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의 아들
허성수 지음 / 렛츠북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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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념이 빚어낸 ‘적의 아들’, 화해하고 용서하다

[리뷰] 『적의 아들』(허성수 단편소설집)(렛츠북, 2018.11.01)

 

‘기독교 세계관을 접목한 소설’이라는 독특한 지평을 연 작가의 작품이다. 각 단편들은 모두 교회와 신앙에 대한 이야기를 핵심으로 삼고 있다. 어떻게 하느님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만났는지, 어떤 난관과 극복의 과정을 겪었는지, 또한 한국교회에는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 등을 소설의 형식을 빌려 풀어내고 있다.

 

책의 제목인 ‘적의 아들’은 6·25 한국전쟁 시절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서로 총부리를 겨눴던 사건을 다룬다. 이 단편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문장은 “현 목사는 현대 교회의 세속화와 물량주의를 개탄하며 성경에 근거한 진정한 개혁주의 교회로 거듭나야 할 것을 강조”했다는 부분이다. 저자는 신앙심이 깊은 듯한데, 한국교회의 문제점 역시 직접적으로 드러냈다. 기자로 활동하는 저자는 문장력이 탄탄하다.

 

‘적의 아들’은 현명철 목사를 찾아오는 지동학이라는 탈북자와의 사연을 소개한다. 신학교의 교수인 현명철은 한국전쟁 때 가까스로 살아남았다. 친구인 지상규의 강압과 강권에도 불구하고, 남한에 남아 신학을 공부하며 하느님을 만난 것이다. 지상규의 아들인 지동학은 북한에서 힘들게 생활하며 종교의 탄압 등 독재의 민낯을 목도했다. 그래서 중국을 거쳐 남한으로 넘어온 것이다. 그 가운데 교회의 도움을 받았고, 남한에서는 교인이 되었다.

 

지상규는 남로당 활동을 하며 우익분자들을 소탕하는 일을 했다. 친구인 현명철한테도 북한으로 넘어가자고 제안하며 팔까지 못쓰게 만들었다. 현명철은 팔이 부러져 군대를 면제 받고 신학에 전념할 수 있었다. 만약 소설이 여기까지만 전개되었다면 밋밋했을 것이다. 그런데 현명철 목사의 부고를 듣고 장례식에 찾아간 지상규라는 적의 아들, 지동학은 현명철 목사의 장조카인 현주성 장로를 만나 충격적인 얘기를 듣는다. 현주성 장로의 아버지는 우익단체에서 활동하며, 지동학의 할아버지와 할머니, 큰아버지 등을 탄압하고 죽음에 이르게 한 일에 동조하고 가담한 것이다. 현주성의 아버지는 나중에 하느님께 회개하고 용서를 구했다. 적의 아들이었던 지동학은 끔찍한 가족사를 알게 된 것이다. 용서는 서로를 향했다.

 


적의 아들, 용서하고 용서를 받다

 

흥미로운 단편들이 여럿 있는데, 그 중 첫사랑을 떠올리게 하는 ‘놓친 열차를 위하여’는 향수를 불러온다. 가난하지만 꿈 많던 시절, 특히 글을 쓰고 싶은 열망에 쌓여 있던 대학생 때를 회고하는 듯한 이 단편은 아마도 저자의 젊은 시절이 투영된 것 같다. 교회 여름성경학교에서 만난 첫사랑은 어느 순간 파도처럼 밀려갔다. 왜 그런지는 정말 알 길이 없다. 가난한 현재 때문인지, 못난 스스로를 자학하는 주인공은 나중에 선교사로 떠나는 첫사랑을 위해 소설을 써서 보내기로 한다.

 

‘옛날 코스모스 동산에’는 주인공이 시각장애인이자 한 팔이 없는 소년을 맹아학교에서 만난 일로 시작한다. 대학생 시절 봉사활동을 하러 갔다가 만난 소년은 기댈 곳이 없어 주인공을 누나처럼 따르고자 한다. 하지만 정작 주인공은 현실적인 고민들을 하다가 결국 소년을 떠난다.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보살핌이 될 자신이 없었던 주인공은 죄스런 마음이 항상 남아 있었다. 소년이 어디서 빌어먹으며 살지 걱정했던 것이다. 그런데 30년이 지나 그 소년에게서 전화가 왔다. 한 교회에서 강연을 하니 찾아와 달라는 것이었다. 꺼림칙했지만 강연을 들은 주인공은 쏟아지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소년은 한 팔로 피아노를 치며 주님을 만난 의지로 전 세계에서 주목을 받는 인물이 돼 있었다. 치졸했던 주인공은 참회하기 시작한다.

  

‘대충교회 교인들’은 클 大, 충성할 忠 교회에서 집요한 전도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교회 생활을 한다. 주인공 역시 대충교회 교인들 중 한 명이었는데, 아내는 매우 보수적인 천국시민교회의 열성적인 신자였다.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 주말마다 각자 교회를 찾아가는 부부는 어떤 집사 부부가 천국시민교회를 소개해달라는 부탁으로 만나게 된다. 아마도 주인공인 남편은 다시 보수적인 교회로 돌아가게 될 것 같다.

  

‘소녀와 신약성경’은 기독교와 무속의 갈등과 화합을 얘기한다. 한 지역에서 성장해나간 주인공은 아버지인 목사를 따라 기독교를 믿는다. 하지만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들과 아버지의 죽음 때문에 신앙심을 잃고 의대에 진학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한다. 초등학교 시절, 무속인의 양딸에게 성경을 선물했던 인연은 대학에서 우연한 만남으로 이어진다.

 

이 외에도 『적의 아들』엔 여러 단편들이 기독교와 교회, 하느님과 신앙이라는 주제로 펼쳐진다. 소설의 내용은 단편이라는 한계 때문인지 결말이 흐릿하다. 이 지점이 아쉽긴 하지만 탄탄한 문장력과 기독교의 문화와 세계를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소설이 분명하다. 이승우 작가처럼 철학과 종교라는 관점에서 진지하게 접근한 게 아니라 좀 더 현실적인 측면에서 다가간 기독교를 소설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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