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살다 - 이생진 구순 특별 서문집
이생진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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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한테 “너도 미쳐라”라는 말을 듣고 싶다

[리뷰] 『시와 살다 (이생진 구순 특별 서문집)』(작가정신, 2018. 11.20)

 

고양이를 가만히 보자니 시인과 닮았다. 고양이는 어미 품을 떠나고부터 평생을 고독하게 살아간다. 망중하게 앉아 먼 곳을 바라보거나 눈을 감으며 일광욕을 즐기는 시간이 생의 대부분이다. 인간은 행여 심심할까봐 온갖 장난감을 눈앞에 대보지만 몇 분안가 흥미를 보이던 고양이는 고독 속으로 떠나버린다. 『시와 살다』의 시인 이생진은 섬 시인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알고 보면 ‘고독하려는’ 시인이다. 고독한 시인이 되고 싶어 지금도 고뇌하는 시인. 그건 이생진 시인의 생애를 통해 엿볼 수 있다.

 

시집만 38권. 산문집과 편저가 5권. 사진작가 혹은 화가와의 공저가 5권. 모두 48권을 펴낸 이생진 시인은 그의 모든 삶을 책에 적어 놓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매 순간의 감정과 생각 그리고 잃어버린 기억이 담긴 책은 그의 자서전이 되었다. 나이 아흔에 가까운 시간동안 쉴 새 없이 시간과 함께 달렸다. 그 중 최근작인『시와 살다』는 그가 쓴 모든 책의 서문과 후기가 짤막하게 소개된 모음집이라 할 수 있다.

 


삶에 대한 철학이 담긴 시집들

 

시인은 아버지로부터 시집을 선물 받고 성인이 된 어느 날 시집의 내용을 이해하게 됐다. 그리고 시인이 되었다. 시인은 살아가며 깨우친 삶의 철학을 책 한 권마다 담았다. 시인은 두 번째 시집을 쓸 적에 약혼을 했다. 희한하게도 이후 자신의 결혼 생활에 대해서는 시집에 언급을 거의 하지 않았다. 언급한 내용은 주로 ‘시란 무엇인가.’와 ‘고독 하는 법’이었다. 세 번째 시집 때인 1957년 11월 말 시인은 불안해보였다. 그리고 첫 번째 편저를 쓸 때인 1962년 12월 시인은 예술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렇게 물었다. “그래도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아야 하느냐”고, 더욱이 “인생은 자살이라도 해서 예술을 키워야 하느냐”고, 결코 그런 것이 아니라 했다. 천재의 생애는 거북처럼 길어야 하고 건강은 동백 잎처럼 겨울에도 윤이 있으라 했다…….’

 

두 번째 편저를 쓸 때인 1963년 11월 시인은 죽음에 대해 고민한 흔적을 남겼다. 일곱 번째 시집을 쓸 때인 1975년 2월 시인은 시 쓰기에 환멸을 느꼈던 듯하다. 열세 번째 시집에서 시인은 풀벌레로부터 시를 배우며 다시금 시를 적극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자유로워야 하는 예술가에 대한 철학이 담겼으며 특히 자신을 벌레 출신이라 비유하다가도 고독에 대한 본능이 오염되는 것을 아쉬워했다.

 

열여덟 번째 시집을 쓰던 1995년 시인은 호주 바다, 대마도, 사쿠라지마, 사해, 제주도, 거문도, 우도, 백령도 등 거의 모든 섬과 해안을 떠돌았다. 열아홉 번째 시집에서 시인은 다시 한 번 시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을 한다. 시를 알기 위해 시끄러운 소리를 질색하면서 피해 다녔다. 또 시인은 이 시기 많이 울었던 것 같다.

 

‘눈물을 감당하기 어려워 코까지 거들어주던 슬픔……. 웃음은 표정의 끝이요 울음은 표정의 시작이다. 울고 싶거든 실컷 울어라.’ 그러던 1999년 시인은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고 싶고, 누군가 자신의 집을 방문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으로 시를 엮는다. 스물여섯 번째 시집을 낼 때인 2003년 6월 시인은 고독에 대한 철학을 깨우치기 시작한다.

 

고독한 화가 고흐의 발자취를 따라서

 

‘고독이 얼마나 많은 시를 불러오는지, 외딴섬을 혼자 걸어본 사람이면 알 거다……. 나는 섬에 발붙이며 고독을 알았고 고독을 알면서 시를 시작했다.’

 

스물일곱 번째 시집에서 시인은 떠남의 철학을 깨우치고, 스물여덟 번째 시집에서는 도시와 섬을 오가며 변해가는 세상의 모습을 담았다. 특히 사람이 그리워 인사동에 시 읽는 공간을 마련했다는 부분은 오래도록 고독 속에서 시를 쓰던 시인이 왜 일흔을 넘겨서야 사람이 그리워 사람의 공간으로 나왔는지에 대한 독특한 인상을 준다. 하지만 도시를 떠돌다가도 시인은 마음이 허전해지면 다시금 섬으로 떠나가곤 했다.

