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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일 종족주의 - 대한민국 위기의 근원
이영훈 외 지음 / 미래사 / 2019년 7월
평점 :
1. 들어가며
역사는 고립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결코 독립적이지 않다. 비록 한 국가의 역사라 하더라도 주변국들과 복잡하고 다층적인 관계 속에서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시간의 축을 따라 진행한다.
역사에서 서로 무관해 보이는 사건들이 사실은 상호 연결되어 있다. 마치 복잡계이론처럼, 주변의 다양한 요인에 작용 하고, 복합되어 차츰 큰 영향력을 갖게 되고, 연쇄 반응으로 역사가 형성된다.
서구문명을 받아들여 메이지유신을 이룬 일본은 조선을 둘러싼 1894년 청일전쟁과 1904년 러일전쟁에서 모두 승리했다.
1905년 7월 미국으로부터 조선 지배권을 인정받는 카스라,태프트 밀약, 그 해 8월 영일동맹에서 조선보호권을 인정, 9월 포츠머스 조약에 따라 조선에서 러시아를 완전 배제했다.
마침내 1905년 11월 12일 일본 이토 히로부미가 高宗과 마주했다. 이때 이미 조선 운명은 결정됐다. 11월 17일 이완용과 하야시 곤노스케가 ‘을사조약’에 서명 날인했다. ‘을사조약‘은 조선이 망했음을 문서로 확인하는 절차일 뿐이었다. 결코 5敵 때문에 조선이 망한 것이 아니다.
조선은 전제정치 1인 통치 독재국가다. 亡國 주범은 주권자 고종이다. 고종은 王朝을 李氏家門 家業으로 간주했다.
고종은 왕조를 일본에 팔아넘겼고 그 一族은 일본 皇室 王公族 신분으로 편입 호의호식하였다. 그렇지만 2000만 백성은 망국노亡國奴 신세였다.
조선 망국의 막다른 골목, 아관파천한 길을 서울시가 ‘고종의 길’이라며 고종을 치켜세웠다.
‘5敵’ ‘고종의 길‘은 거짓 역사 상징이다. 대한민국은 ‘거짓말의 나라’다. 우리는 ‘거짓말 공화국’에 살고 있고, 국가가 조직적으로 거짓말을 한다. 거짓말로 국가가 운영되고 있다.
歷史가 多數에 의해 또는 북한 추종자들에 의해 거짓 조작되거나 왜곡 되고 있다. 역사학의 거짓말은 그럴듯한 학술로 포장되어 확대 재생산 되고 있다.
2. 일제 토지 수탈
일제 때 조선 토지 40%가 강제 수탈됐다는 학설은 거짓말이다. 일제 토지조사사업 27년 후 해방됐다. 토지조사사업이 강제수탈 수단이었다면 해방 후 당연히 반환 요청이 있어야 했다. 우리 조상은 토지를 사람의 命脈 즉 목숨 줄(土地人之命脈也)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반환 요구가 없었다. 신고할 줄 몰라서 그랬다고 한다. 그러나 거짓말이다. 조선은 매 3년마다 호적신고를 했다.
소설가 조정래 <아리랑>에 일개 일본 경찰이 조선농민을 처형하며 잔인한 방법으로 토지 수탈 장면이 있다.
일제의 조선 합병은 개인 토지 수탈 목적이 아니라 조선을 부속 영토로 영구 지배 목적 병합이었다. 조선 전체를 일본으로 완전 동화 시키려는 거대 프로젝트였다. 전국 토지가 얼마인지, 토지 형질이 어떠한지, 누구 소유인지를 조사했다. 이것이 토지조사사업이다. 현재도 사용되고 있는 地番과 주소는 1910~ 1918년 토지조사사업에서 만들어 진 것이다.
3. 민족주의가 아닌 종족주의
민족이란 말의 사용은 20세기 初 최남선에 의해서다. 캐나다 앙드레 슈미드가 쓴 책<제국 그 사이 한국 1895~1919>에서 그는 한국 민족 의미는 친족 확장 형태라고 했다. 그는 한국 민족과 친족 연결고리는 땅과 관련된 풍수지리에 있다 했다.
일제가 한국인 억압과 차별에 대하여 최남선이 백성에게 공동체의식을 고취하기 위해 ‘민족’이란 개념을 전파했다. 백두산을 영산화하고 天池라 한 것도 국민 의식 고양에서였다. 천지는 큰 연못이란 의미의 태일택(太一澤)였다. 우리 ‘민족‘ 의미에는 배타적 토속 샤머니즘이 배어있다.
