낚 ; 詩 - 물속에서 건진 말들
이병철 지음 / 북레시피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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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난 여자와 낚시와 詩와 자기 수련

[리뷰] 『낚 ; 詩』(이병철, 북레시피, 2018.08)

 

“자연의 일생이 오기에, 낚시는 단순히 물고기를 잡기만 하는 행위가 아니라 물고기라는 한 방문객과의 교감이다.” 『낚 ; 詩』(이병철, 북레시피, 2018.)에서 작가는 그의 생애와 자연 전체와의 교감을 멋진 에세이로 완성했다. 얼핏 책 제목을 보자면 ‘낚시’에 관한 이야기인지 ‘시’에 대한 이야기인지 분간이 안 된다. 내용조차 잔잔한 산문시라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온갖 화려한 어휘들로 가득하다. 책을 모두 읽고 느낀 점은 작가가 ‘시를 제대로 낚았다.’는 점이다.

 

책은 크게 ‘1부 낚시 사랑을 놓치다.’와 ‘2부 하늘과 바람과 별과 낚시’로 나뉜다. 1부에서는 한때 사랑하던 여인이 떠난 순간을 낚시와 비교해 설명했고, 2부는 낚시를 배운 계기와 기억에 남은 사람들, 그리고 희열을 느낀 인생 순간들이 묘사된다. 84년생인 작가는 35살로서 그 중 거의 25년을 낚시를 하며 인생을 보냈다. 그만큼 이 책은 작가의 자선이라 할 수도 있을 정도다. 그리고 책을 읽는 독자는 은연중에 작가의 모든 삶을 체험할 수 있을 것이리라.

 

한때 ‘미생’이라는 만화가 인기였다. 바둑의 세계와 직장인의 삶을 수긍가게 만든 훌륭한 이야기였다. 비슷한 느낌이 책 『낚 ; 詩』를 읽는 동안 다가왔다. 작가는 삶을 낚시와 대비시켜 설명했다. 조금 아쉬운 건 미생만큼 삶의 그림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점이지만, 조금 손본다면 나아질 것이었다. 작가에 의하면 낚시는 그저 순간에의 집중이다. 강바닥과 바다 속 지형을 상상하고, 물고기의 생각을 읽는 행위로, 낚시할 때는 세상에 오직 물과 자신만을 생각한다. 걱정도 없고 고뇌도 없는 낚시라는 세상이지만, 이곳을 벗어난 삶은 작가에게 전쟁터나 마찬가지다.

 


‘그 여자’에 대한 그리움과 후회로 가득한 1부

 

“어린 물고기들까지 꿰미에 꿰고는 바나나다발처럼 들고 자랑하는 꼴을 보면 몹시 쓸쓸하다……. 잔인한 짓이다. 내가 그랬다. 물고기에게는 관대하면서 당신에게는……. 사랑에도 캐치 앤 릴리즈가 필요하다.” 떠나버린 여인을 생각하며 작가가 쓴 한 문장이다. 문장만 따로 놓고 보면 슬픈 세레나데가 따로 없다. 그러나 낚시 이야기에 한창 빠져있던 독자라면 갑자기 여자 이야기로 전환되는 전개가 매우 어색할 것이다. 심지어 여자 이야기로 빠졌던 문장은 다시 낚시 이야기로 돌아오지 않고 끝나버린다. 이러한 단편의 글들이 수십 개다.

 

무엇보다 그 여자에 대한 간단한 비유가 아닌 완전히 벗어나 버린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떠난 여자’와 작가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조차 어렴풋이 추축하게 만들 정도다. 앞부분에 대비시킨 낚시 이야기로 ‘아 그 여자랑 그런 일이 있었나 보다’하고 상상할 수 있을 뿐. 여자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주어지지 않은 상황이기에 더욱 그랬다. 작가로서는 독자들에게 교훈을 주려는 의도는 아니겠지만 조금 낮선 기법이다.

 

예를 들어 “미늘이 박혀 바늘 빼는 데 시간이 걸리면 스트레스에 취약한 송어가 죽어버리기 때문이다. 그만큼 미늘은 강력한 무기이자 양날의 검이다. 이미 당신의 손은 나를 놓아버렸지만 당신이라는 바늘은 내게 단단히 박혀 빠지지 않는다.”처럼 산문시로 흘러가다가 흐름이 딴판이 된다. 작가와 여자와의 구체적 사정을 모르는 독자들은 그림자 같은 여자를 머리에 그리며 감정을 대비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한편으로 작가는 ‘떠난 여자’와의 그리움이 사무쳐 낚시를 꾸준히 하고 있는 듯하다. 지난 시간을 후회하고 떠올리며 반성하는 일기 모음집처럼. 대비와 비유 등 온갖 수식으로 낚시라는 삶의 현장과 떠난 그녀와의 삶을 묶는다. 그렇게 엮는다. “당신이 곧 내 세상이던 시절”을 기리며, 슬프고, 그립고, 좋은 세상이 사라졌음을 낚시로 위로 받고 자기 수련을 하는 식이다.