 

서른 번째 시집에서 시인은 빈센트 반 고흐를 기렸다. 당시 시인의 나이는 여든에 가까웠지만 여전히 삶에 회의적이었다. 젊은 날 그랬던 것처럼 열정이 샘솟던 순간 시인은 누군가의 삶에 흠뻑 젖고 싶었는데 그것이 바로 고흐라고 했다. 시인이 생각한 고흐는 울고 싶을 때 울고 떠나고 싶을 때 떠나는 예술가다. 또 책을 읽으며 그림을 그리고, 편지를 쓰며 그림을 그리고, 술을 마시며 그림을 그렸으며, 걸어 다니면서도 그림을 그린 고독한 화가였다. 예술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시인은 고흐로부터 ‘너도 미쳐라.’는 말을 듣고 싶다고 적었다.

 

서른여덟 번째 시집은 2018년 11월 20일로 비교적 최근에 발행됐다. 시인 나이 거의 아흔이 되었을 때다. 시인은 살아서 행복하다는 것과 살아서 고맙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 철이 드는 것을 느낀다고 책에 적었다.

 

고독을 승화해 예술을 만드는 이들


사람들은 “호박꽃도 꽃이냐.”며 비웃는다. 그러나 이생진 시인은 이 꽃으로부터 시를 알고 시인이 되었다. 시인은 다시 태어나도 시를 쓰고 싶다고 했다. 모두가 자신을 외면할 적에 시만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인은 고독을 일부러 찾아 섬을 떠돌았다. 아마 천 개는 넘게 찾아다녔을 것이다. 시인의 작품『먼 섬에 가고 싶다』서문에는 이런 글이 나온다. ‘먼 섬 마라도는 가본 사람만이 다시 가고 싶은 섬이다. 외로움에 익숙한 사람에게도 한없이 편한 섬이지만 하루를 못 참고 돌아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먼 훗날 추억의 일번지로 꼽게 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시인 말대로 고독은 삶에 중요한 면이다. 서로를 싫어하는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있다. 이들은 토닥이는 와중에도 서로를 떠나지 않고 함께 살아가고 있다. 앞으로도 떠날 생각은 없어 보인다. 왜냐하면 홀로가 될 고독과 외로움이 다툼과 미움보다 더 두려워서다. 그만큼 고독은 인간사에 아이러니를 남기기도 한다.

나는 ‘고독’하면 부산이 떠오른다. 교수 발표를 보러 전날 밤 미리 도착해 아무도 없는 학교 기숙사에서 숙박을 했었다. 추웠고 대학가였지만 사람이 없어 가게들은 장사를 하지 않아 컴컴했다. 배가 고파 근처를 돌다가 허름한 치킨 집 하나를 겨우 찾았다. 내부 천장이 거의 내 키 높이로 낮았다. 테이블은 두 개 놓여 있었다. 그런데 치킨은 너무도 맛있었다. 아마 허전했던 마음에 따스함이 채워져 강렬한 기억이 되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직장인들이 화려한 레스토랑이 아닌 포장마차의 어묵국물로 마음에 위로를 받는 느낌을 알 것 같았다.

아직도 부산하면 스산했던 겨울밤과 치킨집이 생각난다. 자갈치 시장도 서면도 해운대도 아닌 스산했던 대학로의 골목이 기억 속에 강하다. 호수 가장자리에 낙엽이 축축하게 젖은 땅을 밟다가 벤치에 앉았을 때 느껴지는 그러한 고독들은 외로움이 아니다. 삶에는 행복 가운데서도 눈물 나는 상황이 곳곳에 블랙홀처럼 내재해 있다. 불과 1분 전에 행복으로 가슴이 부풀었다가도 몇 발자국 안가 심한 고독을 느끼는 사람도 있다.

예술가란 이러한 감정을 고독 속에서 익히는 자들이다. 감정의 저변을 훑는 일은 누구라도 할 수 있지만 웬만해선 그런 고통스런 모험을 하지 않으려 한다. 감정을 지배하기란 힘들기 때문이다. 감정을 잘못 건드려 자칫 어떤 것으로도 승화시키지 못할 경우 잘못된 방향으로 폭발할 수가 있다. 예술가는 감정 조절하는 법을 터득해 더 깊은 내면으로 파고드는 이들이다. 그리고 승화시킨 작품들을 사람들에게 보여 간접적으로 세상을 느끼게 한다. 특히 시인은 그러한 감정을 함축한 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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