바꾸어 혼란을 야기한다. 이야기 하나를 진득하고 깊이 있게 만들었더라면 어땠을까. 자잘한 단편을 11개나 소개하면서 너무 많은 이야기를 넣어버린 점이 아쉬웠다. 그리고 그림이 좀 더 단순했으면 좋았겠고 불필요한 배경도 제거할 필요가 있어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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