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사냥
박문구 지음 / 경진출판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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덤덤한 문체들 녹아든 혼란한 청춘 ‘안개 사냥’

[리뷰] 『안개 사냥』(박문구 저, 경진출판, 2018.11.30.)

 

작가 박문구는 다섯 단편을 『안개 사냥』에 담았다. 작가는 강원도 삼척과 강릉에서 젊은 시절을 보냈다. 프로필에 자신은 떼술보다 혼술을 좋아한다고 적었다. 그리고 이러한 저자의 이력은 단편 곳곳에 흩어져 있었는데, 소재에 바닷가나 강릉 또는 술자리가 꼭 포함되어 있을 정도였다.

 

단편「비」는 ‘김’이라는 주인공이 나온다. 선생님인 김은 부임한 곳에서 한 여선생을 만나는데 우연히 강릉으로 가는 버스를 함께 탄다. 그리고 서로의 삶을 이야기한다. 주인공은 자신이 선생님이 되기까지를 회상한다. 중학교 때 성적에 매우 좋았지만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아 실업계를 가려고 했던 그에게 학교 선생님이 용기를 주었다는 내용이었다.

 

김의 어려웠던 집안 사정을 알고 학교 선생님은 고등학교 등록금과 교육비를 내주었다. 김은 무사히 대학을 갔고 이후 스스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대학까지 마쳤다. 그리고 우연히 자신의 학교에 들른 여선생님을 선생님의 신분으로서 만나게 된다. 여선생의 경우 유부남을 좋아했다가 포기를 하고 결혼을 했는데 알고 보니 남편이 깡패였다. 사기 결혼이었다. 여선생은 체념한 듯 살아가고 있었다.

 

이야기는 평범하게 흘러가는 듯했다. 그러나 때로는 살면서 큰 긴장의 순간보다 잔잔함 속의 두근거림이 더욱 삶을 아이러니하게 만드는 법이다. 주인공은 학생들이 연탄불을 태우고 자다가 질식한 모습을 보게 된다. 여선생도 매우 충격을 받는다. 당시 김과 여선생은 서로 사이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무슨 일인지 여선생도 얼마안가 생을 마감해버린다. 여선생은 임신 중이었고 유서에는 김과의 애칭인 ‘나너’라는 단어가 빼곡했다. 이 부분에서 나조차 소름이 쫙 돋았다. 잔잔함 속의 폭풍과 같았다. 김은 이후 선생 자리를 그만두고 소설을 쓰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몽환적인 일상에 내재한 갈등

 

단편「구덕포 가는 길」은 제목만 봐서는 예스러운 분위기가 풍겼다. 그러나 내용은 현대적이고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느끼고 있는 경험이리라 생각이 든다. 주인공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스스로 생활비를 버는 대학생이다. 그는 밤이 늦은 시각 집으로 가게 된다. 이야기는 집이 있는 구덕포까지 걸어가면서 주인공의 생각으로 채워진다. 독특한 구성이었다. 주인공의 의식과 무의식이 번갈아 나타나며, 무의식 속에서 밤의 정령이 나와 주인공을 걷지 못하게 하는 부분이 많았다.

 

이유인즉, 주인공에게 집은 공포의 공간이었다. 아버지의 폭력과 어머니의 가출, 그리고 새엄마의 주사. 집에 가야할 이유는 어린 남동생 때문이었다. 남동생에게 핸드폰을 선물하기 위해, 그것으로 앞으로 남동생과 멀리서나마 소통을 하기위해 늦은 시각 집으로 가고 있는 것이었다. 한 달에 한 번은 찾아가는 집이지만 이상하게도 눈앞이 캄캄하고 자꾸 길을 잘 못 들었다. 일부러 가고 싶지 않은 곳을 가지 못하게 정령이 다리를 잡아끄는 듯했다. 마지막 부분을 보자니 결국 주인공은 집 근처에 다다라 더는 가지 못하고 주저앉아버렸다.

 

단편「겨울 바다」는 대학 선배인 경규 형의 죽음을 조문하러 성호라는 주인공이 어촌을 찾으면서 벌어진다. 경규 형은 바다 위에서 엔진을 고치다가 큰 배에 치여 죽었다. 성호는 경규 형 주변인들과 술자리를 가진 와중에 형과 관련된 주변인들에 대한 뒷담 화를 듣는다. 우연인지 성호는 어촌에서 한때의 애인과 사랑을 완성하게 된다. 그런데 그 시각 경규 형의 친동생이 여자 문제로 살인을 당하고 있었다. 삶과 죽음이 동시에 존재했던 순간이었다. 성호는 이 체험에서 큰 충격을 받고 차마 자신의 애인을 쉽사리 만날 용기가 없어 문자로 훗날을 기약한다.

 

단편「안개 사냥」은 대기업을 나온 중년의 주인공이 시골에서 요양을 하던 중 안개 속에서 우연히 한 여인을 만나며 마음이 바뀌는 이야기다 이 마을은 안개가 짙다. 주인공과 여인은 가까워지지만 주인공은 다시 서울로 올라가게 된다. 이 소설은 마치 김승옥의『무진기행』을 떠올리게 한다. 희미한 주인공들의 삶 그리고 몽환적인 분위기가 특히 그렇다.

 

전반적으로 소설들이 김승옥의 문체와 비슷했다. 그만큼 잔잔한 일상 안의 회오리를 잘 묘사한 것이다. 그리고 저자의 삶이 많이 반영되어 있는 듯했다. 단편 곳곳에 주인공들의 삶이 겹치는 부분이 많았다. 이는 아마도 저자의 삶일 것이리라 생각된다. 대학생 때 아르바이트를 한 부분과 바닷가 마을인 점, 그리고 글쓰기를 인연으로 삼게 된 점. 작가는 자신의 삶을 덤덤한 문체로 묘사해나갔지만 그 속에서 얼마나 혼란의 시기를 겪었는지가 뚜렷이 드러냈다. 그렇게 자신의 감정을 글로서 묘사하며 예술작품으로 승화하고 있었나보다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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