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시 30분 1면이 바뀐다 - 조선일보 편집자의 현장 기록
주영훈 지음 / 가디언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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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팩트와 맥락 반반, 현장감’이 좋은 제목의 조건

[리뷰] 『23시 30분 1면이 바뀐다 (조선일보 편집자의 현장 기록)』(주영훈, 가디언, 2018.11.27.)

 

우선 책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다. “23시 30분 1면이 바뀐다” 과연 신문사 편집부의 밤엔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편집기자로 잔뼈가 굵은 저자 주영훈 씨는 편집자의 현장 기록을 책으로 만들었다. <조선일보>는 보수 언론이긴 하지만 편집하나는 잘 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과연 거대 신문사의 편집부는 무슨 일들을 하는 걸까, 궁금했다.

 

주영훈 편집기자는 도서관에서 외국 사례를 공부한 바 있다. 1986년 1월 28일 우주왕복선 챌린저호가 폭발한 내용을 다룬 <뉴욕타임스>와 <USA투데이>는 편집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준다. <뉴욕타임스>의 경우, 사안의 중요성을 판단해 팩트 중심의 기사를 1면에 내세웠다. 특히 챌린저호 폭발로 사망한 사람들의 사진을 1면 하단에 실었다. 반면, <USA투데이>는 일반 시민으로 우주왕복선에 탑승한 여교사의 부모들 사진을 실었다. 특히 그래픽을 총동원해 어떻게 사고가 났는지 보여줬다. 그래픽의 힘은 어마어마했다.

 

주영훈 편집기자는 편집에 대해 “세상의 흐름을 짚고 있다는 지적 만족감이 있다”며 “컴퓨터는 몇 초 만에 꺼졌지만 두뇌의 부팅은 몇 시간 동안 꺼지지 않고 몸을 괴롭혔다”고 적었다. 매우 중요하고 만족감을 주는 일이지만, 불면의 밤을 보내야 하는 고통이 있다. 역설적이지만, 그는 또한 “익숙해지고 편해지면 기자는 펜을 놓아야 한다며, 선배들은 그 불면을 열정이라고 불렀다”고 토로했다. 취재기자들의 정성스럽게 작성한 기사를 어떻게 하면 제대로 편집하고 임팩트를 줄 수 있는지는 오롯이 편집기자에게 달렸다.

 



어떻게 제목을 뽑을 것인가, 편집기자의 고충

 

특히 오보는 치명적이다. 『23시 30분 1면이 바뀐다』엔 김정은의 전격 訪中을 놓고 그게 정말 김정은이 오는 건지, 동생인 김여정이 오는 것인지를 두고 고심했다. 해외 통신사들에서도 헷갈려 하는 사안이기에 <조선일보>는 우회 전략을 취한다. 북한의 고위급 인사가 중국에 가는 정도로 제목을 단 것이다. 나중에 드러난 사실은 정말로 김정은이 중국에 갔다. 오보를 내는 것보단 조심스럽더라도 현 상황까지 취합된 팩트에 충실하는 게 더 낫다는 것이다. 주영훈 편집기자는 “오보의 공포는 언론사의 영향력과 비례한다”고 강조했다.

 

오보뿐만 아니라 상처를 주는 제목 역시 뼈저리게 아프다. 주영훈 편집기자는 경찰이 ‘사살됐다’고 표현해 지면으로 사과를 해야 했던 경험, 한국경제를 ‘암’으로 표현한 인터뷰이 말을 인용해 제목을 달면서 암환자들에 상처를 준 경험 등을 반성했다. 독자센터엔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고 한다. 신문에 적는 단어 하나, 표현 하나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쳐야 하는 것이다.

 

무거운 얘기도 있지만, 조금은 흥미로운 얘기도 있다. 주영훈 편집기자에 따르면, 좋은 기사의 제목은 ‘팩트·맥락 반반, 현장감 많이’ 담긴 것이다. 그는 “신문의 제목에서 기사에 있고 없고는 낮은 차원의 문제”라고 설명했다. 기사 자체엔 없지만 사진이나 맥락 등 추가 정보를 통해 좋은 제목을 뽑아야 독자들이 밋밋하게 신문을 읽지 않는다는 조언이다.

 

특히 편집부에서 편집부장이 내건 상금을 받아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다고 한다. 정말 재미없는 국방부 관련 기사를 다음과 같이 제목을 달았다고 한다. 군인들의 식단을 조절하고 개선한다는 보도자료에 대해 주영훈 편집기자는 “軍살 빼고 軍침 돌게”라고 제목을 달아 상금을 거머쥐었다고 한다. 지금도 내일 자 신문을 위해 많은 기자들이 밤을 서성거리고 있다. 그들의 노고만큼이나 이 세상은 더욱 박진감 넘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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