 

삶을 내려놓고 바라보아야 할 2부

 

2부에 들어서 작가는 자신의 감정을 조금 더 강렬히 내비췄다. 기쁨과 그리움이 강렬했고 친지와 가족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가족’은 그 존재 자체만으로 절제하던 마음을 풀어헤치는 존재가 아닌가. 인상 깊은 장면은 붕어찜에 대한 행복한 추억이었다. “무려 50cm 대형 쏘가리를 낚아냈다. 등단한 것보다 군대 전역보다 더 기뻤다……. 그 뒤로 한 며칠은 혼자 화장실 다녀오다가도 허공에 어퍼컷 세리머니를 했다.”는 부분과 노르웨이 여행 중 70cm 짜리 황금빛 대구를 잡은 장면에서 작가의 희열이 책을 뚫고 나올 정도였다.

 

화려한 묘사가 가득했고, 낚시 방법 뿐 아니라 낚시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대변하는 묘사도 가득했다. “흘림낚시의 묘미는 물살 흐름에 따라 일정한 속도로 방출되던 낚싯줄이 물고기가 입질하는 순간 급격히 빠르게 풀려나가는 데 있다.”는 이 부분은 독자 역시 낚싯줄이 빠르게 풀리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처럼 문장이 급박하며 상황에 맞다. 무엇보다 객관적 설명묘사보다 주관적 묘사가 많았고, 1부 보다 감정들이 생생하여 작가와 낚시를 간접 체험하며 이야기 듣는 듯 기행의 순간을 느끼게 한다.

 

낚시, 작가를 키운 그리움의 손짓

 

작가는 우연히 글을 쓰게 된 낚시 전문 작가가 아닌 시인이다. 직업이 낚시꾼이 아닌 진짜 ‘작가’란 말이다. 작가로서의 심정은 책 군데군데 묘사되어 있었는데, 재미있게도 글을 쓰는 일보다 낚시를 위해 글을 쓰고 있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원고 마감에 쫓길 때는 낚시가 마감의 동력이 된다…….”, “시는 쓰려고 하면 안 써지고 불안과 강박을 잠시 밀고, 원두를 갈아 커피를 내리고, 창문을 열어 빗소리 들을 때 온다……. 낚시도 계속 붙잡는다고 찌가 오르지 않는다.”며 항상 낚시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특히 “낚시와 글 쓰는 일은 서로 닮아 있다. 낚싯줄의 긴장을 온몸으로 느낀다. 팽팽한 낚싯줄과, 찰나의 입질을 포착하는 행위……. 글은 자기 영혼을 갉아먹어 문장을 살찌우는 사람들이다. 자기 상처와 은밀한 내면을 미끼로 흔들어, 심연에서 헤엄치는 단 한 줄의 문장을 낚는다……. 둘 다 고도의 긴장 상태를 오래 유지해야 한다.”는 부분은 왜 작가가 글쓰기와 낚시를 함께 하게 되었는지 알게 한다. 둘 다 비슷하면서도 힘든 일이지만 하나는 삶을 긴장시키는 일이고 나머지는 삶의 긴장을 푸는 일인 것이다.

 

작가는 아홉 살 때 낚싯대를 처음 잡았다. 아버지에게서 처음 배운 낚시는 그간 동네 골목서 친구들과 하던 술래잡기, 연날리기, 팽이치기 따위보다 훨씬 즐거웠다. 자가용이 생기고 작가는 더 부지런히 낚시를 다녔다. 그리고 온갖 낚시터를 헤매고 물고기를 잡아본 뒤, 처음 입문했던 붕어 낚시로 돌아왔다. 맛있게 붕어찜을 만들어주시던 어머니와 가족의 정을 포함해, 낚시를 처음 했을 때의 즐겁고 경이롭던 순수함들이 작가에게는 붕어낚시에 담겨있었다. “대부분 낚시꾼들이 비슷한 풍경으로 마음속에 간직한 어린 시절 추억 등 때 묻지 않은 초심을 향한 그리움이 결국 처음 낚시를 배운 물가 쪽으로 등을 떠민다.” 마치 어른이 되어서도 VR 게임 대신 동전 오락기를 즐겨 찾는 남자들과 비슷했다.

 

작가는 낚시야말로 자신의 어린 시절을 키운 팔 할이라고 강조했다. 낚시가 스승이고 학교며 책인 것이다. 『낚 ; 詩』는 다양한 얼굴을 지닌 책이다. 에세이고 개발서이고 시집이고, 낚시 입문서이고, 일기이자 자서전이고 기행문이다. 책을 덮고 끝부분에 작가가 쓴 글이 기억에 남는다. “한 번의 성공을 위해 아흔아홉 법 실패를 견디는 불가해한 노력이라는 점에서 낚시는 인생과 무척 닮아 있다.” 작가는 아무래도 지금, 또 한 번의 기분 좋은 실패를 위해 낚시터에 가있으리라. 인생을 배우고, 지난날을 되새기고, 어른이 되어가는 한 소년의 성장 스토리를 보고 싶다면, 다가오는 가을에 어울리는 책 『낚 ; 詩』를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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