서양 민족주의는 중세 보편주의를 넘어 문화에 기초했다. 자유인, 자유로운 개인의 새로운 공동체 의식이 서구 민족주의다. 한국 민족주의는 그 자체가 하나의 인격을 갖는 집단이요 권력이다. 그래서 민족주의라고 할 수 없다. 우리만이 갖는 種族주의라고 보는 게 맞다. 한국의 민족은 자유로운 개인의 자유를 근간으로 하는 공동체와 거리가 멀다.
서강대 최진석 교수는 “나누어 구분하면 구분된 것이 이데올로기化 하고 集團化하여 권력이 된다. 구성원은 그 권력의 지배를 받게 되고 마침내 그 권력에 구속당하게 된다.”고 했다.
한국의 민족은 일반 民庶와 분리된, 그 위에 군림하는 독재주의나 전체주의 권력으로서의 민족이다. 그것이 북한 세습왕조 체제 김일성 민족이다.
지금 남한 민족주의는 북한 김일성 민족주의와 상당한 연관이 있다. 백주 서울 한복판에서 북한 세습왕조체제가 백두혈통이라고 공공연히 칭송하고 다닌다.
한국 민족주의는 種族주의 神學이 만들어낸 전체주의 권위이자 집단 광기의 폭력이다. 이 종족주의는 배타적이고 폐쇄적이며 적대적이다. 한국민족주의는 本質的으로 反日 種族주의다.
4. 위안부
1991년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발생하였다. 그 후 지금까지 이 문제로 한국과 일본과의 관계가 악화 길을 걷고 있다.
조정래 소설 <아리랑>, 어느 면장이 한 농민을 불러 놓고 "어쩔 수 없이 자네 딸을 위안부로 징발하네"라고 통보한다. 일본을 强暴한 종족으로, 한국인은 저항할 줄도 모르는 무한히 나약하고 비열한 존재로 묘사했다.
1996년 위안부 문옥주 씨가 사망했다. 일부에서 그녀를 민족 성녀로 추모한다. 그러나 그녀는 단지 자신과 주변에 충실한 여성이었을 뿐이다. ‘성녀’는 또 하나의 거짓 포장이다.
그녀가 죽기 전 동료위안부였던 모리카와 미치코에게 "나는 그냥 열심히 위안부 생활을 했어, (중략) 나는 군인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이 싫지 않았어, 야마다 이치로는 좋은 사람이었어, 그만이 아니야 좋은 사람이 많이 있었어," 라고 했다.
그녀는 일본을 저주하지 않았다. 반일 운동가들의 적대감정과는 거리가 먼 정신세계였다.
해방 전 식민지 조선에선 여성 인신매매가 횡행했다. 가난으로 자기 딸을 팔아먹거나 남편이 자기 처를 팔기도 했다. 이건 범죄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자발적으로 위안부가 됐다는 것은 아니다. 前借金을 받은 부모 친척 결정에 따라 숙명처럼 모집업자를 따라가거나 오갈 데 없어서 업자를 따라간 경우가 대부분이다.
싱가포르 위안소 관리인였던 박치근 일기에 따르면 위안부는 성 노예라기보다는 성 노동자가 맞다.
2차 세계대전 독일이 패했을 때 수십만 명 독일 여성이 소련군에게 강간당했다. 그러나 독일은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전범국가라는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노무현 정권 때 위원장 이해찬 위원 문재인 등 위안부 문제 민간공동의원회가 발족했다. 이 위원회가 1965년 한일협정 때 위안부 문제는 일괄 타결됐다고 결론지었다.
5. 마치며
거짓말공화국으로는 미래가 없다. 거짓말로 부풀리고 포장된 집단주의 민중민주주의 사회민주주의 전제정치가 자유 대한민국을 더 이상 흔들어서는 안 된다.
"‘자유 이념’을 맞아들인 구한말 개화 세력은 이후 친일파로 변신하였다. 해방 후 그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제국주의 미국에 빌붙었다. 그래서 세워진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지금도 ‘자유‘ 운운하는 자들은 천박한 개인주의자로서 親日, 親美 세력 후예이다." 이것이 많은 한국인의 자유주의자에 대한 이해이다.
109년 前 나라를 망쳐본 민족이다. 아직도 나라가 망한 원인을 알지 못하기에 한 번 더 망하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
정확히 말해 조선은 개인의 자유가 없었기에 망했다. 이해관계가 각기 다른 개인을 국가라는 질서체로 통합하고 나아가 번영과 평화를 이끄는 것이 바로 자유민주주의 자유시장경제다. 이를 추구하였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다.
2019년 8월 25일
리더스 포럼
회장 박윤근