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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론 세이브
이진서 지음 / 피톤치드 / 2018년 10월
평점 :
‘인중 끊어진 여자’ 어떻게 성공했나
[리뷰] 『블론 세이브』(이진서 저, 피톤치드, 2018.10.22)
읽다보면 자조적이고 냉소적이고 회의적인 주인공들과 만나게 되는 소설『블론 세이브』(이진서 저, 피톤치드, 2018.10.22). 이 소설집은 총 8개의 단편 소설이 한데 모아져 있다. 저자는 2014년부터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했고, 소설 속 이야기는 자신이 살아온 삶 자체로 유(有)에서 구성된 소재가 사용되었다고 한다. 그 때문인지 묘사가 직접 겪은 일 마냥 생생하고 또 현실감이 있다. 한편으로 저자의 삶이 정말 소설처럼 다채로웠고 안쓰러운 순간도 있었다는 기분에 안타깝기도 했다.
첫 번째 단편 소설은『두 개의 이름』이다.
“‘살인 정권 전두환은 물러가라.’라고 붉은 글씨로 적힌 살벌한 플래카드가 눈에 선했다.”
위와 같은 문장이 적힌 것을 보자 하니 민주화 운동이 한창이던 시절이 배경인 듯하다. 그 시절을 겪어온 모든 중장년층은 책의 내용이 수긍이 가겠지만 젊은 층은 아리송할 수 있다. 왜냐하면 다음 문장 때문이다.
“학교에서 매일 맞는 것도 싫은데 대학에 가서도 또 군대에 가서도 폭력에 맞서야 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그들에게 잡혀가면 전두환 대통령이 운영하는 ‘삼청교육대’라고 부르는 다른 대학에 잡혀가서 죽도록 맞고 반병신이 되어 돌아온다고 했다.”

시대를 가로지르는 이야기
지금은 체벌이 금지된 시대지만 이때만 해도 체벌이란 당연하다고 여기던 시대였다. 저자는 그런 시대를 학생의 눈으로 묘사하며 점차 자신이 사는 학교 지도자와 사회 지도자가 별반 다르지 않음을 느끼게 구성했다. 그래서 소설『두 개의 이름』은 하나의 개체에 붙은 서로 다른 이름으로, 결국 자신이 어느 무리에 속하건 똑같이 엄격하고 무서운 지도자를 만나게 된다는 좀 더 철학적인 주제를 담고 있다.
『인중 끊어진 여자』라는 소설도 재미있다. 한 남자가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여자 복 지지리도 없는 놈’이라는 말을 들으며 성장한다. 남자는 성인이 되어 결혼 상대자 세 명을 만나고 하나하나 단점과 장점을 비교해 마지막 한 명을 남긴다. 그런데 그 여자는 인중이 코까지 이어지지 않았고 끊어져 있었다. 남자는 어릴 때부터 그런 특징의 여자는 임신을 하지 못한다는 말을 들어왔기에, 출산이 목적이기에 남자는 여자를 두고 시험을 한다. 몇 달간 관계를 맺지만 진짜로 임신이 되지 않았다. 결국 남자는 여자를 버린다.
그런데 여자는 남자와 헤어지고 점점 잘 나가더니 텔레비전까지 출현해 사업가와 결혼을 한다. 그리고 임신을 한다. 남자는 임신 문제가 자신에게 있음을 깨닫는다. 이 소설은 반전적 결말에 재미가 있다. 역술가와 특정 미신적 말에 갇혀서 세상을 보는 사람을 질타하는 주제를 품는다. 우리가 흔히 보고 듣는 언론을 통해서도 우리는 사실과 거짓이 결정된 상태로 살아간다. 오늘날 ‘가짜 뉴스’ 사건이 떠오르는 단편 소설이다.
또 다른 재미있었던 소설은『다음 생(生을) 기다리며』이다. 한 남자가 로또 1등에 당첨되었는데 안타깝게도 사고를 당해 죽게 된다. 남자는 자신의 영혼이 하늘로 날아가 강아지로 다시 태어나는 모습을 모두 지켜본다. 남자는 당첨된 로또 종이가 끼워진 책을 가족들에게 알리고 싶지만 그럴 수 없다. 소설은 그런 남자의 애타는 모습을 남자가 죽어가는 와중에도 포기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풍자했다.
작가의 삶이 재미있게 재구성된 이야기들
작가의 소설은 기법과 구성이 독특하고 문체는 담담한 편이다. 재미는 있지만 다만 잔잔한 감동은 밀려오지 않는다. 심심풀이로 읽을 만한 이야기들이고 담긴 교훈조차 며칠이 지나 머릿속에서 사라진다. 어떤 문장은 설명이 길다.
“화면 속 여자들은 그 백인 남자의 ‘바나나’를 서로 차지하겠다고 자기네들끼리 으르렁거렸다. 그것을 서로 물고 빨고, 아주 난리가 났다. 침대에 등을 대고 누워 있는 남자의 얼굴은 흑인 여자의 커다란 엉덩이에 가려 전혀 보이지 않았다. 아, 부럽다.“ 는 모든 상황을 묘사로 설명해준다. 그러나 비유는 많지 않다. 또한 저자들이 추측해 읽을 만한 재미를 제공하지 않는다.
“나는 곧바로 모니터 전원도 꺼버렸다. ‘아, 이제 시작인데.’ 아쉬움에 나는 침을 꼴깍 삼켰다. 이미 어엿한 성인이지만, 포르노를 떳떳하게 보지 못하는 우리나라 유교적 사고방식을 나는 많이 개탄했다.”
문장을 보자면 불필요한 설명이 문장 꼬리에 달려 있는데, 소설 내용이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 설명이었다.
책은 끝까지 읽고 느낀 점은 저자는 야구, 낚시를 매우 좋아하는 듯하다. 이들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또한 저자는 집에서 혼자 컴퓨터나 텔레비전 영상을 시청하는 것도 좋아하는 듯하다. 주인공들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작가 자신이 좋아하는 일상의 모습이 소설에 그대로 담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역동적인 배경이 없는 점은 아쉽다.
인물도 8개의 단편 소설 모두에서 개성이 뚜렷하지 않고 한 인물이 서로 다른 이야기에 나온 듯한 기분이 든다. 그나마 이야기들이 매우 재미있어 다음 소설집이 있으면 구매해 볼 의향은 있다. 소설들은 중년 특히 남성들의 향수를 불러일으킬만한 소재들이 많다. 현재에 지친 이들이 과거로부터의 삶을 다시금 느껴보고 싶다면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