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과 사랑의 대화
김형석 지음 / 김영사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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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들 그렇지 않겠냐마는, 어느새인가부터어른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 않고 있었다. 나이 든 이들은 이미 우리와 다른 세대에서 청년 시절을 보냈고, 이 시대 나는 내가 벌이할 일조차 제대로 못 찾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명문이니 격언이니 하는 것들은 내 귓바퀴에 부딪혀 떨어질 뿐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오래가는 행복이란 많지 않았다. 바로 앞만 내다보는 삶, 도피하듯 휴학을 하고, 매번 짧은 오락거리들만을 급하게 삼켜내고, 눈 앞의 지루함만을 해소하기 일쑤였다. 베짱이처럼 사는 것이 이 삶의 최고 미덕이라 믿었다.

 

   그런 즉각적인 삶의 반복이 나라고 달가운 건 아니다. 순간의 즐거움은 허무함으로 바뀌고 결국에는 무엇을 하며 살지 모르는 외로운 나만이 남아있다. 지금 나에게는 내가 오랫동안 지키고 싶은 가치가 무엇인지 판단하는 것이 중요했다. 외면했지만 곧 다가올 여정이 아직 많기 때문이다.

영원과 사랑의 대화

 

 

   인간과 삶, 영원과 사랑에 관한 21편의 수필로 된 책이다. 1960년대에 초판이 나오고 재출간 되었다. 젊은 이들에 대한 권고, 청년기,장년기,노년기를 어떤 마음가짐으로 보내야 좋을지, 인간은 왜 영원을 쫓는 존재인지, 행복이란 무엇인지 인생이라는 산을 먼저 오른 어른이 지나간 여정에 대하여 말해준다.  

  산을 내려오는 어른이 나를 보고 어깨를 도닥이며 말하는 듯하다.고루하고, 관념적이고 당연한 말이다. 어쩌면 기본적인 것을 놓치고 살아가고 있기에 긴장이 풀려 무뎌진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은 그런 당연함이 필요했다. 인간으로 살고 있는 나는 어떤 근원적인 가치를 갈망하고 있기에 이렇게 괴로운가 알기 위해서 말이다.

   ​ 글 사이에 보리밭 풍경그림이 수록되어 있다. 드넓은 보리밭은 청량한 하늘 밑에서 푸르를 때도 있고 석양에 비쳐 노란빛을 띄기도 한다. (익은 보리일지도 모르지만) 바쁜 걸음으로 책을 읽는 중 잠시 머물게 되는 기쁜 순간이었다.

​부분 포착

그런데 이상한 것은 요사이도 상당히 많은 대학생들과 젊은이들이 내 어렸을 때의 장난을 되풀이하는 것 같다는 점이다.

 

 그들은 남들이 다 걷는 대학에의 길을 택하며, 누구나 가지는 4년의 세월을 학창생활로 보낸다. ... 그러는 사이에 지식의 조각들은 늘어가며, 나는 많은 것을 배우고 알게 되었다고 자부도한다. 계통도 체계도 없는 지식의 조각들을 넘칠 정도로 많이 갖는 청년들도 있다.

몇 해 뒤에는 졸업을 한다. 사회에 나가 여러 해를 보내는 동안에 약간씩 자신을 느끼며 반성해본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렇게 많이 배웠고 지식의 조각들을 주워넣었는데도 마침내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내 호주머니에 장난감이 남아 있지 않듯이 모든 것이 어디론가 없어지고 말았음을 느낀다. 역시, 문제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청년들이 이렇게 사는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자의적인 행동보다는 타의적으로, 사회의 기대에 발맞추어 가기 위함도 있다. 직업 우선에 '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직업 뒤에 '나'가 존재한다. 그러니 바쁘게 지식의 파편을 모으는데 결국에는 숫자놀음을 위한 것이기에 빨리 휘발될 뿐이다. 나는 여전히 이런 우리 세대에 대한 연민, 나 자신에 대한 연민이 마음에 떠 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문제를 가져야 하느냐 한다면, 나를 잃지 않기 위함일 것이다. 문제란, 곧 해결할 여지와 희망이 남아있다는 뜻이다.

  그문제라는 것이 굉장한 대의는 아닐지라도, 나라는 사람의 신념을 비추어 내던져진다면 사회가 청년을 한없이 내몰지라도,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이다.

  '화두를 던지다.'라는 말이 떠오른다. 일상에서 많이 쓰이지만 불교로부터 유래한 표현이다. ​진리 혹은 깨달음을 향해 던지는 물음을 말한다. 시간이 흐르며 나날이 발전된 대답을 내놓을 수 있는 화두가 나에게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젊은 날의 나는 과연 어떤 화두를 마음에 품고 살아갈 수 있을까.

그러나 이미 내가 주어진 뒤, 내 삶이 던져진 뒤에는 이 누구도 모르는 우연이 절대적인 필연성과 운명적인 결정성을 지니고 나에게 나타난다. 그리고 우리의 삶은 절대적인 것이 되며, 우리들의 생존성은 무엇보다도 고귀한 것으로 변한다. 정히 인간은 우연에서 절대, 무에서 유, 공허에서 실재를 얻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의 지극히 작은 정신은 이 세계가 소유하는 것보다도 더 깊은 문제를 간직하고 있다. 파스칼이 우주는 나를 생각할 수 없어도 나는 우주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우주보다도 위대하다고 한 말이 바로 그 뜻이다.

 

 

 우리의 삶은 그 삶 자체로 의미가 있다. 무의미를 의미로 바꾸는 작업은 그저 '영원'을 향한 갈망일지도 모르지만, 우리의 삶의 활력이 되는 작업이라고 여긴다.

 

  

잠시나마 먼 발치에서 삶을 바라보았다. 잊고있던 가치를 다시금 되뇌었고, 가끔은 삶을 한 폭의 풍경화를 그린다고 여겨보는 것도 꽤 괜찮겠구나 싶었다. 대학을 벗어난 후의 삶은 여전히 두렵다. 하지만 지금과 나중의 삶을 공허함으로만 여기지 않겠노라 생각한 것만으로도 기쁜 수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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